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존책방 Feb 21. 2022

'예민함'을 책임지기로 했다

예민함의 뿌리를 찾다

서점에 갔을 때 설레는 순간이 있다. 나를 강하게 이끄는 책을 만났을 때다. 내 눈길을 이끈 책은 <예민함이라는 무기>라는 책이었다. 심리학 책에 처음으로 입문하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이 책을 구매하기 위해 뒤직거리며 살피던 중 한 문장을 보고 당장 사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예민한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심리학에 더 관심이 많다.
그들은 자기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고 싶어 한다.
-롤프 젤린, <예민함이라는 무기>


내 마음에 관심이 없는 줄 알고 살았었다. 이 문장을 읽어보니 사실 내 마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너무 알고 싶었나보다. '예민하다', '까칠하다'는 말을 많이 들으며 살았지만 원인에 대해 깊이 알고 싶은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성격이 원래 그런 줄 알았다. 이 책을 시작으로 '왜 내가 그동안 예민했는지?' 고민하며 꾸준히 심리학 책을 이것저것 읽게 되었다.

감정 문제 때문에 일상이 불편해지다.


내게 심리학 책은 수액주사처럼 빠르게 흡수되었다.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던 내 마음을 표현하는 문장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동안 감정 문제 때문에 아내와 자주 다투고 아이에게 화를 내는 등. 일상이 점점 불편해지는 것을 체감하고 있었다. 가족에게 공격하는 말로 상처를 주고 후회를 반복하는 이 패턴을 끊어 버리고 싶었다. 점점 엄마의 모습을 닮아가는 내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직장생활에서 권위자에 대해 반감을 갖고 어른을 불편해하는 태도도 필요 이상이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책을 읽으며 감정 처리 방법과 상처의 원인을 찾았다. 놀랍게도 예민함에도 종류가 있었다.

신경학적 예민함, 심리사회적 예민함
'오카다 다카시', <예민함 내려놓기>


'신경학적 예민함'은 선천적으로 예민하고 섬세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며, '심리사회적 예민함'은 애착 불안과 마음의 상처와 관계가 깊었다. 동의되었다. 선천적인 예민함은 행복에 지장이 없었다. 감각이 과민해서 감수성과 창의력이 발달한다는 말에 공감이 되었다. 문제는 행복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후천적인 예민함이다. 나는 이 후천적으로 생긴 예민함의 정체를 찾아야 했다. 그 뿌리 깊은 곳에 도착해보니 나를 기다리고 있 것은 '내면 아이'였다. 그동안 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을 '예민함' 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했었는데 이제야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지금도 일상에서 어린아이처럼 행동할 때가 많다. 아내를 수용하기보다 내 욕구를 먼저 주장하는 모습, 자녀의 감정에 공감해주기보다 불편한 내 감정을 참지 못하는 모습은 딱 어린 아이다. 강한 의지로 참아낸다고 해결 문제가 아니다. 나는 스스로 행복한 감정을 만들어낼 수 없는 사람이다. 결혼 전 불행과 공허함을 해결하기 위해 일 중독과 성취를 선택했었다. 결혼 후 문제는 '빵' 터지고 말았다. 내 방어의 벽은 상당히 두꺼웠다. 아내의 말을 대부분 공격으로 받아들여 상처로 되받아쳤다. 더 이상 살던 대로 살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혼하든지, 변화하든지. 결혼생활을 통해 내 밑바닥을 확인하고 나서야 치유를 결심하게 된 것이다.


상담치료도 받았고 내면 아이 관련 책도 많이 읽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이해한 만큼 내 감정이 빨리 회복되는 것은 아니었다. 상담 자체가 나를 변화시키는 것도 아니었다.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져 좌절하기도 수 번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신과를 찾아가서 도움을 받아야 할지, 다른 상담사에게 심리 치료를 받아야 할지, 세미나를 다녀야 할지 고민하면서 이런 질문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본질적인 치유가 일어날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를 잘 안다는 것이 전제가 된다. 자신의 억압된 감정이 무엇인지, 어디가 아픈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억압된 감정이 클수록 '내가 생각하는 나'와 '실제 나'의 간격은 커진다. 실제 나를 인정해버리기엔 너무 형편없고 슬플까봐 피해왔는데, 인정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부모와 겪은 상처는 부정해도 이미 일어난 일이다. 상대방을 통해 느끼는 감정도 내 안에서 일어난 감정이다. 그동안 내가 감정 문제로 힘들었던 이유는 해결하지 않고 미루는 태도때문이었다. 내 감정에 무책임했었다.


셀프 치유자(Self-Healer)가 되어야 한다.

'내면 아이' 치유는 부모와 내게 먼저 용서를 구하거나, 배우자가 나를 완전히 만족시키거나, 자녀 행동이 변해야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내 자신이 치유의 주체자가 되어야 한다. 내게 일어난 일을 인정하고 억압된 고통스러운 감정을 다시 겪어내야 풀어진다. 약물 치료도, 상담사도, 배우자도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책임지는 일은 나만 할 수 있. 자기 자신만큼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결국 내가 가진 힘으로 치유해야 한다. 나는 예민함의 뿌리였던 '내면 아이'를 돌보기로 결정하고, 셀프 치유자기로 결심하면서 조금씩 일상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이전 13화 부모를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