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더 구체적으로는 일상에서의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다루어 봤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실천에 대해 다룬 글들은 수도 없이 많겠지만, 제가 노력했던 부분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천의 효과를 산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우리의 실천이 어떤 효과를 갖는지에 대한 지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데, 그 이유는 우리의 실천에는 비용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즉, 어떤 실천을 하는 데에는 불편을 감수한다거나 욕구를 포기한다거나 습관을 바꾸는 등 크든 작든 여러 노력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기후위기 대응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실천 항목들을 모두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고기를 전혀 먹지 않거나, 관광 목적의 해외여행을 한 번도 다녀오지 않거나, 보일러를 얼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틀고 겨울을 나거나 하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선순위도 필요하고 어느 정도 우리의 욕구와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명분 사이에 타협이 필요하죠.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비용과 효과를 비교할 수 있도록 효과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저의 관점입니다.
그런데 제가 시도해 보긴 했지만 이런 정보들을 모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정보도 출처나 산출 방식에 따라 달라지고, 또 기술의 발전 등으로 인해 변화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또한 그런 정보를 충분히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매번 우리가 의사결정을 할 때 이를 참고하여 반영하기란 번거롭고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 모두가 나와 똑같이 행동한다는 전제 하에, 예를 들어 1년에 옷을 한 벌 덜 산다면 탄소배출량이 0.005% 줄어든다고 할 때,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지만 한 번 입어 보고 싶은 옷을 살지 말지 결정하는 상황에서 이 정보를 어떻게 반영하면 좋을까요?
그렇지만 우리가 이런 정보들을 암기하고 다니면서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불러내 적용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하는 실천들의 효과에 대해 대략적인 감을 잡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제가 지금까지 다룬 내용들의 주요 시사점들을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가정 부문에서 직접적으로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에너지를 덜 사용하는 일입니다. 전기를 아끼고,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연료를 절감할 수 있는 운전 습관을 갖고, 가스 사용을 줄이고, 냉난방 효율을 위해 단열에 신경쓰는 것입니다. 특히, 승용차 사용을 줄이는 것이 탄소 배출 절감 효과가 가장 큰 실천 항목입니다.
하지만, 가정 부문의 에너지 사용 비중은 전체에 비할 때 비교적 낮은 수준입니다. 다만, 산업이나 공공 부문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 역시 결국은 민간의 소비로 이어지기 때문에 소비 패턴의 변화를 통해 미칠 수 있는 영향의 크기는 증가합니다.
자원이 들어가는 재화 소비를 줄이는 것은 재화의 생산, 유통, 사용, 폐기 단계에서 발생하는 탄소 발생을 줄입니다. 육류 소비를 줄이고, 쇠고기보다는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먹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불필요한 칼로리를 섭취하지 않고, 음식 배달을 줄이고, 불필요한 옷을 구매하지 않고,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분리수거를 충실하게 하는 일들입니다.
평범한 항목들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 중에 탄소배출에 큰 영향을 미칠 만한 항목들은 상당 부분 포함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우리가 건강에 무엇이 좋고 나쁜지 지식이 부족해서 실천을 못하는 건 아니지만, 건강에 대한 지식을 갖는 것은 건강을 위한 실천에 도움이 됩니다. 어떤 것이 기후위기 대응에 도움이 되는 실천인지를 우리가 평소 염두에 둔다면, 자연스럽게 우리 생활에 반영이 될 것입니다.
그 실천방식은 각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단백질 섭취가 부족한 노인 분들과 다이어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식탐을 참지 못하는 사람의 실천은 달라야 하고, 교통이 불편한 지역에 살면서 자동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사람과 편리한 대중교통이 갖추어진 도시에서 사는 사람의 실천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주로 카페 안에서 커피를 마시고 어쩌다 한 번 테이크아웃을 하는 사람은 큰 신경을 쓸 필요가 없겠지만, 매일 아침마다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출근을 하는 사람이라면 텀블러를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의 총량 역시 우리가 기후위기의 위험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기후위기의 위험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관해 간단히 짚어 보고자 합니다.
기후위기가 더 이상 학자들의 경고나 북극곰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일상에서 직접 겪거나 다양한 뉴스들로 체감이 되면서 대중의 인식은 크게 변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기후위기가 산업화로 인해 일어난 것임을 의심하는 기후위기 회의론자가 있는가 하면, 기온이 좀 올라가도 인류가 적응할 수 있으며 탄소 포집 기술 등의 발전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자도 있습니다.
먼저 기후위기 회의론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 근거는 설득력을 갖기 어렵습니다. 산업화 이후 급격히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난 것, 대기 중의 온실가스 농도 역시 급격하게 늘어난 것, 그 시기에 맞추어 전지구적으로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있고 그 상승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는 것은 데이터로 입증된 사실이고, 이 세 가지 추세 간의 상관관계는 일반인이 보기에도 명백하여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이 관계들의 인과성은 과학 이론에 뒷받침이 되고 있고, 전세계 정부 간 협의체인 IPCC 및 대부분의 기상전문 과학자들에 의해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기후위기 회의론자들의 근거는 역사서의 기술 같은 단편적인 사례나, IPCC가 제공하는 수준의 포괄성을 갖추지 못한 부분적 데이터, 기후과학자들이 이해관계 때문에 위기론을 퍼뜨린다는 식의 음모론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낙관론자들의 주장은 기후위기 회의론자들의 주장보다는 고려할 여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기후위기 대처에 대응하느라 지나치게 서두르다보면 비용이 지나치게 커지지 않을까요? 탄소 배출 절감에 최우선순위를 두지 않더라도 기술 발전이나 기후 변화에 대한 인류의 적응 등으로 인해 기후위기가 극복 가능한 수준 내로 머물 수 있다면, 기후위기 극복에 따르는 비용 문제를 고려해 봐야 할 것입니다.
낙관론자들의 반대편에는 기후위기가 인류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위기이며 이의 극복을 위한 정책들이 최우선순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죽음의 위기에 직면한 사람에게 재산이나 다른 가치들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처럼, 인류가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다면 이를 벗어나기 위해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야 할 것입니다. 이들 중 일부는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인류의 역량을 벗어난 일이기 때문에 희망이 없다며 비관적인 전망을 갖기도 합니다.
많은 환경주의자들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데 주로 노력을 기울입니다. 하지만, 지나친 비관이나 과장된 우려가 합리적인 대응을 방해한다고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사례: 경향신문 2021년 8월, 기후과학자 김백민 교수 인터뷰). 기후위기로 인해 인류 멸망이 필연적으로 닥쳐올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면, 결국 이 문제에서 시선을 돌리고 외면하게 될 수도 있겠죠.
만약, 우리가 기후위기 대응에 실패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2021년 업데이트된 IPCC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상태에서 탄소 배출 절감 노력을 특별히 하지 않는 경우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시대에 비해 4.4도가 오른다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탄소배출량은 현재보다 3배 정도 늘어난 상태에서 2080년 무렵에 정점을 찍게 됩니다. (참고 : 에코타임스 관련 기사)
우리가 중간 정도 노력을 기울이는 시나리오의 경우엔 2100년까지 기온이 2.7도 오르게 되고, 탄소배출은 2020년부터 2050년까지 비슷한 수준으로 머물다가 완만하게 하락해 2100년에 탄소중립 근처로 오게 됩니다.
IPCC가 권고한 안은 2020년 이후로는 탄소배출량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게 하고 지속적인 감소로 2080년 무렵 탄소중립을 달성함으로써 기온 변화를 1.5도, 장기적으로는 1.8도 이내로 억제하는 것입니다.
아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때 1.8도 이내의 억제가 가능한 것이고, 현실적으로는 최악 시나리오의 4.4도 상승과 1.8도 상승 중 어느 수준에 도달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이런 맥락 하에서 보면, 기후위기 대응이 IPCC 권고안에 따라 이상적인 수준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인류가 멸망할 지경에 이르는 건 아닙니다. 물론 이 역시 추정이기 때문에 멸망에 이를 정도의 큰 위기의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죠.
그렇다고 해서 그 심각성이 적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연평균 기온은 11.5도이고 태국은 26.3도로 15도 가까운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구 평균 기온이 2~3도, 심지어 5도 이상 오른다고 해서 아주 큰 일은 아니지 않을까요?
저는 이 문제는 더 자세히 들여다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단 전지구적인 평균 기온의 변화는 우리가 체감하는 특정 지역 특정 시기의 기온이 변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파급력을 가진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전지구적 변화는 복잡하게 얽힌 기후시스템을 교란하고 생태계를 흔들어 막대한 파급 효과를 가져오게 되고, 해수면 상승, 해양 산성화, 폭염과 혹한의 강도와 빈도 증가, 극심한 강수량 변화 등 다양한 현상으로 이어집니다. 기온 상승으로 인한 툰드라 지역의 동토가 녹으면서 수십만년 전에 사라진 세균이 부활하는 등 우리가 금방 생각해 내지 못하는 위험들도 발생하게 됩니다. 우리 사는 지역의 평균 기온이 몇 도 오르는 것과는 다른 일이라는 것이죠.
이러한 여러 가능성들과 예측 가능한 전망들을 종합하여 전세계 국가들이 협의하여 구성한 전문기관에서 권고한 안에 따라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 이하로 억제한다는 목표에 대부분의 국가들이 합의하고, 이 합의를 지키기 위해 국가마다 각자의 목표와 계획을 공표하고 약속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 자세한 내용들에 관심을 갖고 관련 지식을 검토해 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우리가 전문가가 아니고 전문가들이 공을 들인 만큼 이 주제에 시간과 노력을 바친 것이 아니라면 전세계에서 가장 공신력이 높은 기관이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전 인류 공통의 과제임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건강이나 약자에 대한 지원 등의 가치를 지향하듯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전인류적 노력에 참여하는 것을 지향하고 삶에 반영되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가치들과 윤리적인 가치들을 조화시키는 고유한 삶의 방식들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은 각자의 몫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노력에 제가 쓴 글들이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전인류 공통의 과제를 성공적으로 이행하는 데에는 앞의 글들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하였듯이 정부의 역할이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개인적 차원의 실천 뿐 아니라 정부의 의지와 실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하며, 전기요금이나 유류세 인상과 같은 정부 정책들에 대해서도 기후위기 대처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전쟁과 물가 상승, 각국 정부들의 권위 실추 등 여러 사태들 속에서 기후위기 대처를 위한 노력이 후퇴하고 성과가 목표에 미달하며 기후 변화가 전망보다 더 심각한 추이를 보인다는 등의 기사들을 요즘 더 자주 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EU를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이전과 다른 의지를 갖고 정책을 추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신재생에너지의 비용이 화석연료 비용보다 내려가는 특이점을 지나가고 있으며, 탄소배출량이 계속 증가해 오기만 했던 추세도 변곡점을 지날 조짐을 보이는 등 긍정적인 징후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낙관하지도, 비관하지도 않으면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삶의 방식 안에 녹여 나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평범한 결론으로 이번 연재를 일단 마무리짓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