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를 찾아서
<고려청자를 찾아서>
쑥섬에는 흥미로운 지명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쑥섬의 서쪽 뒤쪽에 위치하고 있는'배밑에'라는 곳입니다.
쑥섬이 전남1호 민간정원으로 잘 알려지고부터 여러 가지 새로운 이름들이 붙여지고 탐방하시는 여러분들의 글을 통해서 알려지고 있는 새로운 지명과 함께 외부에 알려진 현지 지명은 주로 ‘중빠진굴’이나 ‘성화등대‘ 등이 있습니다만 아직까지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지명들이 있는데 ’배밑에‘라는 지명이 그 중에 하나 입니다.
‘배밑에‘
이름에서도 대충 짐작할 수 있듯이 ‘밑에 배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밑'이란 '바다밑'이거나 '벼랑밑'을 의미합니다.
쑥섬의 뒤쪽은 잘 알려진 대로 해식 절벽들이 다수 존재하는데 성화등대를 깃점으로 고무신짝만 한 크기의 쑥섬에 '촌스럽지만 재미있는' 지명들이 제법 있습니다.
일테면 이렇습니다.
'중빠진굴' : 자연동굴이 있는 천애 절벽이 있는 곳의 지명인데 전설에 의하면 중과 신선이 건너기 내기를 하였는데 중이 그 절벽을 건너다가 떨어져서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 이미 탐방객들의 글을 통해서 많이 알려져 있는 곳으로 멋진 벼랑이 있어서 한동안은 이곳까지 내려갈 수 있도록 허용을 했는데 지금은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오리똥눈디' : 이미 여기서도 소개가 되었듯이 이곳 또한 벼랑의 이름으로 '오리가 똥을 싸는 곳'이라는 내용이고 지금 즈음이면 많은 가마우지들이 모여들어서 겨울나기를 하느라 똥을 싸 놓고 있을 것입니다. 옛날에는 등대가 없던 시절에는 한 밤중에 이 오리똥이 인광이 나서 멀리 '윗녘(목포, 완도, 녹동방향)에서 '아랫녘(여수 방향)'으로 뱃길을 잡아가는 데 길잡이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어쩌면 ‘배밑에‘하고 연관이 있는 지명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야광이 나는 이곳으로 찾아들다가 조난을 당했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배밑에‘ : 오리똥눈디 바로 옆에 면하고 있는 벼랑입니다. 배가 밑에 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벼랑으로 지금의 하늘정원 바로 너머가 ‘배밑에‘입니다.
'평널이': ‘배밑에‘하고 접하고 있는 곳으로 평평하고 제법 너른 반석이 있는 곳인데 바로 옆이 또한 천길 벼랑이 있는 청자갈밭이어서 성화등대-중빠진굴-오리똥눈디-배밑에-평널이로 이어지는 쑥섬 뒤의 벼랑 중에 하나 입니다. 옛날에 '팽나무'가 있었는데 이를 두고 '팽널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는 곳입니다.
쑥섬과 내섬(사양도) 사이의 좁은 물목은 잘 알려진 수로 중에 하나입니다. 작게는 목포에서 나로도를 경유해서 여수와 부산으로 가는 남해안의 주요 뱃길이며 크게는 옛날부터 중국에서 한국을 경유해서 일본으로 가는 항로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한반도의 남쪽의 주요 항구였던 목포, 완도와 여수, 충무 그리고 부산을 잇는 뱃길이었고 그 여정에 나로도항이 있었는데 나로도에서 나는 많은 수산물들을 여수 등지로 실어가는 곳이기도 했지만 저희 때까지도 일본으로 삼치와 능성어 그리고 참장어를 실어 나르던 주요 기항 중에 한 곳이었습니다.
그러자면 '웃녘'에서 '아랫녘'으로 가는 모든 배들은 이곳을 지나야 하는데 이곳을 지날 때 날이 궂은 밤에 운항을 하거나 난바다에서 조업을 하다가 풍랑을 만나면 피항을 하는 배들이 나로도항의 내항으로 들어오는 과정 중에 뱃길을 잘못 잡아 와서 부딪혀 난파가 되는 벼랑의 이름이 이름하여 '배밑에'라는 지명이라는 것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왜정 때도 군함이 와서 부딪혀서 좌초되어 가라 앉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는데 아마도 오래 전부터 자주 배가 와서 쑥섬 뒷먼에 부딪혀 난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의 유년시절에는 누구네 배가 조난을 당해서 배를 잃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많지는 않은데 그 이전 시절에는 아마도 그런 경우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런 '배밑에'는 쑥섬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다녀온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접근성이 좋지 않기 때문인데 쑥섬 뒷먼으로 넘어가서 '옹삭한' 벼랑길을 타고 내려가야 했기에 '자장궂은' 아이들이 물고기 낚으러 다니거나 '갯것'을 하러 넘어가는 사람들 이외에는 주로 미역철에 배를 타고 돌아가서 거기에서 미역을 채취를 하러 갔던 곳일 뿐 그곳을 잘 아는 이들은 많지를 않은 거 같습니다.
저야 원체 '자장궂어서(별나서)' 그곳에 낚시를 하러 대나무 낚싯대를 메고 넘나들었던 곳인데 그곳에는 씨알이 좋은 '바닥노래미'라고 하는 노래미가 잘 물었고 특히 '오리똥눈디'하고 면해 있는 벼랑 즈음에 가면 수심이 좀 깊은 곳이 있고 거기에 또 작은 물속 동굴이 있어서 그 속으로 파도가 드나드는 소리가 울리는 곳이 있는데 아마도 그곳 즈음이 뱃길을 잘못 잡은 배들이 와서 충돌하고 파선이 되었던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시 되집어 보면 조난을 당해서 좌초한 선박으로부터 구사일생으로 살이남아 헤엄을 쳐서 ‘배밑에’ 올랐다 하더래도 어둠을 헤치고 궂은 날씨 속에서 마을쪽으로 넘어올 수 있는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해서 좀처럼 좌초된 내용을 전하여 구조를 요청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얼마나 많은 배들이 가라앉았는지를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란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배가 밑에 있는 곳'이라는 지명의 내력을 가만 생각을 해 보면 '이 바닷속에는 배가 가라앉아 있다'는 이야기가 가능하고 어쩌면 그곳 바닷속에는 오랜 기간 동안에 다양한 이유로 와서 쑥섬 뒷먼 벼랑에 부딪혀서 침몰한 난파선들이 많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 한 번은 그 물밑을 들여다볼 일입니다.
혹시 압니까?
그 아래에서 웃녁 강진에서 실어 나르던 빛 좋은 청자가 잔득 건져질지요. 아니면 왜정 때 중국에서 잔뜩 노략질을 해서 몰래 싣고 가던 왜놈들 금덩이라도 거기 잠자고 있을런지요.
하다 못해 흰 돛단배에 싣고 강진에서 나로도 축정항으로 싣고 오던 질 좋은 옹기라도 나올지 모를 일입니다.
오늘 밤에는 잠이 안 올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배밑에‘ 잠자고 있을 멋진 문양의 빛좋은 청자를 건져낼 수 있을까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 때문이지 싶습니다.
1976년 신안 증도 앞바다에서 발견된 난파선에서 쏟아져 나온 고려청자와 다양한 도자기, 금속 공예품 등 약 2만점의 유물이 발굴되었는데 이 신안선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을 잇는 국제 무역선으로 추정이 되었는데 이 무역선들이 지나다니던 주요 항로가 바로 여기 쑥섬과 내섬(사양도)의 물목이었다고 하니 어찌 잠을 편하게 잘 수 있겠습니까?
개성이나 한양으로 올라가는 동안에 난파되었다가 최근에 수습이 된 태안 마도해역이니 영흥도 보물선들은 도성으로 올라가는 도중이었을 것이니 그렇다 치더래도 남해안의 주요 항구로 움직이던 무역선이거나 일본으로 향하는 무역선들의 남해안의 주요 항로 중에 하나였던 여기 쑥섬의 물목에서 발생한 해난 사고는 대부분 아마 여기 '배밑에'였을 거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니 더욱 잠은 달아나 버렸습니다.
누가 함께 하실 분은 아니 계시는지요?
마땅한 동업자라도 생기면 당장 서울살이를 접고 쑥섬으로 내려가서 쑥섬 ‘배밑에’ 보물선 탐사를 해 볼 생각에 마음이 급해집니다.
혹시 또 압니까?
지금의 '전남 민간정원 1호' '꽃섬', '고양이섬'에 더해서 '보물섬'으로 이름을 얻게 될지요.
'배밑에'
'배밑에' 잠자고 있는 시간들이 궁금합니다.
<배밑에>
두웅 두웅 둥 뱃길이 막혔다 북을 울려라 나팔을 불어라
웃녘 칠산바다 멀리 연평 파시 다녀오는 길
파도가 높고 안개가 깊다 북소리 드높여라 여기가 어디냐
천길 바다에 용왕이시여 만길 당숲에 당할아버지시여
길을 내어 주시오 뱃길을 열어 주시오
배밑이다!
길을 잘못 들었다. 세상사 한 순간의 방심이
황천길을 부르는구나 머언 바다에서 들다가
허망하게 뱃길을 잃어 배도 잃고 한 세상 마감을 하누나
칠흑 같은 어둠 속 오리똥눈디, 오지안을 비켜 배밑에서
파도 소리에 묻혀 안개 속에 갇혀 부르던 소리
소리는 이제 파도가 되고 시간이 되고 전설이 되어
시치미 뚜욱 떼고 초사리 초저녁 한물 간 봄볕이 되고
(출처 : 쑥섬이야기 시집 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