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먼지
‘칵테일’이라는 술에 대해 갖고 있는 특별한 인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하나로 답하기는 어렵다. 칵테일은 아주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이다. 누가 이런 술을 마실까 싶게 독하고 씁쓸한 것이 있는가하면, 음료수와 구분이 어려울만큼 달콤하고 상큼한 것이 있을 정도다.
칵테일 그 자체의 인상보다는 칵테일 안에서 뚜렷한 이미지 차이가 나는 편이다. 와인이나 위스키도 그 안에서 저마다의 매력이 다양하지만, 칵테일은 아예 다른 주종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각각이 뚜렷한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우리는 작품 속에서 캐릭터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칵테일을 활용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그 좋은 예시 중 하나가 바로 오션스8의 데비 오션이다.
데비는 오빠 대니의 묘에서 직접 만든 마티니를 마신다. 유리잔에 올리브까지 멋지게 준비해가서. 사실 마티니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가 늘 주문하는 칵테일이고, 작가 헤밍웨이와 미국의 대통령 닉슨이 사랑했던 술로 알려져있다. 그야말로 가장 클래식하면서 ‘남성적인' 칵테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덕분에 카리스마와 추진력이 있으면서 고집스러운 데비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이처럼 어떤 칵테일을 좋아하느냐는 그 사람의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고, 반대로 누가 좋아하느냐에 따라 어떤 칵테일의 이미지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칵테일의 재료와 맛, 색깔과 같은 외양이 칵테일의 이미지를 이루는 핵심적인 요소가 되는데, 재료는 같지만 비율이 다르다던가, 나머지는 같지만 기주로 들어가는 술 하나가 다르다거나 하는 한 끗의 차이가 칵테일의 이미지를 결정짓는다. 알면 알수록 변화무쌍한 칵테일의 세계를 더욱 탐험하고 싶어지는 이유다.
칵테일은 술과 음료를 섞어 만든 혼합주다. 이때 베이스가 되는 술을 ‘기주'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보드카, 진, 럼, 데킬라를 4대 기주라고 부른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증류주로, 도수가 높아 소량으로도 일정 수준의 도수를 유지할 수 있어서 선호된다.
워낙 기주와 음료의 종류가 다양하고 각 음료마다 배리에이션도 여러가지다 보니 칵테일의 모든 종류를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예컨대 흔히 ‘하이볼'이라 하면 칵테일과는 다른 종류로 생각하기 쉽지만, 위스키에 탄산수(음료)를 섞었다는 점에서 칵테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술에 음료를 섞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칵테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다음 두 가지 기준을 통해 무엇이 클래식한 칵테일인지 대략적인 윤곽을 잡을 수 있다.
1. 국제바텐더협회(IBA)가 인정한 공식 칵테일
2. 바텐더 자격증으로도 알려진 국내 ‘조주기능사' 실기 시험에 포함된 칵테일
이 두 기준을 모두 만족하는 것은 총 24개로, 이들은 오래도록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면서 국내에서도 사랑받는 칵테일이라 볼 수 있다. 이 중 몇 개의 대표적인 칵테일을 꼽아 그 기주를 중심으로 소개하겠다.
앞서도 소개했지만, 마티니는 칵테일의 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드라이하고 독한 칵테일이다. 진 베이스에 드라이 베르무트를 섞어 만든다. 일반적으로 진과 베르무트*를 6:1의 비율로 휘저어 만든 칵테일을 ‘드라이 마티니'라고 한다. 진과 베르무트의 비율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몽고메리 마티니, 리버스 마티니 등 세부적인 명칭이 달라지고, 진 대신 보드카를 넣으면 보드카 마티니가 된다.
*베르무트는 주정강화 와인의 한 종류로, 달콤한 맛의 스위트 베르무트와 비교적 씁쓸한 맛의 드라이 베르무트로 나뉜다. 드라이 베르무트는 화이트 와인으로 만든다.
진 피즈와 진 토닉은 모두 진에 탄산을 섞은 칵테일이다. 만들기가 간단하고 청량한 맛이 특징이다. 진피즈는 진에 레몬주스, 설탕시럽을 넣고 탄산수로 마무리한 것이고, 진토닉은 진에 토닉워터를 섞은 것이다.
마가리타는 데킬라 베이스에 트리플 섹*, 라임주스를 섞은 칵테일이다. 라임즙을 묻힌 잔 둘레에 소금을 묻혀 마신다(리밍)는 특징이 있다. 상큼한 맛에 호불호가 적은 편이다.
*트리플 섹: 40도 전후의 높은 도수의 술이나, 강한 오렌지 향이 나며 달콤한 리큐르다.
데킬라 선라이즈는 달콤한 오렌지 주스 같은 칵테일이다. 데킬라에 오렌지 주스를 가득 붓고 그레나딘 시럽을 마지막에 넣으면 되는데, 붉은색 석류 시럽인 그레나딘 시럽을 가라앉게 할때 오렌지 주스와 이루는 그라데이션이 마치 해가 떠오르는 ‘선라이즈'와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피나콜라다 역시 달달한 칵테일로 유명하다. 특히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칵테일 중 하나다. 럼 베이스에 파인애플 주스, 코코넛 크림을 블렌딩해 만든다. 휴양지에서 파라솔 아래 선베드에 누워 함께 즐기는 술,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칵테일이다.
코스모폴리탄은 보드카 베이스에 코앵트로*, 라임주스, 크랜베리 주스를 섞어 만든다. 분홍빛을 띠고, 적당히 상큼한 과일향을 느낄 수 있는 칵테일로, 섹스앤더시티의 캐리가 마시던 칵테일로 유명세를 탔다. 맨해튼에 사는 캐리가 사랑했기 때문일까? 그 덕에 도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가 있다. 이름답게 뉴욕과 같은 세계적인 대도시와 잘 어울린다.
*코앵트로: 오렌지맛이 나는 리큐르로, 트리플 섹의 일종이다.
롱아일랜드아이스티는 진 보드카 럼 등, 여러 기주가 모두 들어가는 혼합 베이스의 칵테일이다. 여기에 코앵트로나 트리플 섹과 같은 달콤한 리큐르도 추가하고, 마지막으로는 잔 가득 콜라를 채워서 마무리한다. 달콤한 리큐어와 콜라 덕분에 아이스티 같은 달콤함이 느껴지지만, 알고보면 도수가 높은 폭탄주다. 높은 도수에 비해 술맛이 많이 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레시피가 매우 다양해서 바텐더마다 맛의 차이가 큰 칵테일 중 하나다.
다양한 칵테일을 즐기고 싶다면 칵테일바를 방문하는 것이 좋다. 한 잔에 만원 이상 하는 가격이 다소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이것저것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바텐더의 실력과 취향에 따라 독특하고 맛 좋은 칵테일을 먹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마음에 드는 칵테일이 생겼다면,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을 추천한다. 한번 재료를 구비해 두기만 하면, 사먹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두고두고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앞서 소개한 기주 중 데킬라를 골라, 마가리타와 데킬라 선라이즈를 만들어보려 한다. 준비물은 데킬라, 트리플섹, 라임주스, 오렌지주스, 그레나딘 시럽이다.
데킬라는 가장 대중적인 ‘호세 쿠엘보'를, 트리플 섹은 ‘디카이퍼 트리플 섹'으로 구비했다. 마가리타 전용 잔이 없어서 그 대신으로 낮은 브랜디잔을 준비했고, 데킬라 선라이즈용으로 긴 원통용의 잔을 준비했다.
마가리타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잔을 준비해야한다. 집에 있던 레몬즙을 깨끗한 손에 조금 묻힌 후, 컵 주둥이에 레몬즙이 묻도록 발라준다. 그리고 집에 있는 약간 굵은 소금을 얕은 접시에 뿌려서 컵에 소금이 충분히 묻도록 둘러준다.
그 다음 얼음을 담은 칵테일 쉐이커에 데킬라 45ml(약 1.5 oz)에 트리플섹 15ml(약 1.5 oz), 라임주스 15ml (약 1.5 oz)를 넣어 섞어준다. 칵테일 쉐이커가 없으므로, 집에 있는 텀블러를 활용해줬다.
소금을 묻힌 잔에 텀블러로 섞은 술을 부어주면 완성!
데킬라 선라이즈는 더 간단하다. 원통형 잔에 얼음을 채우고, 데킬라 45ml(약 1.5 oz)를 먼저 붓고 잔을 오렌지주스로 가득 채워준다. 그리고 조심스레 그레나딘 시럽을 뿌려서 가라앉히면 데킬라 선라이즈가 완성된다.
마가리타는 소금과 라임의 조화가 인상적이다. 잔에 혀를 대자마자 소금의 짭조름한 맛과 함께 라임주스의 씁쓸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확 돌았다. 마가리타만 마셨을 땐 데킬라의 향이 진하게 올라오는데, 소금과 함께 먹을때는 짭조름한 맛이 데킬라의 향과 잘 어우러져서 맛이 더 부드러워지는 느낌이다. 데킬라를 먹을 때 꼭 소금과 함께 먹으라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데킬라 선라이즈는 아무래도 오렌지 주스 맛이 많이 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끝에 훅 느껴지는 데킬라의 향이 독특하다. 확실히 그 도수에 비해 술 맛이 안나는 편이라 홀짝 홀짝 마셨다간 큰일날 술이니 주의가 필요하다. 다음에 만들땐 선라이즈의 그라데이션이 더 뚜렷해지게 그레나딘 시럽을 잔뜩 넣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쉬운 점 하나는 칵테일(특히 마가리타)을 전용잔에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칵테일 간지의 생명은 아무래도 잔과 가니쉬일텐데, 가니쉬는 커녕 잔도 애매하게 브랜디 잔에 만들었으니 어딘가 5%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조만간 칵테일을 잔을 구매할 생각이다. 데킬라를 자그마치 1L나 구매를 했기 때문에 당분간 칵테일을 자주 해먹어야겠다는 숙제 겸 다짐이 생겼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더 멋지게 칵테일을 만들어 먹어 볼테니 나 자신…! 기대하시라!
칵테일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데킬라 외에도 라임주스, 트리플 섹과 같은 부재료를 모두 구매해야 한다. 이것이 귀찮다면 칵테일 믹스를 이용하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다. 마가리타의 경우 트리플 섹과 라임주스를 대체할 수 있는 마가리타 믹스를 따로 판매하는데, 데킬라와 마가리타 믹스를 1:3 비율 정도로 섞어 마시면 금방 마가리타를 즐길 수 있다. 이외에도 피나콜라다 믹스 등이 있으니 원하는 칵테일이 있다면 믹스로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믹스 자체는 논알콜이기 때문에 믹스만으로 무알콜 칵테일처럼 즐길 수도 있다.
칵테일을 두세잔 정도 만들 수 있는 분량의 ‘칵테일 키트'를 이용하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다. 대표적으로 ‘SHAKIT’이라는 웹사이트가 있는데, 칵테일 키트, 하이볼 키트를 나눠 판매한다. 이외에도 시럽과 가니쉬 같은 칵테일 재료나 전용 잔 및 쉐이커 같은 칵테일 용품도 판매한다. 칵테일에 취미를 붙이고 싶은 분들은 이런 웹사이트를 참고하는 것도 추천한다.
칵테일은 마실 때 한 번 즐기고, 만들 때 한번 더 즐길 수 있는 술이다. 마가리타 잔에 소금을 묻히는 일, 텀블러에 재료를 때려붓고 흔드는 일, 데킬라 선라이즈의 그라데이션이 잘 보이도록 그레나딘 시럽을 천천히 붓는 일.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으면서도 괜찮은 결과를 위해선 은근히 손이 가는 작업이다. 그래도 마실 이를 위해 정성을 담는 건 즐거운 일이다.
이 글을 쓰면서 여기에 소개한 칵테일 이외에도 여러 칵테일의 레시피를 잔뜩 찾아보았다.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진을 기주로 하는 칵테일 '네그로니'에 기주만 버번 위스키로 바꾸면 '불바디에'라는 칵테일이 되고, '쿠바 리브레'에서 콜라 대신 토닉워터를 넣으면 '럼 토닉'이 된다. 재료만 하나 달라져도 칵테일은 종류가 달라진다. 다양한 칵테일을 마셔보고, 각각의 재료를 탐험해보며 나와 잘 맞는 칵테일 하나 남겨보면 어떨까. 어쩌면 누군가 칵테일로 당신의 이미지를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