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조선인의 ‘국적’ 논란에 부쳐
일제 강점기, 조선인의 ‘국적’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최근 있었습니다. 아쉽지만, 여전히 진행 중이고요. 제가 보기에, 본질적으로 같은 생각인데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저는 봅니다.
예를 들지요.
베를린 올림픽의 영웅, 손기정 선생이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대회 참가를 위해 독일에 입국할 때 그의 여권 국적란에는 뭐라고 적혔을까요? ‘조선’은 절대로 아니었을 겁니다. 아쉽지만, ‘일본’이었겠지요.
혹자는, 아니 대다수는 이를 두고, 일본의 조선 강점은 불법이고 원천적으로 무효이니까 손기정 선생의 국적은 조선이라고 답할 겁니다.
저 같은 사람은 “아쉽지만, 공식적으로 당시 손기정 선생의 국적은 일본이다. 하지만, 그가 마음 속으로 일본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조선인이라고 자랑스레 생각했다.”고 답할 겁니다. (1980년대 제작 방영된 외국의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당시 외국의 어느 마라톤 참가자가 손 선생에게 ‘일본 사람이냐“고 묻자 손 선생은 ”아니요, 저는 조선인입니다.“라고 답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손 선생의 국적에 대한 두 가지 방식의 대답 중 어느 하나만이 옳은 것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국부 중의 한 분으로 추앙받는 김구 선생이 일제 강점기 ’공식 여권‘으로 해외를 다니실 때 그의 여권 국적란에는 무엇이라고 적혔을까요? ’조선‘이라고 적혔을 확률은 0%입니다. 그렇다고 김구 선생의 나라 사랑이 조금이라도 작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촉발된 일제 강점기 조선인 국적 논쟁을 보면서 절망합니다. 논쟁의 여지가 없는 문제까지도 논쟁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극단화 편광화됐다는 증표로써 말입니다.
일제 강점기, 설령 여권 국적란에 일본인이나 중국인으로 적혔을지라도, 손기정 선생이나 김구 선생을 조선인이 아니었다고 생각할 사람은 현금 대한민국 사람 중에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여권 국적란에는 그리 적힐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 경우, 아쉽고도 통탄스럽지만, 당시 ’공식적 국제적 차원 혹은 시각‘에서 손기정 선생이나 김구 선생을 일본인 혹은 중국인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한들 이에 대해 비판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그렇게 말한 사람조차 ’손 선생이나 김구 선생을 조선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 터이니까요.
일본의 조선 강점을 원천적 무효라고 주장하는 것과, 당대 국제적이거나 공식적 차원에서 그들의 국적은 일본이나 중국이었다고 말하는 게 모순 관계는 아닙니다. 그래서 나라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이고요.
제가 혐오하는 지적 태도 중의 하나가 ’단장취의‘입니다. 어느 사람의 말이나 글에서 ’어느 한 대목‘만을 따와서 상대방 주장의 본질인 양 떠드는 태도이지요.
’통탄스럽지만, 일제 강점기 조선인의 여권 국적란에는 ‘조선’이라고 적힐 수 없었다. 때문에 당시 조선인의 국적은 공식적으로는 일본 혹은 중국 등으로 봐야 한다‘고 누군가(이하 ’A’) 주장했을 때 ”자, 봐라, 저 인간(A)은 손기정 선생이나 김구 선생이 조선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고 이야기하는 태도는 정말로 저열한 논의 방식이라고 봅니다.
A의 말이나 글의 본질이 ’손기정 선생이나 김구 선생이 조선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이런 방식의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의 극단성 편광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아쉽게도, ’평소 저 분은 사실 관계에 바탕해서 말과 글을 펼친다‘고 생각하는 이조차도 이런 편광화 극단화에 편승해서 말하고 글 쓰는 것을 요즘 종종 목격합니다. 그런 분들 대부분이 ”내 생각’만‘이 옳다“고 너무도 쉽게 이야기하고요.
우리 사회의 극단성을 비판하는 이조차도 자신의 극단성을 너무도 쉽게 노출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저는 절망합니다.
1936년 손기정 선생의 ’공식 국적‘은 너무도 아쉽고 통탄스럽지만 일본이었다는 주장을 비판하시는 분들에게 권합니다. 국제올림픽 위원회 홈페이지를 가보면 역대 올림픽 경기 결과를 소개하는 난이 있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결과를 소개하는 코너에 우승자 손기정 선생과 남승룡 선생이 어떻게 적혀 있는가를 보시려면 아래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s://www.olympics.com/en/olympic-games/berlin-1936/results/athletics/marathon-men
통탄스럽지만, 손기정 선생은 일본 국적의 ’기테이 손‘으로 적혀 있습니다. 동메달을 따신 남승룡 선생 역시 일본 국적의 ’난 쇼류‘로 적혀 있고요. 이게 소위 ’공식적이고도 국제적인 시각‘입니다.(물론 이런 시각’만‘이 옳다고 저는 보지 않습니다.)
우리끼리 의미 없는 논쟁을 하기 전에, IOC에 적힌 것부터 고쳐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수정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