내 인생 첫 기숙사 생활
우리 학교는 캠퍼스 안과 밖에 13개 정도의 기숙사가 있었는데 그중 나는 3곳의 기숙사에서 총 3년 반을 살았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땐 고모 집에서 생활했다. 우리 학교는 만 21세 이하는 부모님이나 형제가 근처에 살지 않으면 기숙사에 살아야 한다. 미국에 입학했을 때 내 나이는 만 20세이었기 때문에 나도 기숙사에 살아야 했다. 고모 집에서 살 예정이었던 나는 학교에 보호자 등록하고 기숙사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살다 보니 고모 집은 학교랑 멀어서 불편한 점이 많았다. 운전하지 않아서 매번 고모부의 출퇴근에 맞춰서 생활해야 했기 때문에 수업이 일찍 끝나서 쉬고 싶어도 집에 일찍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숙사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1학년 2학기에 자리가 남은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미국은 학기가 8월에 시작하기 때문에 1학기를 가을학기, 2학기를 봄 학기라고 부른다. 가을학기와 봄 학기 사이의 겨울방학이 1달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겨울방학 동안은 기숙사 짐을 빼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내가 처음 방에 들어갔을 때 룸메이트의 짐이 그대로 어질러져 있어서 좀 놀랐었다.
나는 이제까지 다른 사람들이랑 방을 같이 써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기숙사를 들어가기 전에 걱정이 많았다. 1인실이 있는 다른 기숙사도 있지만 미국까지 와서 1인실을 쓰면 미국 애들이랑 친해지기 어려울 것 같았다.
(사실 1인실이 2인실보다 비쌌다)
그래서 선택한 첫 번째 기숙사!
2인실이었다.
기숙사에 들어오기 전에 유튜브를 많이 봤었다. 'college move in day'라고 검색하면 많은 브이로그를 볼 수 있다. 많은 유튜버가 아예 이사 가는 느낌으로 기숙사에 짐을 옮기는데 방이 얼마나 크면 그 짐이 다 들어갈까? 라고 생각할 정도로 가구, 인테리어에 신경을 많이 쓴다. 나도 처음에는 이것저것 뭐 많이 사고 싶었는데 기숙사에서 한 학기 살고 그 마음을 접었다. 짐이 많으면 이사할 때 개고생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기숙사는 생각보다 작았고, 수납장이 옷장이랑 책상 서랍밖에 없어서 물건을 넣을 곳이 많이 없었다. 그래서 월마트에 가서 플라스틱 박스를 사다가 물건을 다 거기에 넣어서 침대 밑에 보관해야했다.
내 첫 룸메이트 미국인이었는데 나는 아주 달랐다. 나는 야행성이어서 과제를 거의 밤에 했다. (음... 밤에 했다기보단 오후부터 시작한 과제가 새벽에 끝나는 뭐 그런 거? 영어는 너무 어려웠다) 내 룸메는 잠을 일찍 잠을 자진 않았지만 꼭 티비를 틀고 잠을 잤다. 그래서 내가 항상 그 애의 티비를 끄고 자야 했다.
그 애는 나의 첫 번째 룸메이트였기 때문에 솔직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랐다. 어떻게 해야 기분 나쁘지 않게 말해야 하는지 아님 어디부터 어디까지 말을 해야 하는지 등등 처음 겪은 타인과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 애가 제일 친해지기 어려운 룸메였었다.
기숙사를 선택하는 기준은 언제나 화장실이었다. 우리 학교 기숙사는 크게 2인, 4인, 그리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이 있었다. 학교 안 아파트형 기숙사는 1인 1실에 화장실이 포함된 곳도 있었던 거 같다. 아파트형 기숙사가 제일 좋은 조건이었는데 그만큼 인기가 많고 가격도 비쌌다. 그래서 내 최선의 선택은 2인 1실이었다. 나와 룸메만 사용 가능한 화장실이 방안에 있는 기숙사는 이곳이 유일했다. 일명 Private Bathrooms.
화장실이 맘에 들어서 이 기숙사를 선택했지만 그거 빼고는 좋은 점이 하나도 없었다. 3층에 살았는데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3층까지 걸어서 왔다 갔다 하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미국의 석회질 물맛을 싫어했던 나는 항상 생수를 사야 했었다. 그래서 3층까지 무거운 생수병들을 들고 올라가면 그다음 날에 팔에 알이 배기 때가 많았다. 그리고 최고의 문제는 사진에 보이는 냉장고였다. 작아서 가벼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이사를 할 때 친구에게 부탁해서 냉장고를 들고 같이 내려갔는데 계단도 좁고 가팔라서 둘다 고생을 했다.
그리고 와이파이도 없었다. 진짜 완전 시골인 고모 집도 와이파이가 되는데 어떻게 대학 기숙사에 와이파이가 안 될 수가 있지? 기숙사 와이파이는 1층 로비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방에는 와이파이 연결이 안 돼서 인터넷 연결선을 사서 직접 노트북에 꽂아서 인터넷을 사용했다. 그 덕분에 나는 매달 핸드폰 요금을 10만 원씩 내야 했다. (당시 핸드폰요금이
$82정도 기본인터넷이 2기가였다. 추가 1기가당 $15. 엄청 비쌌다. )
세탁실은 층마다 있었기 때문에 세탁하기에는 편리했다. 그런데 처음 세탁실에 갔을 때 너무 실망했었다. 세탁기와 건조기에는 셀프 빨래방처럼 동전을 넣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숙사가 저렴한 것도 아닌데 빨래가 유로라니??!! 기숙사비가 저렴한 것도 아닌데 빨래로 돈을 따로 내는 게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처음 2~3주 동안은 고모 집에 가서 세탁해서 왔었다. 그런데 그 동전 넣는 건 페이크였다. 같은 기숙사에 살던 친구가 알려줬다. 동전을 안 넣어도 세탁이 된다고 그거 가짜라고. 믿기지 않았다. 나는 실제로 동전을 넣고 세탁을 한 적이 있었다. 학교에서 나한테 사기 친 건가? 학생을 대상으로 사기를 쳐도 되는 건가? 세탁실 그 어디에도 세탁기를 동전 없이 그냥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은 하나도 없었다. 왜 그냥 돌려보려고 할 생각은 하지 않았는지...
내 동전 돌려줘...
기숙사에는 부엌도 있었다. 이 부엌에서 요리를 꽤 했었다. 요리보단 조리?
부엌은 1층에 하나가 있었는데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학생 대부분이 집에 가는 봄방학에 한국 마트에서 사 왔던 떡볶이와 짜장라면을 끓여서 일본 친구들한테 요리를 해준 적이 있었다. 이때 내가 떡볶이 소스를 매운맛과 일반 맛을 착각해서 일본 애들한테 매운맛 떡볶이를 해줘서 난리 났었다. 대패삼겹살도 사 와서 기숙사 부엌에서 구워 먹은 적도 있었다. 냄새가 많이 날까봐 걱정했는데 봄방학이여서 학생들도 없었고 베이컨이랑 비슷한 냄새여서 괜찮았다.
내 첫 번째 기숙사는 화장실 빼고 다 별로였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엘리베이터가 없어도, 와이파이가 없어도 살만했다. 그러나 나중에 다른 기숙사에 살면서 '내 첫 번째 기숙사가 정말 별로 였던 거구나'라고 깨닫게 되었다. 없을 때는 몰랐지만 있으니까 보이는 것들을.
그리고 그다음 학기에 나는 새로운 기숙사, 나의 두 번째 기숙사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