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 자해 수용자

by 지와 사랑

"6사 응급환자 발생! 의료과로 이동 중!"

무전기로 들려오는 동료직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심상치 않은 상황인 것 같아 의료과 쪽으로 달려가 보니 수용자 임 ○○이 자해를 해서 발뒤꿈치 살이 너덜너덜하고 피범벅이 되어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쇠붙이로 아킬레스건을 끊으려고 자해한 것이었다.


임○○는 상습 자해 수용자로 중점관리대상이었는데 한동안 조용하더니 뭐가 못 마땅했는지 또다시 자해를 시도한 것이다.


임○○를 잘 아는 직원들 말에 의하면 임○○가 젊었을 때에는 각종 정보공개 청구에 인권위 진정으로 직원들을 괴롭히고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자해 등으로 끊임없이 사고를 일으켜 임○○가 N교도소에 수용 당시 오죽하면 N소 당당 직원이 제발 좀 조용히 있으라며 임○○에게 매달 몇십 만원씩 영치금을 넣어 줄 정도로 유명한 수용자였다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임○○도 50대 후반이 되었고 D교도소에 온 후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정보공개 청구니 인권 진정을 해도 담담하게 순순히 받아주고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몇번 자해를 시도했는데 치료해주고 조사 수용하고 평범하게 처리하고 크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그도 그런 것이 D소에는 사형수가 10명이 넘고, 무기수도 100명이 넘게 수용되어 있으며 거물급(?)들도 많아 임○○는 상습 자해 수용자로 중점관리대상자로 명단에 오르긴 했지만 직원들의 관심을 끌 정도는 아니었다.


의료과 직원(간호사 자격증 보유 교도관)이 너덜너덜해진 발뒤꿈치의 피를 씻어내고 아킬레스건을 확인해 보니 다행히 병원에 나갈 정도는 아니었다.


담담 직원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안정을 찾은 후 거실바닥에 피가 낭자하고 임○○가 쓰러져 있어 심각한 상황으로 판단하고 다급히 목소리로 지원을 요청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


며칠 후 나를 교도관의 길로 이끌어 준 선배 교도관 친구와 낚시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임○○ 자해 사건을 얘기하자 친구가 임○○ 불쌍한 친구니 잘 대해 주라는 얘기를 하였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친구가 몇 년 전 자신이 근무하는 교도소에서 임○○에게 관심을 가지고 신우회에서 영치금도 넣어주고 기독교 집회에도 참석하게 해서 잘 데리고 있었는데 나이 먹어서 가족도 없어 돌보아줄 사람도 없고 건강도 좋지 않고 눈도 나빠 책도 읽지 못해 친구가 인경도 맞춰 줬다며 임○○에게 자기 이름을 말하며 성경 열심히 읽고 생활 잘하고 있으라고 하면 어느 정도 말을 들을 것이라고 하였다.


야간 근무지가 임○○가 수용되어있는 사동이 포함되어 있는 곳으로 변경되어 임○○를 찾아가 거실 안을 들여다보니 신문이 앞에 놓여 있는데 멍하니 벽만 쳐다보고 있었다.

신문은 다 봤냐? 고 물어보니 글씨가 안 보인단다. 친구 이름을 말하니 D소로 이송 온 후 소식도 못 전해드렸는데 잘 지내고 계시냐? 고 물어봐 나와 절친인데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한 후, 아킬레스건 자해 건에 대해 물어보자

독거실에서 조용히 성경책하고 신문 읽고 잘 지냈는데 안경이 파손되어 성경책도 보이지 않고 아무도 신경 써주는 사람도 없어서 일을 한번 저지른 것이라고 말해 지금 심경은 어떠냐?고 물어보자 다시는 그런 짓 안 할 거라며 미안하지만 친구에게 안경 맞출 돈 좀 넣어 달라고 말해주면 안 되냐? 고 말한다.

나는 한숨을 쉬며 친구가 이번 자해 사건을 듣고 걱정 많이 하니 잘 지내고 있으라는 말을 하며 상담을 마쳤다.


사회복귀과에 전화를 해서 임○○ 기독교 자매결연을 맺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안경 얘기를 하니 안경도 수용자 복지지원금으로 해결해준다고 하였다.


임○○가 있는 사동이 속한 팀은 D소에서 가장 힘든 근무지 두 곳 중 하나였는데 로테이션 기간 두 달을 별다른 사고 없이 무사히 마치고 다음 팀으로 옮겨 갔고 1년 6개월 후 D소를 떠날 때까지 임○○의 이름은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조용히 잘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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