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my Mar 10. 2022

미국 시골 대학 생활 이야기

미국 시골에서 살아남기 1

고3이 시작되는 겨울, 넓은 세상 구경하고 오라는 아빠의 말에 고모가 있는 미국으로 여행을 갔다 왔다.


미국에는 고모와 큰아빠가 살고 계셨는데 고모는 미국 시골에, 큰아빠는 한국인이 엄청 많은 대도시에 계셨다. 미국에 놀러 온 나는 쇼핑몰이랑 아웃렛이 가까이 있는 큰아빠 집이 좋았다. 반면 고모 집은 완전 시골이어서 재미가 없었다. 아침에 마당 펜스가 있는 고모 집 뒷마당 쪽으로 소들이 산책을 왔고, 밤에는 사슴들이 집 주위를 뛰어다니고 인터넷이 느려서 답답했던 그런 시골.


고모부는 옆 동네 대학에서 교수님으로 재직 중이셨는데 옆 동네도 큰 도시는 아니었다. 소도시인데 나는 그냥 시골이라고 불렀었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대학은 집 근처에 있던 대학 캠퍼스밖에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미국 대학교가 궁금했었다. 그래서 캠퍼스도 구경하고 미리 고모부 클래스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해서 교실 뒤에서 조용히 수업을 참관하기도 했다.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엄청나게 큰 계단식 강의실은 아니었지만 20명 정도의 학생들이 있던 그 작은 교실의 맨 뒷자리에 앉아 못 알아듣는 영어를 열심히 알아듣는 척했다.  


미국에서 보낸 한 달은 매우 특별했다. 그때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수험생활을 지내면서 힘들 때마다 미국 시골에서 지냈던 생각이 났었다. 행복하다고 느꼈을 때는 쇼핑할 때였는데 왜 그 시골이 생각나는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미국에서 지낸 한 달을 계기로 미국에서 대학 생활을 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대학 생활을 하기로 결심하고 제일 먼저 미국 하이틴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그런 느낌의 생활을 꿈꿨었다. 하지만 미국의 현실적인 삶은 영화랑 달랐다. 내가 살던 곳은 미국의 소도시, 시골이었다...







미국의 시골에는 없는 게 많았다.


일단 대중교통이 없다.

 

미국 애들은 워낙 어릴 때부터 운전을 배워서 차를 운전하고 다녀서 그런지 대부분 운전경력이 5년 이상일 정도로 운전에 능숙했다. 미국 애들 중에는 차가 없는 애들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런가 동네에 버스가 없다. 택시나 우버도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유학생들한테 들었는데 택시는 예약하면 탈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공항까지 갈 때) 그래서 차가 없던 나는 필요한 게 있으면 고모나 친구들에게 부탁하거나 학교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마트에 다녔었다. 버스, 지하철, 택시, 우버는 다 뉴욕이나 엘에이 같은 대도시로 여행 갔을 때 이용해봤는데 엄청 편했다.


  

마트에 술이 없다.


처음 미국에 놀러 갔을 때는 미성년자여서 몰랐는데 학교가 있는 동네 마트에는 술을 팔지 않았다. 레스토랑이나 바에는 술 판매가 되지만 마트에선 술을 볼 수 없었다.


미국에는 내가 살던 동네처럼 마트에 술이 아예 판매하지 않는 곳도 있고, 판매하더라도 맥주같이 도수가 낮은 술만 판매하는 곳도 있다. 대부분 도수가 높은 술은 주류 마트에 가야 살 수 있다.


그래서 술을 좋아하는 유학생들은 차로 왕복 50분 정도 되는 옆 동네 주류 마트에서 맥주랑 위스키, 와인을 사다가 학교 밖에 있는 친구 집에 모여서 마시곤 했다. 캠퍼스 안은 술이 절대 금지였기 때문이다.


미국 주류 마트에 팔던 자몽의 이슬



한국 마트/ 아시안마트가 없다.


이건 뭐 기대도 안 했다. 한국인도 얼마 없는 곳에 한국 마트가 없는 건 당연하겠지... 그래도 다행히 차로 한 시간 걸리는 곳에 한국 마트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월마트에 있는 신라면과 크로거에서 팔던 너구리를 발견했을 때는 너무 반가워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처음에는 한국 마트 가면 라면도 사고 햇반, 김, 통조림 같은 걸 샀었는데 점점 내 입맛이 미국 음식에 적응하게 되어서 한국 마트에 자주 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도 라면은 포기할 수가 없어서 마트에 가면 한 박스씩 사 오곤 했다. 당시 최고로 매웠던 틈새라면으로!


한국 마트에서 구매한 내 식량들

 


쇼핑몰이랑 아웃렛이 없다.


이게 제일 아쉬웠다. 쇼핑몰이 없어서 온라인 쇼핑에 눈을 뜨게 됐지만 그래도 직접 가서 사는 거랑 온라인 쇼핑은 느낌이 좀 다르지 않은가? 그래도 T.J. Maxx 같은 할인매장이나 내가 젤 좋아하던 Hobby Lobby가 있어서 그나마 숨통을 트일 수 있었다. 특별히 뭐가 필요하지 않아도 하루종일 생활하는 학교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었다. 그래서 주말이면 친구들과 월마트에 놀러 가는 일이 많았었다.


한 시간 정도 걸리는 한국 마트가 있는 도시에는 꽤 큰 쇼핑몰이 있었다. 내 모든 애플 제품을 산 애플 매장도 이곳에 있었다. (큰 학교는 학교 안에서 맥북도 팔던데...)


졸업할 때쯤에는 아웃렛도 생겼었다. 그전에는 아웃렛에 가려면 3시간 정도 걸리는 윗동네 주나 아님 6시간 정도 걸리는 큰아빠 집이 있던 주에 가야 했었다. 미국 하면 아웃렛 쇼핑인데, 아웃렛이 너무 멀어서 저렴한 쇼핑은 많이 즐겨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귀국 전날 큰아빠 집 근처 아울렛에서 마지막 쇼핑



고모집에선 핸드폰으로 전화나 문자를 할 수 없었다.


외할아버지 집도 고모 집이랑 비슷한 조건에 있는 시골이다. 하지만 IT 강국 대한민국의 시골, 외할아버지 집에서는 전화나 인터넷이 안 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고모 집이 너무 시골이었는지 아님 한국과 미국의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고모 집은 핸드폰 서비스 지역이 아니었다. 집 전화랑 티비는 되지만 핸드폰만 되지 않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핸드폰이 안 되는 동네가 있다는 것이 너무 충격이었다. 그런데 와이파이는 사용할 수 있었다! 보통 와이파이가 되는 지역은 전화도 다 되던데...


나는 Version과 AT&T 대표적인 미국의 통신사 2곳을 사용했었는데 2곳 다 고모 집에선 사용하지 못했다.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으니까 카톡이나 인터넷 사용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미국 친구들과는 대부분 문자나 전화로 연락했기 때문에 내가 고모 집에 있을 때는 친구들이 꼭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으로 연락을 해야 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AT&T에서 제공하는 스페셜한 요금제를 사용하면 고모 집에서도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재미있는 점은 내 방 침대 쪽에 한 곳과 테라스 쪽에 한 곳만 핸드폰 서비스가 제공되는 특별한 스폿이 있었다. 그래서 새벽 3시 개구리가 내 방에 나타났을 때 나는 기적적으로 고모한테 전화해서 개구리를 내쫓을 수가 있었다. (고모 방과 내 방은 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소리 질러도 잘 안 들릴 때가 많았다.)


핸드폰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고모집에서 학기 시간표 보면서 카톡으로 전화하기












없는 것도 많았지만 그래도 있는 것도 꽤 있어서 할 수 있는 게 많았다.


학교 안에 스타벅스가 있다.


내가 하루에 한 번 꼭 가던 스타벅스는 학교 안에 있었다. 그러나 내가 제일 좋아했던 Strawberry Acai는 학교 안에서 팔지 않아 학교 밖에 있는 스타벅스도 그만큼 자주 갔어야 했다.


스타벅스에 너무 자주 가다 보니 아르바이트생이 내가 항상 먹는 메뉴를 외워서 "오늘은 바닐라라테? 아님 모카 프라푸치노?"라고 물어보며 나를 반겨주곤 했었다.


우리 학교에서만 먹을 수 있는 초코시럽 폭탄 모카 프라푸치노



유명 패스트푸드 가게가 학교 주위에 많았다. 


맥도날드, KFC, 타코벨, 써브웨이, 버거킹, 웬디스, 파파이스, 피자헛, 도미노 등 웬만한 유명 패스트푸드 가게는 학교 근처에 있었다. 내 고향에는 없던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 가게를 가볼 수 있어서 처음에는 엄청나게 좋아했었다. 그래서 '그래, 여기가 그렇게까지 시골이진 않을 거야. 대학도 있는데.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미국 사람들의 주식이 이런 종류의 음식들이지 않나? 그럼 우리나라에서 어딜 가나 있는 해장국집이나 김밥천국 같은 느낌과 비슷한 거 아닌가? 그럼 이런 작은 도시에도 유명 패스트푸드점이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걸 수도 있다.   


나는 특히 학교 안에 있던 Chick-fil-A(칙필레)를 나의 미국 소울 푸드라고 생각할 정도로 좋아했었는데 살살 녹는 치킨 스트립과 칙필레소스는 지금도 제일 먹고 싶은 미국 음식 중 하나다. 많은 패스트푸드 가게가 학교 근처에 있어서 처음에는 좋았지만 결국 나중에는 그냥 귀찮아서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소고기가 잔뜩 들어간 샐러드랑 샌드위치만 먹게 되었다.    


야채가 더 많아 보이지만 소고기가 많은 들은 Which Wich 샌드위치



산 정상에 차를 타고 갈 수 있다.


한국에서 흔히 산에 간다고 하면 등산화를 신고 등산복 입고 힘들게 걸어 올라가는 산을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동네 근처에 있는 산들은 대부분 차를 타고 정상에 갈 수 있었다. 대신 높이가 한국 산처럼 엄청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일단 땅이 넓으니까 산도 커서 그런지 운전해서 산에 올라갈 수 있었다. 


마치 '한강 갈래?' 같은 느낌으로 친구들이 종종 '산에 갈래?'라고 물으며 즉흥적으로 운전해서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선셋을 보고 오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치마를 입고, 슬리퍼를 신어도 산 정상에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갑자기 선셋 보러 산으로 드라이브한 날



동물들을 너무 자주 집 근처에서 볼 수 있다.


이건 장점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살던 때보다 미국에서 살던 5년 동안 더 많은 야생 동물들을 봤다. 고모가 살던 집 근처에 사슴이 엄청 많았다. 밤에 운전하면 도로나 그 주변에 사슴이 많아서 항상 조심해야 했다. 실제로 이른 아침에 사슴이 도로를 달리고 있던 차에 뛰어들어서 3개월 된 고모의 새 차는 문을 통째로 교체해야 했었다. 사슴은 차에 치인 뒤에 다시 산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확인하지 못했지만 아마 사슴도 많이 다쳤을 것이다. 미국 도로에서는 로드킬 당한 동물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내가 운전하지 않으려고 했던 제일 큰 이유가 바로 동물들을 로드킬 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고모 집이 시골이다 보니 가끔 동물이 집에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하필 내 방에 많이 들어왔었다. 대부분의 미국 집은 문과 방바닥 사이에 공간이 있다. 보통 문지방이 있어야 하는 그 공간이 비어있는데 미국은 온돌바닥이 아니고 히터가 작동하기 때문에 공기 순환을 위해서 방문과 방바닥 사이에 공간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곳을 통해 개구리와 쥐가 내 방으로 들어온 적이 있었다. 둘 다 내가 최고로 싫어하는 것들이다.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밤늦게까지 과제를 하거나 인터넷을 할 때면 항상 내 방만 불이 켜져 있었기 때문에 그 불빛을 따라서 부억이나 거실에서 내 방으로 들어왔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래서 그 후로는 항상 방문 밑 틈을 막아서 생활해야 마음이 편했다.   


고모집 마당에 나타났던 옆집 소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미국 시골 대학 생활은 꽤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친구 집에 모여서 보드 게임하고, 월마트로 쇼핑하러 가고, 한국 치킨을 그리워하며 파파이스 치킨을 먹고, 빵이 질려서 버거 패티랑 야채만 먹는 편식도 하고, 새벽 1시에 학교 앞 패스트푸드 가게로 야식을 먹으러 가고, 봄방학에 애들 없는 기숙사 식당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고, 스테이크 먹겠다고 기찻길을 건너 다운타운으로 걸어가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과제랑 시험 때문에 밤새고, 술 마신다고 또 밤새고, 운전면허 떨어졌다고 울고불고 난리 치다가 우리 학교 스타벅스에서만 주는 초콜릿 시럽 잔뜩 모카 프라푸치노를 마시고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그런 소소한 미국 시골 대학 생활을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