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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섬이야기(13)

삼촌과 조카(2) - 분재 이야기

by 명재신 Dec 18. 2024

삼촌과 조카(2)

- 분재 이야기


"소금이나 좀 올려주고 하지 그랑가?"


그는 염포 선산에 도착해서 소금가마니 운반에는 관심이 없었고 제주도의 이른 봄 몇몇 오름에서나 자생한다는 나무라 여겨 어른들이 처음부터 키웠다던 산목련(山木蓮) 몇 그루하고 당단풍(唐丹楓) 나무에 눈독을 들이고는 나중에 갈 때 캐어가라고 했던 상수리나무나 선산 주변으로 수없이 군락지를 이루고 있는 자생춘란에는 눈길조차 주질 않았다.


그 해 겨울, 아버지는 집안 어른 몇 분과 함께 나의 휴가 날짜에 맞춰서 염포 선산 주변 조경작업을 계획하고 계셨다. 지금의 나로우주발사기지가 있는 하방금리를 조금 못 가서 봉래산 자락의 남서쪽에  나로도 염포 마을에 조성한지 얼마 되지 않은 쑥섬의 두번째 문중 선산이 있었는데 원체 오래된 야산이어서 베어낸 나무들의 뿌리에서 매년 싹이 오르고 그것들이 어른 키만큼 자라 있어서 아예 남아 있는 뿌리까지 없앨 요량이었다.


 염포마을은 쑥섬에서는 육로로 가는 것 보다는 배를 타고 가는 것이 편했다. 한 시간 남짓을 가야 하는 거리였다.


젊은 우리들이 객지를 전전하고 다닌 탓으로 아버님과 문중 어른들은 무거운 소금가마니를 배가 닿는 선창에서 선산까지 옮기는 일이 만만치 않아서 우리가 휴가차 쑥섬으로 내려가는 날을 잡아 잡목림이며 그 뿌리를 제법 굵게 내린 상수리나무에서 키를 키운 줄기를 베어내고 소금을 뿌려 주근을 고사시키려는 것이었다.


문중 선산은 쑥섬에서 건네다 보이는 사양도에 6대조가, 나로도 봉래산 자락인 염포마을 인근에 5대, 4대조 할아버지 선산을 따로 마련하여서 이를 모시고 있었는데 해마다 시제를 모셔 왔었다.


쑥섬에는 묘를 쓰지 않는 것을 마을 규약으로 오랜 세월을 유지해 왔었다.


다만 쑥섬의 우끄터리 동백꽃길이라고 부르는 숲을 아직까지도 '초분골/초목골'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숲 안에는 어릴 적까지 초분 한 동이 모셔져 있었고 작은섬으로 가는 '목넘애'에도 초분이 늘 2~3기가 모셔져 있었다.


초분은 남해안의 도서지방에 많이 쓰여진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쑥섬에서도 갑자기 상을 당하게 되면 뭍이나 나로도 본섬에 마땅한 장지를 얼른 정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초분을 '작은섬' 개인 소유 밭자리나 '목넘에'에 공동으로 쓸 수 있는 공간에 초분을 썼었다.


"염포 선산에 함께 갔다 오세"


젊은 장정들이 필요한 문중 일이라서 그의 도움도 좀 받을 요량으로 마침 집에서 찾아들었을 때 그는 한참 분재를 손질하고 있던 참이었다. 손에는 수형 만들기에 필요한 철사가 들려 있었고 철사걸이를 하여 송백 분재의 수심(樹心)을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사철 푸르름을 지니고 화분보다 아래쪽으로 쳐져 장엄하고 중후한 수격(樹格)을 가진 송백 분재였다.


"아는 사람이 이것을 달라고 한 것을 안 줬지"


그의 분재 벽은 그가 새우잡이 배를 그만두고 서였지 싶었다. 그의 형의 강요에 의해 몇 번인가를 배에 오르긴 했었지만 그가 새비빵(새우그물)을 끄는 것에는 더 이상 맥을 못 추고 늘어지자 그의 형도 포기를 했다고 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도망쳐 나온 뒤로 그는 어떤 동기에서였든지 분재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이것도 좀 보라구"


그가 귀하게 여기는 분재인 모양으로 장독대 한 켠에서 들고 나온 것은 학의 형상을 하고 있는 '솔나무(소나무)'였다.


한눈에 장독대 주변에 빼곡한 분재 군(群) 중에서 으뜸일 성싶었다. 그 해송은 오랜 시간을 흙이 적은 벼랑에서 자라고 비바람에 가지를 키우질 못했음인지 드러난 뿌리와 가지의 형상은 영락없는 학이 두 다리를 딛고 지상을 박차고 날아오르려는 비상형국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뿌리솟음 또는 근상(根上)이라고도 하는 분재기법으로 자연 스스로 키워낸 그놈은 그와 조우를 기다리고 있었기나 한 듯이 그 살리기 힘들다는 야생 해송이 화분으로 옮겨지고도 탈 없이 한 겨울을 그 청청한 모습으로 살아 있었고 금세라도 날개를 펴서 비상을 할 것만 같았다.

그는 그냥 '솔나무'라고 부르고 있어서 나는 이를 학송(鶴松)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는 가져가려는 시늉을 했더니 어림도 없다며 밀쳐내며 안된다고 했다.


"염포 선산에 안 가볼랑가?"


다시 혼자가 되어 있는 그를 데리고 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일손이 좀 필요해서 함께 가지고 했다.


"나 지금 바뻐"


나무 이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모양이었다.


"함께 가세. 거기도 쓸만한 분재 나무 감들이 많을테니"


그렇게 해서 따라온 것이었다.


거긴 사람의 손이 잘 닫지 않은 곳이라서 그가 찾아다니는 그런 수종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 손으로 그 나무들을 제거할 목적이었으니 여러 해 전에 줄기를 잘라 놓은 상수리나무 중에서 용케 움을 틔운 놈들은 그에게 좋은 분재감으로 제공될 수도 있을 거였다. 일거양득일 거라는 생각으로 어떻게든 배에다 소금을 싣고 염포까지 함께 가기만 하면 염포 선산까지 소금가마니를 올리는 일에 요긴하게 도움을 받을 거라는 생각에서 함께 가자는 것이었는데 그런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던 것이다.


"소금이나 좀 올려주고 나무를 하든지"


보다 못한 내가 한마디를 던져서야 그는 못 이긴 척하고 염포 선창에 부려놓은 소금가마니를 하나 올려놓는 시늉을 했을 뿐이었다.


소금가마니가 올라오는지 내려가는지 그걸 뿌리는지 마는지에 대해서는 숫제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그의 본래의 근성이 드러나는 순간이었고 지쳐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날 즈음에서는 그의 그런 행동들에 그동안 그에게 가져왔던 호의적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저승의 문턱으로부터 살아 돌아올 수 있게 했던 것이 어쩌면 조상님이 보살펴서 일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는 적어도 그가 그렇게 내 몰라라 하여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분재 나무에만 정신을 쏟고 있는 그의 맹목적 집착에 대한 나의 결론은 더 이상 기대할 가치가 없다라는 것이었다.


일곱 가마니의 소금을 산 중턱까지 지게에 짊어져 운반하고 뿌리고 어쩌고 한 탓으로 이틀 동안이나 몸살을 앓은 후에 쑥섬을 떠나오던 날 비바람이 치는 일기 탓도 탓이었겠지만 나는 그를 찾지 않았다.


그의 도움을 잔뜩 기대하고 사람을 더 쓰지 않았던 내 계산에 대한 우울함도 있었지만 그가 선산 나무에만 욕심을 부리고 선산을 돌보는 것에는 숫제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는 것에 대한 같은 집안의 한 사람으로 실망을 했고 분재 소재에만 욕심을 부리는 것을 보고는 천성은 어쩌지를 못하며 그 기질은 나이를 더 먹는다고 시간이 흐른다고 어쩌지를 못하는 것임에 대한 어떤 절망이 자리하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삼촌....."


그러나 그는 그런 궂은 일기 속에서 우산도 없이 먼저 뱃머리에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누가 그토록 탐을 내었다던 송백 분재를 커다란 비닐봉지에 넣어 들고 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나는 얼른 정리되지 않은 생각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그는 분재봉지를 나에게 건넸고 떠나가는 나룻배에다 대고 뭔 말인가를 더 하려는 기색이었으나 그 또한 가슴에 담아둔 그 말을 꺼내지 못하고 얼른 말이 되어 나오지 않자 손만을 들어 휘저으며 잘 가라는 작별의 인사를 대신하였다.


소금을 뿌리고 나서 다시 찾아와 잔을 올리고 찍은 사진이다. 주변에 소금이 하얗게 뿌려져 있는 것이 보인다.뒤에 오른쪽이 선친이시고 앞에 오른쪽이 필자이다.소금을 뿌리고 나서 다시 찾아와 잔을 올리고 찍은 사진이다. 주변에 소금이 하얗게 뿌려져 있는 것이 보인다.뒤에 오른쪽이 선친이시고 앞에 오른쪽이 필자이다.


<송백 분재>


시원을 이야기하랴

주어진 명이라고

바위섬 그 좁은 틈새에서

빗물로 연명하고

지나는 철새

잠시 쉬어 가는 낙으로

키를 키우렸더니

폭풍에 모두 꺾여

뿌리만 허공에

키를 키웠더라

낮게 더 낮게

바위에 붙어야

살아남는다고

남겨진 명이라도

바닷물로라도

어쩌든지 살아남아

천년 학을 기다렸더라.

1998.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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