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기념일에 응급실 간 후기
나는 한 달 동안 텍사스에 계신 큰아빠 집에서 지낼 예정이었고, 큰아빠와 큰엄마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SUV 뒷좌석에 앉아 있다가, 트렁크에 있는 짐을 꺼내려던 순간 일이 벌어졌다.
달리는 차 안에서 무릎을 꿇고 짐을 찾고 있었는데, 몇 분 동안 찾다가 '어디 간 거야?' 생각하며 주저앉았다.
그 순간, 오른쪽 무릎에서 '틱'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무릎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예 움직일 수 없었다.
간신히 무릎을 살짝 구부린 채 앞을 바라보고 겨우 제대로 앉았지만, 앞 좌석에 앉은 큰아빠와 큰엄마는 내 상태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무릎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무릎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하면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다. 결국, 큰아빠와 큰엄마께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저 무릎이 안 움직여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큰엄마의 물음에 나는 상황을 설명했지만,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나도 어이가 없었다. 차 안에서 뭘 했다고 무릎을 다쳐...
당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목적지였던 H 마트(한국 마트)까지 갔다. 도착해서 내 상태를 확인한 큰아빠와 큰엄마는 너무 어이없어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그날이 독립기념일이라 한인 병원들이 대부분 문을 닫은 날이었다. 큰아빠는 여러 병원에 전화를 돌려봤지만, 내가 너무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결국 응급실로 향했다.
나는 한국에서도 응급실에 가본 적이 없었는데, 첫 응급실 경험이 미국이라니...!
응급실에 도착하자 큰아빠가 내 상황을 설명했고, 휠체어를 끌고 온 직원이 나를 태워 응급실 침대로 이동시켰다. X-ray를 찍고 기다리는 동안, 조금씩 무릎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통제를 먹었더니 통증이 점점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새, 내 마음대로 무릎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의사는 뼈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럼 나는 왜 아픈 거야?"
"글쎄? 그런데 아무튼 뼈에는 이상이 없어."
"..."
"그리고 너도 이제 조금씩 움직일 수 있잖아. 그럼 괜찮은 거 같아."
'응? 나 아파서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던 게 30분도 안 지났는데?
이제 괜찮아 보인다고 그냥 가라고?
진통제 하나 주고? 가라고? 진짜? 나 가도 돼?????'
한국에서 응급실을 가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보통 의사가 왜 아팠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않나?
사실 마음 같아선 다른 검사를 받아보고 싶었지만, 미국 응급실이라서 비용이 걱정됐고, 의사가 가도 된다고 하니 그냥 집에 가기로 결정했다.
진료가 다 끝나고 진료비를 내러 갔다. 솔직히 떨렸다.
미국은 병원비가 비싸다던데... 걱정이 앞섰다.
직원이 보험이 있냐고 물어봤다. 나는 한국에는 보험이 있지만, 미국에는 보험이 없었다. 보험이 없으면 디파짓(보증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270 정도를 먼저 내고, 진료비 청구서는 한 달 후 집으로 우편으로 보내준다고 했다. 한국은 치료 후 바로 진료비를 결제할 수 있지만, 미국은 진료비 청구에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했다. 역시 미국답게 느렸다.
진료비를 낼 때는 잊고 있었지만, 나는 학교 보험이 있었다. 우리 학교의 모든 유학생은 필수로 학교 보험에 가입해야 했고, 학기마다 $600 보험료를 학비와 함께 납부했다.
그런데 나는 하필 방학 중에 다쳤다. 학교에서 방학 동안 보험 사용 가능 여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학교 홈페이지와 보험회사 홈페이지를 찾아보고, 학교 국제학생 오피스에서 일하는 친구에게도 물어보며 확인했다. 결국 국제학생 오피스에서 가장 높은 분에게 직접 물어본 후, 방학 중에도 학교 보험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달 뒤, 집으로 치료비 청구서가 도착했다. 정확한 금액은 기억나지 않지만, 약 $2600(약 300만 원) 정도였다. 응급실에 1시간 정도 있었을 뿐인데 300만 원이라니...! 진짜 어마어마한 가격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 후기를 보니, 대부분 나보다 더 많은 진료비가 청구되었다. 내 진료비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었다.)
진료비에는 내가 탔던 휠체어를 밀어준 비용, 진통제 비용, 그리고 모든 의료진마다 따로 책정된 비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치료비 청구서를 받은 후, 보험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며칠 뒤 새로운 치료비 청구서를 받았는데, 학교 보험으로 커버되어서 $110만 내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300만 원이었던 병원비가 13만 원으로 줄어들었다. '이래서 미국에서는 보험이 꼭 필요하다고 하는 거구나'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결국 내가 낸 최종 병원비는
응급실에서 먼저 냈던 디파짓 $270
보험 적용 후 추가로 청구된 $110
총 $380 (한화 약 40만 원) 정도를 냈다.
하지만 문제는, 나는 여전히 내 무릎이 왜 아팠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무려 40만 원을 냈지만, 무릎 사진 한 장 찍고, 진통제 한 알 먹었을 뿐이었다. 솔직히 만족스러운 진료는 아니었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응급실에서 돌아온 뒤에도 무릎이 계속 아팠다. 처음처럼 심하진 않았지만, 걸을 때마다 불편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이틀 뒤, 한인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는다. 병원비는 무려 $75였다.
한의원도 미국이라 그런지 비쌌다.
1년 뒤 여름방학 때 한국에 와서 병원을 찾았다. 그동안 계속 아팠던 건 아니었지만, 오래 걷거나 무리하면 종종 무릎이 아팠다. 그래서 병원에서 MRI를 찍었는데, 무릎 안쪽 인대가 살짝 손상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약을 먹으면 2~3주 안에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나는 1년 동안 내 무릎 인대가 손상된 사실도 모른 채 지냈던 거였다. 불쌍한 내 무릎...
이 일을 계기로, 나는 한국의 의료보험과 의료 시스템이 세계 최고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