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습 그대로에 익숙해지는 연습
내가 갑자기 브런치에 나의 치부일 수 있는 아토피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한 건 이유가 있다. 아토피로 인해 내가 잃어버린 시간들이 너무 많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느꼈겠지만 그동안 지금에 급급해서 지나온 세월을 돌아볼 겨를조차 없었던 것 같다. 내 주변에는 아토피가 있는 분이 없지만 인터넷 세상에는 안타깝게도 참 많은 어여쁜 아이들 그리고 청춘들이 아토피로 여전히 고통받고 있더라. 그들에게 나도 그랬고 지금은 그래도 조금은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싶다.
잃어버린 웃음꽃 피는 학창 시절
국민학교(나이가 나온다 ^^) 2학년 때 친한 친구로부터 받은 편지 내용 중 한 줄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ㅇㅇ 야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귤에 하얀 부분(귤락)을 먹으면 피부가 좋아진대."라는 말이었다. 친구는 나를 생각해서 해 준 말이겠지만 어린 나이에도 부끄러운 부분을 들킨 것 같아 속이 상했었다.
나는 키가 작아 학창 시절 대부분 맨 앞자리에 앉았다. 수업시간마다 40분~50분 되는 시간 동안 가려움을 참지 못해 항상 눈꺼풀, 손가락 마디마디, 입 주변의 각질을 떼어내고 치마를 입어 맨다리에 땀이 차면 종아리 연결 마디를 안 긁고는 못 참곤 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계절은 당연히 여름이고 나를 꽁꽁 감출 수 있는 겨울이 지금이 더 낫다.
학교 다닐 때 난 사진 찍는 걸 너무 싫어했다. 아무리 표정이 웃고 있어도 아토피로 얼룩진 피부가 시커멓게 타 들어간 내 마음을 다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졸업사진을 좀처럼 꺼내보지 않고 대학교 때는 졸업사진 촬영을 하지도 않았다. (여담이지만 결혼식 사진 촬영은 했다.^^)
선식 vs 라면, 체질은 대체 어떻게 바뀐다는 말일까
고 3 때 체질을 개선해 준다는 황성주 선식이 유행이었다. 엄마는 싸지도 않은 제품을 몇 박스나 사 오셨고 나더러 학교에서 야자시간 시작 전 하나씩 밥 대신 먹으라고 하셨다. 그런데 식욕이 평생 중 가장 왕성할 수 있는 고3이 과연 선식 한봉을 먹고 공부가 가능했을까? 그렇지만 난 엄마의 노력과 돈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선식도 먹고 라면도 먹었다. 결론은 살이 포동포동하게 오른 채로 졸업을 하게 되었다.
아토피로 살다 보면 체질을 개선시켜야 한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듣는다. 어떤 분은 (위험한 발상일 수 있는데) 예전에 피를 정기적으로 뺀다고 하셨던 말도 들은 적이 있다. 대학교 1학년때 나도 예뻐지고 싶고 체질을 바꿔보고 싶어서 스스로 시작했던 것이 기름진 고기를 끊어보는 것이었다. 그 당시 대학가에 저렴하고 맛있는 냉동대패삼겹살이 유행 중이었다. 난 친구가 대패삼겹살 집에 가자는 요청을 거절해 속상했다고 할 정도로 한동안 독하게 고기를 보지도 않았다. 집에 가 고기가 먹고 싶으면 엄마는 오징어 탕수육처럼 다른 해산물로 대체해서 요리를 해 주셨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몸에 이상한 반응이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몇 달 동안 이유 없이 생리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산부인과에 가 보았다. 결론은 영양불균형으로 생리가 멈췄던 것. 체질을 바꾸려다 몸이 망가질 뻔 아찔한 경험이 있다.
보통의 병들은 어떤 이유가 있을 때 해당 증상이 나오고 그렇기 때문에 치료방법이 있다. 그런데 아토피는 내가 평소와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등 쳇바퀴 같이 살아도 어떤 날은 아토피가 쏙 들어가고 또 어떤 날은 예의 없이 정체를 다시 드러내곤 한다.
내가 가끔 만나는 사람들에게 듣는 말이 "ㅇㅇ아 너 피부 정말 좋아졌다. 어떻게 된 거야?"이다.
그런데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토피 이 녀석 혼자 외출을 했다 말았다를 반복 하니 화장할 노릇이다. 중요한 날은 알아서 좀 들어가면 좋은데 머피의 법칙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고약한 녀석이다.
그래서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아토피가 초대받지 않은 내 시간과 공간에 등장해도 당황해하지 않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연습은 당장 어려울 수 있다. 나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타인에게도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먼저 선수치고 나면 속이 좀 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