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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Mar 22. 2023

나는 크고 있는 중이라고요

아들의 사춘기, 성장을 위한 시작

        

큰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쯤 남편의 회사가 지방으로 이전했다. 이야기가 나온 것이 몇 년 전이라 함께 내려가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아들만 셋인 데다가 이제 곧 사춘기도 올 텐데, 어떡해야 하나 걱정이 많이 되었다. “너 혼자 힘들 텐데, 같이 내려가는 게 좋지 않겠니?” “아이들이 가기 싫어하는데, 한창 예민할 때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는 건 어려울 거야.” 하며 친구들도 가족들도 걱정 어린 마음으로 조언해 주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아이들과 남아 있는 것을 선택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사춘기라지만, 그 당시 마흔 중반을 넘어서고 있어 내심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지내다 보면 방법이 있겠지 싶었다. 하지만 다른 것은 괜찮은데, 아이들의 사춘기가 어떻게 올지 걱정이었다.


순한 기질의 큰아이는 모두의 예상처럼 사춘기를 무난하게 넘어갈 것 같았다. 그런데 중3부터는 슬렁슬렁 그분이 찾아오는 것 같더니, 고1 입학 이후로는 제대로 삐딱하게 굴기 시작했다. 나의 말을 일부러 거스르는 듯 보였고 호감을 느끼는 친구와 연애하느라 완전히 공부는 뒷전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구설에 오르내리던 친구와 어울리는 것 같아서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는데, 그 친구와 한동안 단짝처럼 붙어 다니다가 학교에서 선도 대상으로 호출이 되기도 했다. SNS를 하느라 잠이 부족해 피곤한 얼굴로 멍을 때리고 있으니 노파심에 친구들에 관해 물어볼라치면 도끼눈을 치켜뜨며 “알아서 할 테니, 간섭하지 마!”라며 고함을 지르곤 했다. 이야기를 해 봐도 듣지 못했다. 이런저런 조언도 해 보고 화도 내 봤지만, 본인이 듣지 않을 때는 속수무책이란 걸 그때 제대로 알았다. 하도 답답해서 아이를 다 키운 친구에게 물어보니, 아이는 지극히 정상이고, 가출은 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하며 잘해 주라고 했다. 나의 욕심으로 아이를 너무 다그친 거 아니냐며 엄마가 문제일 수도 있다고 했다. 기다려 주면 된다는 친구의 진심 어린 조언이 참으로 야속하게 들렸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중2 사춘기 때문에 생겨났다는 말로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평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지랄을 사춘기에 다 떨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늦바람이 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죽기 전까진 반드시 그 양을 다 쓰게 되어 있다.”


‘트렌드 지식 사전’에 올라가 있는 말로 중2병 자녀 때문에 속앓이 하는 부모에게 위로가 되어 준다고 했다. 큰아이의 사춘기를 겪고 보니 ‘지랄’이란 단어보다 적절한 표현이 있나 싶을 정도로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에게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간혹 가다 어른이 되어서 무언가에 중독되거나 극심한 불안을 보이는 경우도 여기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든다.

아무튼 나는 입시가 코앞인 고3에 사춘기가 들이닥치지 않은 게 어디냐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미친 듯이 지랄을 떤 아이는 어느새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표현이 이런 말일까?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일상의 평온은 없었을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아이도 그때 자기가 무슨 정신으로 그렇게 개념 없이 굴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후회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버린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어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아이의 사춘기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부모 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알았지만, 나의 감정을 조절하는 것부터가 힘들었다.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삭이면서, 도대체 언제 정상으로 돌아오는지 기약 없는 아이의 태도를 멀거니 지켜보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내 말을 듣는 것 같았다. 머리가 커버린 아이는 마치 지금이라도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는 듯 냉담하게 굴었다. 너무 다가가도 안 되고 너무 떨어져도 안 되게, 적당히 거리를 둔 채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게 참 어려웠다. 나도 이제 곧 오십인데 엄마가 아이 눈치 보는 게 이런 거구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살얼음 위를 걷는 듯 조심스럽고, 고구마를 백 개는 먹은 듯한 답답함으로 짓눌렸던 사춘기라는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아이는 사춘기를 통해 훌쩍 큰 느낌이다. 지랄 총량의 일정량을 채운 아이를 보면 ‘그래, 꼭 하고 넘어가야 하는 거라면 제대로 겪는 게 낫지.’ 하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행여나 나중에 살면서 불쑥불쑥 사춘기가 다시 찾아오면 그것도 곤란할 테니 말이다.


사춘기가 잠잠해진 어느 날 아이가 얘기했다. “엄마가 계속 나를 간섭하려고 했다면 나도 모르게 더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 같아요.” 아이가 솔직하게 얘기해 준 덕에 아이의 뒤늦은 사춘기가 나 때문에 더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이렇게 잘 지나가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 의지를 좋아한다. 하려고 했던 일도 누가 시키면 하기 싫은 마음이 드는 것처럼, 한참 자아를 성장시켜야 하는 예민한 사춘기의 아이들이 누군가의 요구에 부응하느라 착한 아이처럼 군다면 그 아이는 나중에라도 늦은 사춘기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주위에 어떤 아이들은 학교를 밥 먹듯이 빠지고 몰려다니며 나쁜 짓을 일삼거나, 살기를 품고 문짝을 때려 부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극심한 사춘기를 겪은 집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어쨌거나 아이의 사춘기를 겪은 뒤로 나는 내 아들이 자신을 위해 나름대로 괜찮은 선택을 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물론, 눈물 콧물 쏙 빼도록 힘겨웠지만, 스스로 자라기 위해 부모의 간섭을 적당히 차단하는 것도 독립을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부터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치도 조금은 깨닫게 될 테니 말이다. 물론 한참 아이의 사춘기로 괴로울 때는 이런 마음은 절대 들지 않는다.






지금은 막내가 징글징글하게 말을 안 듣는 중2가 되었다. 말만 하면 투덜거리고 삐죽 대고 세상 불만투성이이다. 둘째 아이가 한 번 쳐다보기만 해도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왜 쳐다보는데?” 하며 예민하게 군다. 성질을 한껏 부리다 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게 아주 가관이다. 하지만 벌써 세 번째이니 엄마인 나도 내공이 조금은 쌓이지 않았겠나. 그래도 장 보고 나서 “짐이 너무 무거우니 좀 나올 수 있겠니?” 하면 입이 댓 발 나와서는 “뭐? 어떤 거요?” 하며 열심히 짐을 카트에 옮겨 담아 준다. 어깨가 무거우니 좀 주물러 달라고 말하면 “진짜, 왜 자꾸 나만 시켜요.” 씩씩대면서도 내가 요구한 500번을 채워서 꾹꾹 주물러 준다. “아유~ 진짜 아들 키우는 보람 있다. 정말 시원해.” 이러면서 엉덩이를 툭툭 두들겨 주면 어느새 아이의 눈이 조금 순해져서는 씩 웃고 있다.



좁아터진 엄마의 세계에 가끔은 폭풍을, 때로는 얇은 균열을 만들면서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다. 나도 자라는 아이들을 통해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기도 하고, 아이들이 컸을 때 나의 미래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인생의 매 단계마다 꼭 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들이 있다면 그만큼의 시간은 충실히, 온 마음을 다해서 내어 주어야 한다. 온전히 경험하는 그 시간을 통해 아이도 자라고 엄마도 자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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