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나를 미워하지 말기로 해요

아토피인 나를 사랑해주자

by Celine

내가 어릴 때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씀이 있다. '우리 OO이 피부만 저러지 않았어도 서울대 갔을 텐데...'

물론 피부 탓에 서울대를 못 간 건 아니지만 학창 시절 공부하면서도 늘 야자시간 전에 피부과 다니고 늘 긁고 있는 내가 안쓰러워서 하신 말씀이다. 반면 나는 태어나면서 몸에 달고 살았던 아토피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나는 남들보다 얼굴이 붉은 사람이고 감색 교복을 입으면 늘 어깨 위에 각질이 눈처럼 내려앉는 사람이었다.

피부가 어느 날 갑자기 심해지면 나름의 노하우로 찬물 세안을 하거나 처방받아온 약을 먹곤 했다.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숨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스트레스야 물론 어마어마했지만 모든 것이 당연했고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rebecca-A_fBQe39A4k-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Rebecca



내가 왜 마흔이 다 되어서야 아토피에 대해 이렇게 고민이 되었을까?


그러게 왜 하필 지금이었을까. 나는 지금 일을 잠시 쉬면서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갑자기 나의 잃어버린 시간들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어느 날 지인과 커피를 마시다 내가 피부 때문에 '못했던 것', '할 수 있었는데 포기해야 했던 것들'에 대해 푸념을 했다. 그때 지인이 해 주는 공감에서 내가 정말 놓치고 산 것들이 많구나 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피부에 쓸 에너지의 1/3 만 다른 곳에 쓸 수만 있었어도 훨씬 내 삶이 평온해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이만큼' 해 온 나 스스로를 토닥여주기로 결심했다. 나의 브런치 프롤로그에서도 꺼내보았던 말이다. 아무도 나를 장애가 있다고 생각해주지 않아 이만큼 해 온 나를 칭찬해 주지 않더라도 나는 나를 더 기특하다고 해 주기로 했다.


어릴 때 사소한 일로도 얼굴이 빨개지던 아이는 마흔이 되었다. 아줌마의 패기 덕분인지 얼굴이 더 이상 빨개지지는 않지만 여전히 목은 스카프로도 가려지지 않을 정도의 주름이 파여있다. 팔에는 여러 번 짓무르고 고름이 생겼다 말다를 수백 번 반복했던 흔적으로 검버섯처럼 얼룩덜룩한 흔적들이 남아있다. 얼굴은 이미 남들보다 주름의 골이 깊어 예전에는 동안소리를 듣던 나였는데 나만 노화가 빨라진 기분이다.


내가 마흔의 아토피 아줌마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커진 용기이다. 상처를 감추려고 옷을 한 겹 두 겹 더 껴 입기보다는 오히려 당당하게 내 상처를 드러낸다. 내 상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그들의 몫이니 나는 무시하기로 한다.


아토피로 여전히 고통받는 중인 분들을 위한
마흔의 아줌마가 해 주고 싶은 말

나도 아직은 아토피로 힘들 때가 있다. 그렇지만 아토피로 세상이 끝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몇 가지만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매우 주관적인 경험이니 참고용이다. 그리고 난 어릴 때부터 스테로이드 연고를 달고 살다가 서른 살 초반부터는 임신과 동시에 약이나 연고는 거의 바르지 않고 있다.)


아토피는 한번 발현되어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르기를 반복하다 보면 그 부위는 언젠가 아토피 뿌리의 끝이 보인다. 다시 말해 아토피가 있었던 흔적은 남겠지만 더 이상 아토피가 재발되지는 않더라. 나는 회사에서 일을 하며 컴퓨터 작업할 때 피부가 약해져서인지 안쪽 손목의 피부가 늘 곪아있었다. 고름이 터지고 약을 바르기를 반복한 지금 10년 전부터는 정상 피부처럼 피부결이 단단해졌다.

피부가 너무 열이 날 때는 알로에, 보습력 강한 크림 모두 잘 듣지 않더라. 오히려 피부가 숨을 쉬지 못하게 덮는 느낌이랄까... 샤워 후 잠시 자연 그대로 건조하더라도 그냥 방치해보기도 했다. 나아지는 건 아니지만 오히려 피부가 편해진다.

나에게 맞는 온천을 찾아보자. 나는 서른 중반쯤 이천에 있는 온천을 아이와 간 적이 있는데 뜨겁지 않은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나면 그날은 피부가 정말 부들부들하다. 뜨거운 것은 아토피의 적이니 온도가 맞는 온천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토피는 하루 24시간 고통이 반복된다. 너무 힘들다면 병원에 꼭 가자. 의사 선생님이 미우나 고우나 병원의 도움이 필요하다. 민간요법은 피부를 더 지치게만 한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아토피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 스스로 내가 어떤 아토피인지 알게 된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내 상태는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면 된다.



ellie-ellien-5U_-iTN0VEc-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Ellie Ellien

아토피가 있어 분명 남들보다 못해본 것들이 있다. 학창 시절에는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이 큰일이었고 연애에도 자신감이 늘 없었다. 회사에서는 수십 명이 들어가는 회의장에서 나 혼자 얼굴이 빨간 사과처럼 되어 앉아있으니 높으신 분이 내 피부를 거론하며 나를 민망하게 만든 적도 있다.

좌절, 고통, 지겨움 그리고 후회만 반복되는 아토피. 완치는 아직 나에게도 찾아오지 않은 선물이지만 아토피가 있어도 더 잘할 수 있는 건 나만이 알고 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잿빛 상황 속에서도 나는 나름 잘해 온 것들이 분명 있다. 그러한 긍정적인 마인드로 나를 위로하며 살아간다.


아토피는 부모 잘못도 나의 잘못도 아니다. 그러니 나를 더 이상 자책하거나 미워하지 말고 아토피도 케어하며 내 꿈의 끈도 꼭 잡고 있길 바란다.



- 그동안 저의 '나는 아토피 아줌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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