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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버스앤러버스 Oct 07. 2023

짜릿하고 화끈하게, 내일은 도둑왕

에디터 콜리

 훔치는 영화는 왜 짜릿할까. 이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을 바로 ‘오션스’ 시리즈가 가지고 있다.

 오션스 시리즈는 케이퍼 무비, 하이스트 영화라고 불리는 소위 ‘강도물’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2001년 개봉한 <오션스 11>의 흥행은 12, 13, 8로 이어지는 후속 시리즈의 제작뿐만 아니라 다른 강도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의 많은 작품들에 적용되는 클리셰가 여기서 탄생했다는 걸 생각하면, 오션스 시리즈는 정말 짜릿하게 잘 만든 케이퍼 무비였던 셈이다. 

 그리고 이 짜릿함은 회사-집 혹은 학교-집을 반복하며 고루한 일상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느낌표를 선사한다. 마침 슬슬 회사 생활에 적응하며 새로운 활력이 필요한 나에게도 이런 짜릿함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케이퍼 무비를 파헤치고 직접 도둑질(?)을 해 보면서, 나의 일상에 유쾌한 느낌표를 찍어보려 한다.


*이 글에는 <오션스 8>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케이퍼 무비의 클리셰 파헤치기

 오션스 시리즈가 남긴 케이퍼 무비의 클리셰는 그 중요성이 어마어마하다. 케이퍼 무비는 매번 같은 클리셰를 사용한다며 욕하더라도 결국 이 클리셰 없이는 케이퍼 무비를 만들지 못할 거다. 사실 이 요소들이 없다면 케이퍼 무비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다. 케이퍼 무비를 한 편이라도 봤다면 공감할 클리셰들은 아래와 같다. 이 클리셰들이 매번 사용되면 어떤가, 재밌기만 한 걸!


1) 각자 전문 분야가 있는 인물들이 모임  

 ‘오션스’ 시리즈는 제목에서부터 등장인물의 수를 강조하는 만큼, 주인공들의 역할이 세분화되어 있다. <오션스 8> 역시 각각 리더&설계자(데비 오션), 지휘관(루), 디자이너(로즈), 세공사(아미타), 해커(나인볼), 행동대장(태미), 소매치기(콘스탄스), 타깃&배우(다프네) 등 여덟 팀원이 모두 맡은 바가 명확하다.
 훔치고자 하는 대상, 그 대상이 위치하는 장소 등에 따라 팀의 구성과 역할은 바뀌는 편이나 대부분의 케이퍼 무비에서 빠지지 않는 역할을 고르자면 단연 해커다. 경비를 삼엄한 곳을 뚫어야 하기에 해커는 리더만큼이나 필수적이다. 특히 현대를 배경으로 할수록 해커가 활약하며, 작게는 나인볼처럼 CCTV를 해킹해 방향을 조작하는 것부터 상황에 따라 소방 시스템, 급수 시스템을 조작하는 등 그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2) 보안이 삼엄하고, 중요한 물건이 있는 곳을 노림  

 <오션스 8>의 목표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의 ‘멧 갈라’에서, 배우 다프네가 찬 시가 1,500억 원짜리 ‘까르띠에 잔느 투생’을 훔치는 거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평범한 유물 하나를 훔치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심지어 보호해야 할 셀러브리티가 잔뜩 모인 멧 갈라가 열리는 날에, 특수 자석으로만 여닫을 수 있는 엄청난 금액대의 목걸이를 훔친다는 삼중고의 설정은 영화의 긴장감을 크게 높인다. 그리고 이 긴장감은 관객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루즈함을 느끼지 않고 집중하게 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3) 잘 진행되는 듯하다가 갑자기 계획이 어그러질 위기에 처함  

 그렇게 귀중한 물건을 훔치는 게 쉬운 일일 리는 없다. 계획한 대로 잘 흘러가는 모습을 보며 관객이 잠깐 숨을 돌릴 때쯤, 일이 발각되거나 모든 걸 망칠 만한 상황이 발생한다. 아미타가 잔느 투생을 분해하기 위해 화장실에서 한참 나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직원이 등장했을 때, 관객은 모두 아미타가 손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이기를 바라며 마음 졸였을 거다. 그리고 이런 위기 덕분에, 겨우 분해를 마친 아미타가 아무렇지 않은 척 화장실을 벗어날 때의 쾌감은 더욱 증폭된다.  


4) 통쾌한 반전으로 아슬아슬하게 성공함  

 목걸이를 도둑맞은 보험사와 경찰의 조사로 포위망이 좁혀져 올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인물로 다프네가 깜짝 등장한다. 훔쳐야 할 목걸이를 차고 있는, 팀의 적과 같은 대상으로 여겨졌던 다프네 역시 알고 보니 한 패였다는 사실은 <오션스 8>의 가장 큰 반전이다. 포스터나 예고편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영화를 봤던 나는, 다프네의 정체가 밝혀지고 나서야 영화 제목은 <오션스 8>이면서 인물은 7명인 이유를 의심하지 않았는지를 자책했다. 하지만 전혀 몰랐던 덕에, <오션스 8>의 반전은 내게 <유주얼 서스펙트>보다도 큰 충격을 선사했다.




이 시리즈도 케이퍼 무비의 민족이었어

 오션스 시리즈가 케이퍼 무비의 교과서라면, 이 교과서와 맥락을 같이 하면서도 나름의 매력을 뽐내는, 익힘책과 같은 케이퍼 무비 시리즈들이 있다. 각기 다른 이유로 주목할 만한 3가지 케이퍼 무비 시리즈를 소개한다. 원체 유명한 시리즈이라 새로운 작품을 소개한다는 의미는 덜하지만, 별생각 없이 재미나게 보았던 시리즈가 사실은 케이퍼 무비였음을 알게 되었을 때의 새로운 매력 포인트를 소개하고자 한다. 


<종이의 집> La Casa de Papel  

 오션스 시리즈의 명성을 이어받은 케이퍼 무비 시리즈가 있다면 종이의 집 아닐까. 넷플릭스에 최초 공개되었을 당시 전 세계 드라마 순위에서 2위를 차지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리메이크된 적이 있을 정도로 인기 있는 시리즈다. 파트 1, 2에서는 스페인 조폐국의 돈을 털고, 파트 3~5에서는 스페인 은행 지하의 금을 훔친다. 종이의 집의 묘미는 작전을 이끄는 리더 역할인 ‘교수’가 경찰을 상대로 펼치는 짜릿한 전략이다.

 한 가지 비판을 받는 부분은 등장인물들이 독단적으로 행동하다가 작전을 실패 위기로 끌고 가는 상황이 자주 등장해 답답함을 자아낸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결국 작전을 성공해 내는 통쾌함이 뒤따라오니, 케이퍼 무비에 조마조마함을 불어넣기 위해 등장한 클리셰라고 생각하며 귀엽게 넘어가주자. 

 

<미션 임파서블> Mission: Impossible  

미션 임파서블을 언급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핵심 키워드는 ‘액션 첩보물’이지만, 따지고 보면 미션 임파서블의 전 시리즈는 정보를 훔치든, 물건을 훔치든, 사람을 훔쳐서 구해내든 꼭 무언가를 ‘훔치는’ 영화다. 전지구인의 목숨이 달린 어렵고 중요한 미션을 해낸다는 기본 스토리 라인 속에서 매번 비슷한 차 추격전, 몸싸움 같은 요소가 반복되다 보니 어떤 점에서는 꽤 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기를 잃지 않은 채  내년 개봉을 앞둔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TWO’까지 총 8편이나 시리즈가 계속될 수 있었던 비결은, 매번 달라지는 적과 그 적에게서 무엇을 어떻게 훔칠지가 기대되어서다.

 가장 최근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에서는 전 세계에서 제일 똑똑하고 위험한 인공지능 ‘엔티티’를 제어할 수 있는 두 조각의 열쇠를 찾고 훔치는데, 디지털 세계를 장악한 인공지능과의 싸움인 만큼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적 요소를 활용해 전략을 구상하는 주인공 해커들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나우 유 씨 미> Now You See Me  

 케이퍼 무비의 인기에 따라, 무언가를 훔친다는 기본 설정과 클리셰는 남겨둔 채 새로운 소재를 더해 참신하게 전개하는 케이퍼 무비가 점점 늘고 있다. <나우 유 씨 미>는 케이퍼 무비에 마술을 더한 시리즈로, 4명의 마술사가 ‘포 호스맨’이라는 이름으로 뭉쳐 은행 비자금, 해킹 칩 등을 훔치는 스토리다.

 작전에 사용된 마술의 비밀을 대부분 밝혀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술이라기보다는 CG 기술을 활용한  SF에 가깝다는 비판도 있으나  뛰어난 지략, 화려한 액션으로 훔쳐내던 다른 케이퍼 무비와는 다르게 마술을 활용해 훔친다는 색다른 시도는 확실히 매력이 있다. 2024년에 3편이 개봉될 예정이라고 하니, 1편과 2편을 흥미롭게 본 사람이라면 한 번 더 기대해 보아도 좋겠다.




내일은 도둑왕

 케이퍼 무비의 매력 포인트를 요모조모 살펴보았으니 이젠 직접 훔쳐볼 차례다. 현실 세계에서 합법적으로 도둑질을 해 보기 위해 떠올린 건 도둑 컨셉의 방탈출이다. 나름 방탈출을 좋아한다고 자부하는 사람으로서 사극 테마, 학교 테마, 우주 테마 등 여러 가지 스토리의 방탈출을 경험해 보았지만 무언가를 ‘훔치는’ 방탈출은 처음! 이왕 훔치는 거 제대로 훔쳐보기 위해 찾은 방탈출은 ‘강남 플레이더월드’의 ‘이웃집 또털어’다. 주말에 플레이하고 싶을 경우 일주일 전 예약이 오픈되자마자 티켓팅처럼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테마다. 같은 지점의 ‘이웃집 또도와’보다 ‘이웃집 또털어’가 훨씬 인기가 많은 걸 보면 사람들은 남을 돕는 것보다 터는 걸 더 좋아하는 걸까. 

 방탈출은 직접 몸을 움직이는 피지컬 요소와 문제를 풀기 위해 머리를 쓰는 ‘뇌지컬’ 요소,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자물쇠 수십 개만 연달아 푸는 것보다 적절한 피지컬 요소를 좋아하는 내게 문제풀이와 방털기가 모두 있다는 테마 후기는 꽤 매력적이었다. 특히 이 테마가 특별한 이유는, 마치 케이퍼 무비처럼 함께 플레이하는 인원들이 방털기 팀, 방탈출 팀으로 역할을 나누어 맡게 된다고 해서다. 2인부터 가능한 테마지만, 여러 명이 함께할수록 재미날 것 같아 평소 보드게임을 주기적으로 함께하는 메이트들에게 영업해 5명이서 도둑질을 하러 가 보았다.

 80분 동안 열심히 도둑질한 결과는, 대성공이다. 테마의 목표인 백만 원 상당의 물건과 보석을 모두 훔쳤고, 한 명도 낙오되지 않고 무사히 마을을 탈출했다. 막판에 시간이 부족해 여러 개의 힌트를 사용했고, 직원 분의 도움도 살짝 받았지만 아무튼 실적증명서까지 받았으니 틀림없이 성공이다! 마을을 열심히 털다 보니 후기에서처럼 자연스럽게 보물을 찾는 팀, 다음 가게로 넘어가기 위해 문제를 푸는 팀으로 나뉘게 되었다.

나는 둘 중 보물을 찾는 역할에 더 몰두했는데, 꼭꼭 숨어있는 보물을 찾기 위해 소품의 구석구석 먼지가 쌓인 곳까지 손으로 훑는 나를 발견했을 때 어쩌면 도둑질이 나름 적성에 맞을지도 모른다는 위험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보물을 찾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건 다음 가게를 털기 위해 머리와 몸을 아끼지 않고 노력하는 팀원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한창 보물을 찾다가 가게 밖을 내다보았을 때, 다음 가게로 넘어가기 위해 무언가를 열심히 뜯어내고 있는 팀원을 보았을 때의 충격과 고마움이 잊히지 않는다..!

게다가 가족도둑단 컨셉이었으니 어쩌면 80분 동안 우리는 팀원을 넘어 할머니, 아빠, 엄마, 누나, 동생으로서 끈끈한 가족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몇 번이고 보드게임과 방탈출을 함께한 메이트들이었지만 지금까지의 만남과는 다르게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성공 인증 보드판에 당당히  ‘OCEAN’S FIVE’를 쓸 만큼 멋진 한 팀이 되었달까. 짜릿함과 동료애를 나누며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가족도둑단 ‘이웃집 또털어’로 도둑질을 함께 해보길 추천한다. 





직접 도둑질까지 해보니 확실히 알겠다. 매력적인 장르는 많고 많지만, 케이퍼 무비만이 가질 수 있는, 가려운 데를 속 시원하게 긁어주는 듯한 묘한 쾌감이 있다. 나도 모르게 ‘입틀막’하게 되는 기발한 플랜과 반전, 지키려는 자와 훔치려는 자의 스릴 넘치는 액션신 등이 이 쾌감을 구성한다.

 특히 현실에서는 상상만 해 보았던 ‘나쁜 짓’에 대한 욕구를 대리만족시켜, 야릇한 배덕감을 안겨준다는 포인트에서 케이퍼 무비의 매력이 폭발하는 것 같다. 터질 걸 알면서도 괜히 건드려보고 싶은 콜라를 내 눈앞에서 직접 흔들어 주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답답한 내 일상에 팡하고 터지는 콜라가 필요한 바로 그 순간에, 케이퍼 무비를 보시면 좋겠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휘감는 짜릿함에 정신 못 차리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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