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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섬이야기(11)

삼촌과 조카(1) - 상처 이야기

by 명재신


<삼촌과 조카>


"삼촌~"


초파일 즈음해서 모처럼의 휴가를 받아 쑥섬에 내려왔을 때 그는 쑥섬 '건몰짝/건너마을쪽' 선창 뱃머리에서 나를 불렀다. 그는 선창 그물더미에 맥없이 주저앉아 나를 삼촌이라고 불러 놓고는 쑥스러웠는지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그가 나를 삼촌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잘 없었다.


뭔가 자기가 궁할 때만 간혹 그렇게 불렀는데 그럴 경우는 지금 그의 신상에 뭔 일이 있는 거였다. 나이가 셋이 많으면서도 나는 24세손이었고 그는 25세손이어서 조카 뻘이 되는 그였다. 모두가 새우잡이를 나가고 없는 마을은 고즈넉하기 짝이 없었다.


"왜 배에는 안 나갔능가?"


쑥섬마을 새우잡이 저인망 어선들은 모두 출어를 하고 말뚝들은 모두 비어 있었는데 빈 마을에 빈 돌말뚝과 함께 나를 반기고 있는 것이 이상했다.


적어도 그는 지금같이 새우잡이 철이 한창일 경우에는 그의 형 배에 승선해 있던지 나로도항에서 건너오는 나룻배에서 내리는 누군가에게 달라붙어 그간의 쑥섬 소식을 전해 주면서 뭐라도 하나 얻으려 성가시게 했어야 했다.


그는 건장하고 힘이 좋았지만 아이들과 어른들을 성가시게 하는 통에 별명이 하나 있었는데 그 별명이 불리는 것은 끔찍이도 싫어했었다. 그런 탓에 그는 늘 또래들보다는 몇 살이 적은 우리들의 속에 들어와 어울려 놀려고 하거나 놀이에 끼워주지 않으면 훼방을 놓거나 악동의 역할을 했었다.


언젠가 그가 우리 형제들이 노는 곳에 들어와 훼방을 놓는 것을 참다못해 내가 별명을 부른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는 험한 얼굴로 씩씩대며 달려와 나를 넘어 뜨리고 한 방 날릴 기세일 때였다.


"나는 니 삼촌이잖아~"


위협을 느낀 내가 그의 삼촌이라는 사실을 알리자 그는 마지못해 멱살을 풀었다. 사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탓에 삼촌 뻘이 된다는 것을 못 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의 엄마가 나에게 말을 높이는 것도 싫어했고 그런 지위를 종종 이용하려 하는 나에 대해서도 못 마땅해했다.


"인자는 안 나가...."


쑥섬 주변으론 이름 봄부터 먼바다로부터 산란을 위해 새우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놈들을 잡으려고 일명 '새비빵'이라고 하는 새우잡이 그물로 새우를 잡는 소형 저인망 어선들이 몰려들었다. '봇도리 바닥'이라고 하는 '동바닥/동쪽바다'와 '서바닥/서쪽바다'이라고 하는 서바다에는 그즈음이면 새우 떼만큼이나 많은 배들이 몰려다니며 새우잡이를 했다.


그가 타고 있는 배는 그의 형이 선주였고 그는 선원이었다.


형과 둘이서 타고 새우잡이를 했는데 나로도 인동에서도 상위권에 드는 어획량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형제가 원체 기력이 좋아서였겠지만 모르긴 해도 그에게는 낚시를 하거나 새우잡이를 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동물적 본능이나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같은 물 때에 같은 조건으로 근접해서 그물을 끌어도 역시 그들 형제가 끄는 그물에는 새우가 터져나도록 걸려들었다.


"앞으로는 새우 배 안 탈라고"


"배를 안 타다니?"


그는 기가 죽어 있었고 눈은 사양도 선산을 건네다 보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능가?"


"서바닥 물 귀신 될 뻔했네"


서바닥은 쑥섬의 서쪽에 있는 바다였다.


고흥반도 끝자락인 발포만에서 수락도 쪽으로 빠져나오면서 사양도, 지죽도, 시산도, 손죽열도와 나로도로 둘러싸인 곳을 서바닥이라고 불렸고 쑥섬의 몬당에서 바라보면 멀리 시산도, 무학도, 소거문도, 손죽도, 평도 등이 보이면서 새우잡이 철에는 '새비빵'을 끄는 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쩌면 '바닥'이라는 말은 바다라는 말보다도 정말 바다 아래의 바닥인 갯벌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다 죽었다가 살아났네"


잔뜩 인상을 지으며 그는 배가 떠나갔을 바다 쪽으로 시선을 둔 채 손마디를 꺾었다. 두두둑 뼈마디 부러지는 듯한 소리들이 났다. 소금기 앉은 그의 머리가 부석부석 바람을 맞고 있었다.


"이것 보라고. 바로 이렇게 감겼어"


그가 목을 감싸 쥐었다.


상처 투성이의 손이었다. 목을 감싸 쥔 손아귀를 따라 이제 마악 딱지가 앉기 시작한 상흔이 테를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부르르 진저리를 쳐댔다. 잔뜩 흐린 하늘이 파도를 부르고 있었다.


"목에 줄이 감겨 죽을 뻔 했다구....."


그는 그 말을 만들어 내는데 한참이 걸렸다. 다시 감정이 격해지고 있는 듯싶었다. 그의 얼굴은 아직도 죽음의 그림자가 남아 있는 듯 어두웠고 비장했다.


그날 사고가 일어나리라는 것을 그는 예감을 했다고 했다.


꿈에 검은 황소가 보였는데 그게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검은 두 개의 그림자가 자신에게 고삐를 꿰어 어디론가 끌고 가려했고 막무가내로 버티며 지금 안 가겠노라고 발버둥을 치며 버티어 냈는데 그는 입에서만 그 소울음소리만 맴돌았을 뿐 소리가 되어 나오질 않았다고 했다.


잠을 겨우 깬 문 앞에서 저승사자처럼 그의 형이 버티어 서서 '갑바/물잠바'를 건넸다.


"안 나가겠다고 했는데...."


억지로 끌려 나가다시피 한 그는 오전 내내 맥을 못 추고 비실거렸다고 했다.


그의 형은 배를 몰고 그는 이물에서 그물을 채비하고 던지고 유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날은 왠지 그가 허방거리면서 제대로 그물 채비를 못하자 형이 고물에서 달려와 엉덩이를 발길로 걷어차 억지로 억지로 발돌부터 넣게 하고 그물을 퍼던지고 그리고 물판을 어찌어찌 던져 넣고는 전속으로 배가 속력을 높이는 것과 동시에 끌줄을 마지막으로 던져 넣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고리가 만들어진 끌줄이 풀려 나가면서 그의 목을 걸어버렸고 그는 그대로 줄에 목이 매달려 바다로 끌려들어 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렇게 그는 그의 형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의 형이 이물로 달려왔을 때는 이미 그는 새우그물 끌줄에 달려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 버린 뒤였다.


그의 형이 배를 멈추고 사라져 간 그를 엉엉 울면서 부르는 광경을 주변의 배들도 목격을 했지만 어쩌지를 못 하고 모두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혼이 나간 그의 형이 혼자서 배를 후진시킨다 이미 백여 발이나 들어간 끌줄을 당긴다 하다가 주저앉아 엉엉거리고 있을 때 그가 수면으로 살아서 떠 오르더라는 것이다.


"꽉 앞줄을 잡고 있었제. 목이 안 잘라지게"


그는 그 상황을 재현이라도 하려는지 허공에다 대고 두 손을 뻗어선 움켜쥐는 시늉을 해댔다.


나는 그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쩌지를 못하는 죽음 앞에서 어떻게 용케 도망쳐 나왔는지, 그 상황에서 그가 수심 깊숙이 목이 감긴 채로 끌려 들어가다가 무슨 재주로 다시 수면으로 떠오르게 되었는지, 혼자의 힘으로 그 매듭과 고리를 풀고 아무리 짧아도 십여 분이 넘어갔을 시간대의 익사상황에서 다시 정신이 수습될 수 있었는지 그의 황당한 이야기에 질려 있었다.


그리고 꿈속에 보이던 두 그림자가 그를 끌고 어디론가 가는 것을 그가 고삐를 끊고 내쳐 도망 나온 것과 물속에서 부릅뜬 눈으로 분명 깊은 물속으로 그냥 떠나가던 두 그림자를 본 거 같다는 불분명한 그의 익사상황에서의 이야기를 통하여 나는 그 어떤 메시지를 강하게 받고 있었다.


그리고 선창에서 건네다 보이는 사양도 6대조 할아버지 선산을 올려다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가 서바다에서 시월 새우잡이 그물을 혼자 끌다가 프로펠러에 그물이 감겨 그걸 풀려고 들어갔다가 시월 낮은 수온의 바닷물에 몸이 얼어 다시 뱃전으로 못 올라와서 선산을 향해서 '할아버지 나 좀 살려 줏시요'하고 외마디로 구원을 청하였더니 없던 파도가 일어서 그 힘으로 뱃전으로 다시 올라와 살았다고 서바다에 나설 때마다 큰 절을 올린다는 그 선산 할아버지를 건네다 보면서 당신이 또 하나의 목숨을 살려 주셨군요 하고 있었다.


"한번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은 오래 산다등마. 그러니 오래 살긋네"


듣기 좋으라고 던진 말은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목의 깊은 상처보다 그의 가슴에 상처가 감춰져 있었다는 사실에 문득 눈이 뜨였고 그 알지 못하는 두 개의 그림자가 왔다가 그냥 간 것도 어쩌면 그의 지난 시간 동안의 상처를 보았을 거고 그것이 안쓰러워서 나머지 여생 동안 그 깊은 상처를 치유받고 위로받을 수 있는 시간을 위하여 유예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오래 살 거라고? 오래 살아 뭐 하게....."


그는 내가 건네준 홍삼 선물 상자를 받으며 흘리는 말처럼 그랬다.


왼쪽이 쑥섬이고 오른쪽이 사양도 선산이 보인다. 가운데 보이는 섬이 수락도이며 수락도 앞으로 흐르는 바다가 서바닥/서바다이다.

<서바다에 노을지고>


아버지

어머니


둘째아들 결혼시킨다고

시월 찬바람 나던 날


서바다 새우잡이 그물 한 방에

구름처럼 산더미같이

새우그물에 새우가 들어서

둘째아들 결혼비용 한 밑천 했다고


뱃전에서 춤을 췄다고

사양도 선산 할아버지가 보내줬다고

고맙고 감사하다고

뱃전에서 큰절까지 했다고


구름같이

하늘같이


어제는 우리네 살림

펴게 해 주시고

오늘은 누구네 목숨

구명해 주시는지


서바다에 지는 노을

사양도 선산 너머 수락도 하늘이

오늘따라 붉고도

장엄합니다.


202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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