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인의 꿈과 일
나는 대학교 때 불어불문학과를 전공했다. 프랑스어는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였고 큰 목적 없이 선택했는데 나중엔 그 안에서 꿈이 생겨버리더라. 내가 꿈이란 걸 가져본 것 중 가장 큰 것이 프랑스어 통번역을 해보는 것이었다.
내가 그 꿈을 이루었을까?
프랑스 어학연수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계획한 대로 프랑스 어학연수를 갔다. 휴학 없이 공부에 재미가 붙어 집중하다 보니 장학금도 종종 받고 졸업하던 해에는 학부 전체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그만큼 공부가 제대로 재미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러나 어학연수에 가서도 나의 아토피는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머물던 곳은 자연환경이 유독 좋아 프랑스인들도 은퇴하고 온다는 스위스 옆 도시였다. 나는 처음으로 떠난 해외생활에서 막연한 아토피의 완치를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프랑스에 머무는 1년여의 시간 동안 얼굴은 와인처럼 늘 울긋불긋하고 20대 중반의 꽃다운 청춘은 팔다리 접히는 곳마다 진물과 딱지투성이였다. 환경이 해외로 바뀌어 달라진 점이 있었다면 나의 피부가 왜 이러한지에 대해 외국어로 외국인들에게 설명해야 했다는 점이다.
어학연수를 다녀온 뒤 나
어학연수 기간은 나에게 프랑스어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취업을 하고 싶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외교부의 아프리카과에서 인턴생활을 했다. 첫 프랑스어 면접을 합격한 나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턴기간 동안 해외귀빈들이 오시는 자리에서도 난 상황에 맞지 않은 아토피가 가득한 얼굴을 내밀어야 했고 저절로 자존감이 떨어져 무기력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이후에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프리랜서로 통번역일을 했다. 한 번은 프랑스에서 한국 농촌 문화를 체험하러 오신 부부를 통역하는 일을 맡았다. 그분들을 만나러 가는 아침마다 얼굴 전체에 퍼진 아토피로 각질을 가라앉히고 조금이라도 얼굴에서 붉은빛을 지우려고 부단히 애썼던 것 같다. 통역 마지막날 선물을 주시면서 나에게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으시며 "Merci (감사합니다)."라고만 했던 분들에게 고마웠다.
아토피가 있다 보면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이 지옥 같을 때가 참 많다. 통역일을 하는 순간은 행복하고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비겁하게도 난 아토피 뒤에 숨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어로 취업에 성공했다.
소제목 그대로 아토피 뒤에 숨어 있으면서도 항상 구직은 불어와 관련된 일을 찾고 있었다. 20대에는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20대의 마지막해 우연한 기회에 그날따라 면접이 있었음에도 다시 돌아온 아토피 때문에 렌즈도 못 끼고 뺑뺑이 안경에 쌩얼로 면접자리에 갔다. 당연히 이 처참한 모습으로 면접장에 가면서 안될 것이다라는 생각이 강해서 오히려 마음은 가벼웠다.
나는 합격했다.
나중에 왜 나를 뽑았는지 회사 관계자가 말씀하시길,
"ㅇㅇㅇ씨는 어디에서든 잘할 것 같더라고요." 이 한마디가 나를 다시 한번 꽃으로 만들어주었다.
면접 후 2개월 만에 혼자 자취하던 전세원룸을 정리하고 약 18시간이 걸리는 아프리카로 날아갔다.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지만 아프리카에 있는 동안 약간의 꿈을 이룬 것과 마찬가지였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