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도 글쓰기도 놀이처럼
기뻤습니까? 기쁘게 했습니까?
이집트 사람이 죽어서 하늘에 오르면 천당에 갈지 지옥에 갈지를 결정하는데, 천신이 딱 두 마디만 묻는다고 합니다. “살아 있는 동아 기뻤냐? 남도 기쁘게 했냐?” 둘 다 그렇다면 천당으로 보내고, 둘 중에 하나라도 아니라면 지옥으로 보낸다고 합니다.
문득 천당과 지옥은 죽은 뒤에 가는 곳이지만 살아서도 가는 곳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나도 기쁘고 남도 기쁘게 하는 사람은 천당에서 사는 것이고, 스스로 기쁘지 않고 남을 기쁘게 하지 못한 사람은 지옥에 살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일상도 글쓰기도 놀이처럼
국회의원 재직 8년을 빼면 매년 4권씩 썼습니다. 죽을 때까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재미있게 사고 싶어서, 나를 기쁘게 하고 싶어서, 세상에서 받은 사랑을 갚기 위해 씁니다. 하지만 글을 쓸 때 마냥 기쁘거나 재미있는 건 결코 아닙니다. 글이 써지지 않으면 엄처난 스트레스를 받거나 좌절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글쓰기를 일이나 돈벌이가 아니고 잘 노는 행위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견딜 만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직장에서 일할 때면 일이라 생각하지 말고 오락이나 놀이라고 생각하면 즐거운 선두주자가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건강하고 더디 늙으려면 잘 노는 사람으로 변해야 합니다.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2600여 년 전 인도 천민이 분뇨통을 메고 좁은 길로 가다 출가 전인 부처님(당시 신분은 왕자)을 마주했습니다. 길을 비켜드리려다 넘어져 분뇨가 튀어 부처님 옷이 더러워졌으니 아찔한 상황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다친 곳 없나요? 나와 같이 강에 가서 목욕합시다’ 천민이 몹시 놀라 ‘어찌 감히 같이 목욕할 수 있겠습니까’하자 부처님께서 ‘사람은 본디 귀하고 천한 게 없습니다.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존귀합니다. 다만 그 행동에 천하고 귀함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못났건 잘났건 건강하건 건강하지 못하건 태어난 그 자체로 존귀합니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 자기 존재를 존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인생 화살을 잘 맞히려면
유대인은 어려서부터 ‘질문하는 법’을 배운다고 합니다. 부처님도 질문에 대답함으로써 깨달음을 전했고 공자께서도 제자의 질문에 응답으로 지혜를 남겼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꼭 던져봐야 하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현명한 질문은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 ‘나는 어디로 가는가’입니다.
우리는 모두‘인생 과녁’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과녁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쓰여 있지요. 사람은 누구나 ‘인생 화살’ 백개쯤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죽을 때까지 원하는 것을 쏘아 맞히는 게 인생사인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잘 맞힌 것은 ‘소설가’라는 직업을 택한 일입니다. 아내와 함께 잘 쏘아 맞힌 것은 아들과 딸을 낳아 기른 일입니다.
활을 잘 쏘려면 실력을 길러야 할 뿐 아니라 스승의 가르침, 친구의 신의, 부모의 사랑과 선배의 길 닦음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기회를 잘 포착해야 하고 나아가고 물러설 때를 지혜롭게 알아내야 합니다.
사람다운 사람의 징표
‘중독’은 ‘술이나 마약 따위를 가까이한 결과,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상태’또는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버려 정산적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몰입’은 집중하여 ‘깊게 파고들거나 몰두’하는 걸 말합니다.
자신의 가치에 중독되는 것은 자만심이고 자신의 가치에 몰입하는 것은 자존심입니다. 자존심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사람답게 사는 지혜를 얻는 마음’입니다. ‘나는 잘났다. 어쩔래?’따위는 자만심입니다.
자존감을 지키려면 먼저 스스로를 지극히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고 나는 우주 역사상 오직 하나뿐이고 생은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내가 세상의 주인이라는 품격 높은 자존심을 가져야 합니다.
결국 자존심은 사람다운 사람의 징표입니다. 내가 존귀하니남도 존귀하게 여기고, 나를 사랑하니 남도 사랑하며, 사랑과 용서 덕분에 내가 생존할 수 있었으니 나도 남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게 진정한 자존심입니다. ‘따뜻한 자존심’을 가진 사람이야 말로 세상의 참다운 주인입니다.
인간 명품이 되는 여섯 가지 방법
첫째 자유인이 되어야 합니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주인답게 살며 시련과 고난에 맞서는 사람을 말하며 정신적 노예로 살면 자유인이 아닙니다. 정신적 노예는 자기 목에 밧줄을 걸고 돈, 권력, 자식, 아파트, 재산, 학력, 집안, 진물 따위에 끌려다니는 존재입니다. 자유인은 세상을 넓고 깊게 보며 남보다 한 발 앞서 걷습니다.
둘째, 죽는 날까지 호기심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셋째, 사랑과 용서를 조율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넷째, 세상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섯째,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섯째, 육신과 영혼이 건강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맺음말: 절벽을 피할 수 없다면 건너는 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소설을 쓰고, 실천문학운동을 시작하고, 경실련에서 시민운동, 매스컴 진행자, 정치, 강연과 사회 봉사 활동 등 앞으로만 정신없이 뛰어가던 제 앞에 느닷없이 절벽이 막아섰습니다. 그것이 코로나 19 팬데믹이든, 응급실과 음압실이든, 사회활동의 막힘이든 간에 분명 절벽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늘이 제게 ‘쉼’과 ‘마음 가다듬기’와 ‘뒤돌아 보는 법’을 가르치려고 저를 멈추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곧 ‘생각 비틀기’입니다 생각을 살짝 비틀었더니 마음이 정돈되었습니다. 절벽을 피할 수 없다면 건너는 법을 곰곰 생각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