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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발표하러 독일이요?

by 케이

저는 석사 2학년 때 독일 함부르크로 학회를 갈 기회가 있었어요. 그 전년도에 도쿄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 했던 연구를 발표하러 가는 자리였습니다. 랩실 사람들 4명과 함께 떠난 좌충우돌 첫 해외 학회 경험이었죠.



첫날부터 우당탕탕의 연속. 저희는 함부르크로 직항이 없었기 때문에 파리에서 경유해야 했어요. 경유 시간은 왜 이렇게 긴지... 다들 기름진 머리로 딱딱해서 이가 깨질 것 같은 바게트를 먹던 기억도 나네요. 겨우 도착한 함부르크의 밤은 어둡고 마약에 취한 것 같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보였어요. 태연한 택시 아저씨를 제외한 저희는 모두 겁먹었고요. 하루 묵었어야 했던 캡슐 호텔은 작아서 트렁크도 완전히 필 수 없었지만, 이코노미 좌석에서 힘들게 자고 꾀죄죄했던 머리를 감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극적으로 상쾌했던 순간이었어요.


독일 학회였어도 영어로 발표하고 생활했어요. 만났던 대부분의 분들이 영어가 가능했기 때문에 따로 독일어를 몰라도 돌아다니는데 무리는 없었어요.


학회는 총워크숍까지 합하면 7일, 그 여정 중에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에 대해 공유하려고 해요.




좋았던 점


1. HCI 연구자들이 이렇게 많고, 진심이구나

얼마나 많은 인구가 모였는지 수치적으로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예상보다도 더 많은 인원이 왔던 걸로 기억해요. 코로나 이후로 첫 오프라인 학회여서 그런지 역대 가장 많이 등록했다고도 들었어요. 수 많은 발표 자리가 있는 것을 보면서, 학교 안에서만 갇혀있던 내 시야가 넓혀지는 느낌이었어요. 나와 같은 분야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반갑기도 했고요.


2. 활기찬 건강한 에너지들 (여유)

분명 연구를 하면서 힘든 점이 많았을 텐데도, 어두운 얼굴 없이 기쁘게, 심지어는 활기차게 발표했던 사람들의 표정이 아직도 선해요. 연구를 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들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경직되어 있는 저를 돌아보기도 했어요.


3. 연구의 완성도

처음 들었던 발표가 건물과 사람들의 움직임에 대한 연구를 했고, 그다음에는 MIT에서 했던 연구였는데 성악단에서 모티브를 얻은 디지털 코르셋(?) 같은 연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모두 '와... 1년 안에 가능했을 연구였을까, 저 정도 스케일은 되어야 풀페이퍼로 발표할 수 있는 건가'라는 생각을 속으로 했어요. 발표가 시작될 때마다 놀랐던 기억이 있네요. 이때는 석사 연구를 제대로 시작하기 전이었어서, 많은 영감과 자극을 받고 올 수 있었어요.


아쉬웠던 점 & 배운 점


1. 영어 청해의 어려움

발표하는 사람은 앞에 PPT가 있기 때문에, 말이 잘 안 들려도 PPT를 보고 내용을 얼추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발표 끝나고 마치 탁구처럼 질문자와 발표자가 이런저런 질의응답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도저히 무슨 내용을 말하는 건지 못 알아들을 때도 많았어요.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분명 저도 이해한다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그 내용을 100% 이해하지 못해 아쉬울 때가 정말 많았어요. 제가 포스터 발표를 할 때도, 좀 더 잘 알아듣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아쉬움이 많이 들었어요.


2. 내가 더 쉽게 다가가는 성격이었다면

학회는 한정적인 기간 안에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 곳이기 때문에, 네트워킹이 주 목적인 사람들도 많아요. 그래서 그런지 직설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의 분들이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봤어요. 보면서, 영어가 100% 완벽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연구를 소개할 줄 알고 PR 하려는 태도 자체가 귀하다고 생각이 되었어요. 처음에는 낯설고 어려워서 다가가기 어려웠지만, 이후에 또 다른 기회가 생긴다면 적극적으로 연구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3. 긴장하기보다는, 즐길 수 있기를

저는 제가 발표하는 시간 전부터 심장이 빨리 뛰고, 긴장이 되어서 어려움을 겪었어요. 남들한테는 보이지 않았을 수 있지만, '혹시나 내가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같은 두려움이 가득 찼었어요. 그래도 계속 '즐기자'를 되새기려고 노력했지만, 끝나고 나서도 여운 때문에 한동안은 멍을 때렸어요. 여유가 생겨서 이 학회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언젠가는 그런 자신을 볼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죠.




마지막 날에는 마트에서 산 라면을 다 같이 먹었던 기억도 나네요. (역시나 한국인은 라면이...) 늘 저에게는 미지의 영역이었던 '학회'를 가보게 되어서 이런저런 경험과 배움을 얻고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해외 학회가 궁금했던 분들, CHI 학회가 궁금했던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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