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었다. 정확한 제품명은 와퍼. 엄청 큰 버거라는 뜻이란다. 끼니를 적게 자주 먹는 타입인 내게 감자튀김까지 곁들여 먹기엔 좀 크긴 하다. 어중간한 오전 시간에 널찍한 버거킹에 홀로 앉아 엄청 큰 햄버거를 먹고 있자니 햄버거에 대해 뭔가를 적어야만 할 것 같다. 조금 심심하기도 하고. 하지만 딱히 햄버거에 대한 조예가 깊거나 애정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햄버거의 시작은 당연히 빵이다. 빵이 없으면 햄버거가 아니라 햄버거 스테이크이라고 흔히 부르는 별개의 음식이라고 들은 적이 있는데 사실 햄버거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어 이 내용이 정확한지 확신은 없다. 하지만 내게 햄버거는 일단 빵으로 위아래를 마감해두고 그 사이에 이것저것 맛있는 것들이 쌓여 있어야 한다.
꽤 오래전 일인데 서울에 미국식 대형 패밀리 레스토랑 TGIF가 처음 생겼을 때, 거대한 매장과 이국적인 인테리어, 점원들의 근무 태도 그리고 콜라 리필까지. 뭔가 기존의 식당들과 다른 점들이 많아 비싼 음식 가격에도 불구하고 나름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었다. 친구들과 처음으로 그 식당에 갔을 때 생소한 음식이 가득한 메뉴판을 능숙한 척하며 바라보다가 나름대로 한 가지씩 메뉴를 골라 주문했고 일행 중 한 명이 햄버거를 주문했다. 잠시 후 열심히들 골라 주문한 메뉴들이 속속 테이블에 올려졌는데 서빙하는 점원이 ‘주문하신 햄버거 나왔습니다.’라고 발랄하게 말하며 커다란 접시를 내려놓는 순간 우리 일행 모두 낯선 햄버거가 담긴 접시를 어리둥절하며 바라보았다. 접시에 올려져 있는 것은 빵 사이에 고기와 야채가 겹겹이 쌓인 우리가 알던 그 햄버거가 아니라 일부는 차곡차곡 쌓여있고 나머지 일부는 가지런히 제각각 놓여있는 햄버거 재료들이었다. 햄버거를 주문한 친구에게 포크와 나이프까지 제공되어 이 햄버거는 알아서 조립을 해 먹어야 하는지 그냥 스테이크 먹듯이 재료 각각 썰어 먹어야 하는지 극히 혼란스러웠지만 혹여 촌스럽게 보일까 물어보지도 못하고 당황스러워하는 그 친구를 바라보며 햄버거를 고르지 않아 다행이라고 낄낄대던 기억이 있다. 역시 햄버거는 빵 사이에 재료들이 쌓여 있어야 평화롭다.
빵 사이에 들어가는 주인공은 패티이다. 패티의 종류에 따라 치킨버거 새우버거와 같이 햄버거의 아이덴티티가 정해지는 것을 보면 패티가 주인공이 맞는 것 같다. 일반 패스트푸드 햄버거집보다 조금 비싼 가격을 내야 하는 수제버거집에서 파는 햄버거의 패티는 확실히 두툼하고 맛있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은 패스트푸드점의 햄버거 패티도 꽤나 두툼해지고 고기 씹히는 텍스쳐도 좋아진 것 같다. 나는 그래서 수제버거도 패스트푸드 버거도 대부분 맛있게 잘 먹는다.
먹어본 패티 중에 잊혀지지 않는 것은 군대리아라 불리는 군 시절 햄버거 패티다. 일주일에 두 번 아침 식사에 햄버거가 나왔었는데 그때 제공되던 패티는 정말 최악이었다. 무엇인가를 곱게 갈아 패티 모양으로 다시 뭉쳐서 구운 모양새로, 먹어보면 고기 맛이나 향이 나지도 않고 고기가 씹히는 질감이 느껴지지도 않으면서 무른 뼈를 갈아낸 것 같은 식감이 느껴지곤 했다. 함께 복무하던 우리들 사이에서 이 패티가 닭 머리를 통째 갈아 만든 패티라는 소문이 돌았었다. 닭 머리라고 해서 못 먹을 것은 없겠지만 그다지 먹고 싶은 부위는 아니니 그때 돌던 소문이 사실이 아니었기를 바란다.
요즈음 먹었던 대부분의 햄버거 패티에서는 소위 불맛이라는 것이 난다. 숯불에 구운 것 같은 맛과 향이 나는 것인데, 대부분의 햄버거집의 오픈되어 있는 주방을 통해 보면 실제로 숯불에 패티를 굽는 장면을 본 적은 없는 것 같고 그릴에서 직화로 구워서 나는 맛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직화로 패티를 굽는 햄버거집도 많이 못 본 것 같고 대부분은 호떡집에서 사용하는 것 같은 널찍한 철판에 구워내는 것 같은데도 불맛이 나니 신기하다. 하여간 나는 불맛 나는 패티의 강렬한 맛이 좋다.
햄버거에 양상추가 빠지면 섭섭하다. 얼마 전 양상추 가격이 폭등하면서 햄버거 체인에서 햄버거에 양상추를 넣어주네 마네 양상추 들어가는 양이 줄었네 이런 이슈가 여러 매체의 뉴스에도 나오고 회자가 됐었는데 다행히 그즈음에 햄버거를 먹진 않았었다. 일부러 피한 것은 아니고 아마도 햄버거를 먹을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만약 먹었다면 양상추가 없거나 적게 들어간 햄버거에 나도 마음 상했을지 모른다. 어디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저가형 햄버거집에서 양상추가 아닌 양배추를 넣어서 햄버거를 만들어주는 곳도 있었다. 예전에는 양배추가 들어간 햄버거가 꽤 많았던 것 같기도 하다. 양배추가 들어간 햄버거는 토마토케첩이 잔뜩 뿌려진 양배추가 들어간 것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이것이 경험에 의해 떠오르는 것인지 그냥 양배추와 토마토케첩이 당연한 조합 인양 묶여서 떠오른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여간 햄버거에는 양배추보다는 양상추가 좋겠다. 두 가지 다 들어가는 것도 지금 잠시 생각해봤는데 역시 양상추만 넣는 것을 좋아하기로 했다. 양배추도 좋아하지만 햄버거 말고 다른 데서 먹기로 하자. 치킨집에서 먹는 양배추가 소박하면서 맛있다.
양상추는 햄버거에 들어간 양상추도 훌륭하지만 그냥 샐러드로 먹는 것도 좋아한다. 집에서도 양상추에 올리브 오일과 소금과 후추를 뿌려서 먹는 것을 좋아하고 샐러드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뷔페식당에 가게 되면 양상추를 접시에 듬뿍 담아 오리엔탈 소스를 뿌려 먹는 것을 좋아한다. 조식 뷔페에서는 거의 양상추와 베이컨만으로 배를 채우기도 한다.
토마토와 햄버거의 조합은 호불호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는 햄버거에 들어간 토마토가 무지무지 좋다. 기본적으로 토마토를 좋아해서 토마토소스 기반의 파스타류도 좋아하고 토마토가 올라간 피자도 좋아하고 방울토마토를 오븐에 구워서 올리브 오일을 뿌려 먹는 것도 좋아하니 당연히 햄버거도 토마토가 들어간 편이 좋다. 토마토는 좋아하는데 토마토케첩은 좋아하지 않아서 햄버거집에서 감자튀김을 먹을 때는 케첩을 찍지 않고 감자튀김만 먹는다.
사실 토마토는 적당한 크기로 썰어 설탕을 뿌려 먹는 것이 가장 맛있었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설탕을 많이 먹는 것이 죄악처럼 되어버렸고 이미 다른 음식에서 충분히 설탕을 먹고 있으니 생과일이나 채소를 먹을 때 까지도 설탕을 뿌려먹는 것은 꺼려지게 되었다. 그래도 가끔 설탕을 뿌린 토마토나 설탕을 찍은 딸기가 먹고 싶을 때가 있다.
피클 역시 토마토 못지않게 호불호가 있을 텐데, 나의 경우 피클은 불호의 입장이다. 그렇다고 햄버거를 먹을 때 피클을 빼고 먹지는 않는다. 피클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햄버거의 맛을 해치는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정도일까. 할라피뇨나 독일식 양배추 절임인 자우어 클라우트는 많이 좋아해서 마트에서 병에 들은 제품들을 사 와서 반찬으로 먹곤 하는데 오이피클은 피자를 시켜 먹을 때 제공되는 작은 오이피클조차 뚜껑도 열지 않고 그대로 버린다. 피클을 먹게 되는 경우는 지금처럼 햄버거에 들어있는 경우와, 주로 푸드코트에서 돈가스를 먹을 때 널찍하게 튀겨진 돈가스에 아기 주먹만큼의 양배추채와 새끼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단무지 두 조각과 피클 두 조각이 곁들여져 있어 양배추채와 단무지 두 조각을 모두 먹어 치웠지만 남겨진 돈가스에 속이 느끼할 때 정도라고 볼 수 있겠다.
지금 먹는 이 햄버거에는 빠져 있지만 원래는 양파가 들어간다. 양파는 주문하면서 빼 달라고 했다. 이 집뿐만 아니라 다른 집도 대부분의 햄버거에 양파가 들어가는데 나는 햄버거를 주문할 때 양파가 들어가면 빼 달라고 주문한다. 양파는 내 비위와 부조화가 일어나 먹다 보면 속에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알레르기처럼 피부에 뭔가 나거나 호흡이 곤란해지거나 하는 반응은 아니고 약한 구역질에서 시작해서 많이 먹으면 결국 먹은 음식들을 토해내는 반응을 보인다. 어쩌다 부득이하게 꽤 많이 먹게 되면 구토에서 끝나지 않고 다음날까지 두통과 미식거림에 시달리기도 한다. 음식 과민증이라고 하는 증상인데, 외가 쪽 가족들 중 일부가 그렇고 어머니를 통해 나에게 전해져서 누나는 양파를 먹어도 아무렇지도 않지만 나와 어머니는 양파를 먹지 못한다. 음식에 양념처럼 소량만 들어간 경우나 적은 양이 갈거나 다져져서 섞인 경우는 거슬리지만 먹을 수 있는데 어느 정도 양을 넘어가면 반응이 오곤 한다. 이 경계선을 나는 치사량이라 부르고 본능적으로 언제 반응이 올지 알아챌 수 있다. 치사량까지의 양이 많지 않아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덕분에 먹어보고 싶지만 못 먹게 되는 음식이 상당히 많고 특히 해외에서 음식을 먹게 될 때는 그 지역에서 꼭 먹어야 한다는 음식을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양파는 싫어서 안 먹는 게 아니라 먹어보고 싶은데 못 먹는다.
소스는 케첩을 제외하고는 뭐가 들은 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 넘어가고 이 정도로 햄버거 잘 모르는 사람의 햄버거에 대한 단상을 마무리한다. 덕분에 간단히 끝내려던 이른 점심이 생각보다 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