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일영
<오션스8>의 모든 인물은 퍼즐로 짜맞춘 듯 해서 한 명이라도 없으면 미완성이 된다. ‘아미타(민디 켈링)’ 도 마찬가지다. 보석 훔치기 프로젝트에 보석 전문가가 빠질 수는 없다. 작전 막바지, 빠르고 정확하게 다이아몬드를 7조각으로 나눈 아미타 덕에 멤버들은 수색에 걸리지 않고 갈라쇼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정해진 시간을 넘기면 작전이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압박 속에서 성공적으로 임무를 끝낸 아미타의 손이 놀라울 뿐이다.
아미타의 직업은 보석 감정/세공사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세공’은 ‘잔손을 많이 들여 정밀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인간의 손이 구사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동작들로 품을 들여 아름다운 보석을 깎아내는 일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 손은 아미타의 손과 대척점에 있다. 나의 동작에서 잔손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약간의 수전증과 부주의함이 콜라보하여 과감하다면 과감하고, 때로는 다치거나 결과물이 2% 이상 부족한 채로 끝나고 마는 손을 가졌다. 일련의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 나는 손으로 하는 작업들을 싫어하게 되었다. 이런 사람도 과연 보석세공에 도전할 수 있을까?
도전에 앞서 보석세공을 업으로 하는 분들에 대해 먼저 만나보려고 한다.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인터넷 세상에서 보석가공으로 명장증서까지 받았던 달인을 발견했다. 안경을 끼고 어두운 방 안에서 보석에만 시선을 고정한 달인은 생각보다 거침없이 보석을 깎는 듯 했다. 하지만 막상 인터뷰 내용을 들어보니 보석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여차 하는 순간 몇 천만원 짜리가 몇 백만원으로 그 가치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절대 단숨에 가공을 끝내지 않는다고 한다. 신중히 조금씩 깎아보고 며칠 간 다시 두고 보면서 어떻게 가공해야 할지 숙고한다는 것이다.
깎은 보석은 다시 이어붙일 수 없기에 세공사는 매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셈이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 때 설계라고는 없이 일단 시작하고 봤던 순간들이 떠오르면서 나의 성향과는 참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애초에 계획을 썩 좋아하지도 않지만 제작에 관한 계획에는 특히 인내심이 없는 편이다.
그렇다면 평생 내 돈으로는 못 살 정도로 값비싼 보석을 만드는 명품 브랜드의 세공사는 어떨까? 도둑맞은 투생 목걸이의 주인이기도 했던 까르띠에를 대표적인 예로 살펴보자. 까르띠에의 창업주인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는 가업이었던 화약 제조가 아닌 보석 세공의 길을 택해 남다른 노력과 재능으로 세공 분야의 일류 디자이너가 되었다. 1850년대 말에는 프랑스 왕실의 공식 쥬얼리 납품업체가 될 정도였다. 이를 물려받은 루이 조제프 까르띠에는 자신의 연인 잔 투생을 브랜드에 합류시켰고, 최초의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어 37년 동안 메종 까르띠에를 이끌었다. 영화에 등장한 투생 목걸이도 잔 투생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듯 하다.
까르띠에의 쥬얼리는 세공사 한 명의 손만을 거치는 것이 아니다. 디자이너, 주얼러, 스톤 세공 장인, 폴리싱 전문가까지 수많은 전문가들의 교류 끝에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디자이너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보석을 배치하고, 편안한 착용감까지 고려하여 보석을 세공하고, 보석들이 빛을 반사하며 서로에게 빛을 더할 수 있도록 폴리싱 작업을 거쳐 한 컬렉션이 완성된다. 길게는 1년 반-2년이 걸리는 이 과정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까르띠에의 가장 중요한 노하우라고 한다. 작고 정교한 세필 붓, 핀셋 같은 도구들을 사용하는 것에서부터 이 작업이 얼마나 섬세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정교한 기술이 더해져 탄생하는 목걸이 하나의 값어치를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장인정신 맛보기를 끝냈으니 세공 체험을 하러 떠날 시간이다. 아미타도 깜짝 놀랄 만한 목걸이를 만들고 싶었으나 생각보다 목걸이 공방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세공 체험이 제법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공방인 ‘반지대학’을 찾을 수 있었다. 반지대학에서는 반지 외에도 팔찌, 목걸이를 제작할 수 있고 지점이 여러 개 있어 방문하기도 수월한 편이다.
방문 전에 만들고 싶은 디자인을 찾아보았다. 가을 느낌이 나는 목걸이를 만들고 싶어 29CM를 둘러보던 중 낙엽 잎을 형상화한 이 목걸이를 발견했다. 구멍이 뚫린 디자인이라 고난도의 작업을 예상하며 반지대학 홍대점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두 커플이 이미 반지를 만들고 있었고, 나는 혼자 섬처럼 앉아 선생님과 목걸이 디자인 상담을 시작했다.
제작 과정은 이렇다. 먼저 ‘메인’이 되는 순은 틀 중 원하는 크기를 선택한다. 그 후 글씨를 새기거나 도금을 하는 옵션을 택할 수 있는데, 나는 구멍이 숭숭 뚫린 디자인이기 때문에 모두 선택하지 않았다. 디자인은 2D의 범위 내에서는 모두 가능하다고 하셔서 나의 낙엽 디자인도 무사히 통과되었다.
두 번째 단계부터가 난관이었는데, 대뜸 내가 고른 은 틀과 네임펜을 쥐어 주시더니 “자. 기회는 두 번이에요. 앞판, 그리고 뒷판. 아까 보여준 모양대로 똑같이 그리면 돼요.”라는 지령을 주셨다. 최대한 목걸이를 관찰하며 그린 결과물은 아래와 같다. 나는 솔직히 생각보다 망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생각은 달랐다. “다 그렸어요?”라며 오시더니 “스크림을 그려놓으셨네…어찌 나오려나..”라고 걱정하셨다.
선생님의 우려를 애써 무시한 채로 진짜 세공이 시작되었다. 먼저 안쪽을 세공하기 위해 3개의 구멍과 줄을 연결할 구멍 1개를 각각 뚫어 표시한다. 여기까지는 선생님이 도와주시고, 그후 내가 반지를 손으로 고정한 뒤 실톱으로 스근스근 잘라 들어가면 된다. 이 작업도 보기보다 쉽지 않았다. 실톱을 기울이지 않은 채 수직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내 본능이 실톱을 기울여 지름길을 만들고 싶어했다. 선생님은 분명 톱질할 때 슥슥- 소리가 났는데 나는 삐거걱..삐거걱 소리가 났다. 그리고 실톱을 2번이나 끊어먹었다. 어차피 소모품이라고 허허 웃으며 교체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를 전한다. 같은 방법으로 바깥쪽도 잘라내 주면 모양 내기는 끝이다. 톱질에 몰두하고 나면 은가루가 앞치마에 소복히 쌓인다. 그렇게 완성된 나의 낙엽잎은 우산인지 버섯인지 모를 형태를 하고 있었다.
다음은 표면을 다듬어줄 차례다. ‘핸드피스’라고 하는 기구를 연필처럼 잡고 표면을 정리해주는 작업인데, 스위치를 키면 모터가 빠른 속도로 회전한다. 책상에 손목을 툭 내려놓고 힘을 뺀 채 은 표면과 마찰을 일으켜 주면 된다. 딱히 달라지는 게 없는 것 같아 조금만 하고 쉬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아직 제 타이머에서 시간이 다 안 됐는데 왜..”라며 찾아오셨다. 10분 정도 진짜로 다듬다 보면 은 표면이 훨씬 매끄럽게 정돈된다. 모든 과정에 성실히 임하자.
마지막은 텍스처를 주는 작업이다. 원래는 이 단계를 생략해도 되지만, 내가 가져간 레퍼런스가 독특한 질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따라하고 싶었다. 아쉽게도 그 목걸이처럼 양각을 살리는 것은 불가하고 음각으로만 질감을 넣을 수 있다고 하셨다. 동그란 망치로 원하는 만큼 탕탕 내려치며 울퉁불퉁한 표면을 완성했다.
완성된 목걸이를 직접 착용해 본 모습은 아래와 같다. 순은이라서 어느 옷에나 잘 어울리고 레이어드 하기도 좋아 매일매일 착용하고 있다. 콩깍지일 수도 있지만 내 기준에는 파는 목걸이 못지 않은 것 같다. 2시간의 여정을 끝내고 느낀 점은 세공에 ‘섬세함’보다 훨씬 많은 능력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은이 움직이지 않게 꽉 잡아줄 손가락 힘과 실톱으로 은을 잘라 들어갈 팔의 근력, 미세하게 달라지는 과정을 견딜 인내력, 힘을 뺄 때는 뺄 줄 아는 컨트롤 능력이 필요하고, 마지막으로는 난시가 없어야 더 수월하다. 실제로 엄지손톱에 힘을 많이 줬더니 하루종일 손톱이 욱신거렸다.
이번 체험을 통해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의 일에 대해 생각할 때 으레 ‘어떤 점이 어렵겠지’ 짐작하는 것과 직접 그 일을 해봤을 때의 간극은 생각보다 정말 크다. 체험 전까지만 해도 세공이 근력을 요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극히 일부를 체험한 것이니 세공을 업으로 한다면 더 많은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만큼의 내공을 쌓기 위해 일생을 노력했을 아미타의 작전 밖의 삶을 생각해보게 된다.
목걸이를 스케치하는 데는 단 2번, 자르는 데는 단 1번의 기회가 주어졌고, 옆 테이블에서는 “반지는 늘리기는 쉽지만 줄이는 건 어려우니 조심하셔야 돼요”라는 주의사항이 자주 들려왔다. 세공은 선택을 되돌릴 수 없이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수습해 나가야 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체험 목적이었기 때문에 예상대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도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이었지만, 내 업이었다면 세공의 비가역성이 두려웠을 것이다. 세공업에 종사하는 모든 분들을 존경하며, 여전히 다소 부주의한 나의 삶에도 행운을 빈다.
출처
까르띠에 홈페이지: https://www.cartier.com/ko-kr/clp-LaMasion_KnowHow.html
까르띠에 공식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embed/PHgJQjlW9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