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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버스앤러버스 Oct 07. 2023

지겨운 것도 여자가 하면 (진짜로) 다르다

에디터 먼지 

  <오션스 8>의 플롯은 사실 그리 새롭진 않다. 어찌 보면 뻔하게 느껴질 정도. 하지만 이게 정말 미치도록 새로운 이유는 이 모든 걸 여자들이 다 해 먹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남자는 여자들의 일을 망치는 존재거나, 끽해봐야 조력자가 될 뿐. 결국 다 일은 여자가 한다. 기획도, 실행도, 반전도, 끝내주는 결말까지도!


  <오션스 8>처럼 여자가 하면 진짜로 다른 작품들이 몇 가지 더 있다.   


    1. 밀수  

먹고살기 위한 방법을 찾던 A는 바닷속에 던진 물건을 건져 올리기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밀수의 세계를 알게 되고 리더 B에게 솔깃한 제안을 한다.

위험한 일임을 알면서도 생계를 위해 과감히 결단을 내린 B는  전국구 밀수왕 '권 상사'를 만나게 되면서 확 커진 밀수판에 본격적으로 빠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오고 사람들은 서로를 속고 속이며 거대한 밀수판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올해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신작 <밀수>의 시놉시스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지웠을 뿐. 솔직히 이 시놉시스만 놓고 보면 분명 신작인데 이미 본 영화를 소개하는 것처럼 익숙하다. 그냥 <도둑들 2>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주인공이 여자라면? 마치 <오션스 8>처럼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작품은 서로 속고 속이고 도망치고 훔치는 케이퍼 무비의 특성을 무난하게 잘 살렸다. 액션 신의 퀄리티도 극의 긴장감을 더해주고, 중간중간 웃음을 주는 장면들 역시 알맞게 자리했다. 훌륭한 오락영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했던 건 김혜수와 염정아 배우가 극을 끌고 가는 무게감이다. 이 두 배우의 연기력 덕분에 자칫 '신파'로 흘러가거나 고루해질 수 있는 사회 비판적인 요소와 마음 아픈 캐릭터의 서사가 짜임새 있게 영화 속에 녹아들었다.

  신선함은 익숙함에 한 끗을 달리 한 것이라고 했던가. <밀수>는 여자가 해서 '더욱' 달랐던 작품이다. 올해 영화 <밀수>의 성공이 곧 제작비 200억대 여성 투톱 영화가 극장 흥행에 성공한 첫 번째 사례라고 하니, 다양한 장르의 여성 주연 영화가 참으로 기다려진다. 




    2. 퀸메이커  

  소개를 시작하기 전에 왓챠피디아의 평가를 몇 개 빌려오고 싶다. 

“그 뻔하고 올드한 걸 김희애 문소리는 왜 이제서야 찍을 수 있는지가 중요함”
“뻔하다고? 난 악역 정치인 재벌 변호사 다 여자인 한드 처음 봄”

 퀸메이커는 김희애 문소리 주연의 8부작 넷플릭스 드라마로, 재벌가의 ‘해결사’ 역할을 하던 전략기획실장이 모종의 사건을 겪은 후 자신이 몸담던 재벌가를 무너뜨리기 위해 한 인권 변호사를 서울 시장으로 만드는 이야기다. 

  이것도 사실 어디서 봐도 너무 많이 본 클리셰다. 

1. 일단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면서도 도덕이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재벌가가 있고, 
2. 그 재벌가의 수족 노릇을 하던 명석한 참모(많은 경우, 변호사)가 어느 날 재벌가에게 충격/배신을 당하고 떨어져 나간다.
3. 그리고는 서민 출신의 투박하지만 정의로운 영웅적 인물과 함께 권선징악을 도모한다. 
4.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추악하고 부패한 모습이 면면이 드러나고, 정의롭던 영웅 역시 때로는 타락하고 만다. 

  지나치게 클리셰적인 시놉시스다. 시놉시스만 보고 배우를 추측하라 했다면 남성 배우 이름을 줄줄이 대지 않았을까. 이 작품은 그 지나친 클리셰적임을 캐스팅으로써 뒤집었다. 냉철한 재벌가의 참모, 큰 꿈을 꾸는 서울 시장 후보, 안하무인 한 재벌 2세, 노련한 정치인. 모두 전형적으로 남성 중년 배우들이 맡았던 역할을 김희애와 문소리, 진경, 서이숙과 같은 여성 배우들이 맡았다. 왜 그동안 안 시켜줬는지 억울하다는 듯, 이들은 캐릭터를 생동감 있게 소화해 낸다. 냉철하기도, 악독하기도, 정의롭기도, 따뜻하기도 한 역할을 모두 여자가 맡는다. 설령 스토리는 진부할지라도, <퀸메이커>라는 작품이 진부하진 않은 이유다.   




    3. 미스 슬로운   

  마지막으로 천재 여자 원톱물, <미스 슬로운>이다. 

승률 100%를 자랑하는 최고의 로비스트 ‘슬로운’. 총기 규제 법안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가운데, 자신의 신념에 따라 모두가 포기한 싸움에 뛰어들게 된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슬로운’은 뛰어난 전략으로 한 번도 굴복한 적 없는 거대 권력에 맞서지만, 동시에 자신과 주변 사람 모두를 위험에 빠트리게 되는데…

  미치게 능력 있고 야망 있는 여자. 그리고 그 여자가 개인적인 경험에 관계없이 그저 신념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울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중에서 '슬로운'은 다른 모든 이들의 뒤통수를 칠만큼 주도면밀하고 똑똑하지만 한편으로는 진절머리 날 정도로 이기는 것에 집착한다. 그의 명석함과 야망에 감탄하면서도 중요한 순간 내비치는 냉혹한 모습을 보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동안 천재 남성 원톱물은 너무도 많이 만들어졌다. 최근의 <오펜하이머>부터 시작해서 <이미테이션 게임>, <소셜 네트워크> 등 수도 없이 많다. 선한 모습부터 이해할 수 없는 모습까지 영화는 이들을 다면적으로 다룬다. 그러나 여러 면모를 가진 천재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을 떠올리라면 과연 얼마나 더 있을까? 이러니 <미스 슬로운>이 특별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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