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이 멈춘 자리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

―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지만, 절망의 그림자는 들여다보아야 한다

by 운조


며칠 전, 워싱턴 D.C.의 새벽을 뒤흔드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순찰 중이던 주방위군을 향해 누군가 총을 쐈다는 소식.

짧은 헤드라인 뒤에는 공포와 혼란이 그대로 실려 있었다.

총을 쏜 사람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망명한 남성이라고 했다.


그 한 문장을 읽는 순간, 사람들은 종종 빠르게 판단한다.

“역시 이민자 문제야.”

“받아줬더니 저런 일을 하네.”

세상은 언제나 가장 단순한 설명을 찾는다.


하지만 나는,

그리고 이민자의 현실을 오래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무겁게 내려앉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 남자의 총성이 잘못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날 총격을 겪은 주방위군의 두려움과 충격 역시

누구보다 먼저 존중받아야 한다.

이 글의 목적은 가해자를 감싸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총성 너머 보이지 않았던 현실을 함께 들여다보자는 데 있다.


아프가니스탄 출신 망명자.

그 말 뒤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전쟁, 폭발, 완전히 파괴된 고향,

가족을 두고 떠나야 했던 밤,

어느 날 갑자기 ‘집’이라는 단어가 사라진 삶.


그는 미국 땅에 도착하면서

새로운 삶을 꿈꾸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망명자의 현실은 꿈과는 달랐다.


언어는 낯설고, 일자리는 불안정하며,

심리 상담은 사치였고, 의료 접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밤마다 전쟁의 잔재가 꿈속을 찢고 들어왔을 것이다.

도시의 소음조차 위로가 되지 않는 낯선 방에서

그는 혼자 자신을 붙들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절망이 충분히 오래되면

사람은 어느 순간 자신이 사라진 것처럼 느끼게 된다.

누가 나를 보나?

누가 나를 기억하나?

내가 오늘 여기서 없어져도,

세상은 변함없이 돌아갈 것이다.


그런 감각은

한 사람을 얼마든지 위험한 경계선까지 몰고 간다.


물론, 총을 든 순간 그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 책임은 온전히 그의 것이다.

그 점은 분명히 해야 한다.


하지만 세상이 듣는 총성보다

그 총성까지 가기까지 그의 마음에서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는 파열음이 울렸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는 폭력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절망이 그를 밀어붙인 끝에서

폭력이 터져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절망은 사람을 망가뜨리고,

고립은 사람의 언어를 지워버리며,

이민자의 투명한 삶은

도움을 요청할 문마저 잃게 한다.


세상은 총만 들었지만

그의 마음 안에서 울린 비명은

아무도 듣지 못했다.


그의 행동은 용인될 수 없다.

그러나 그를 ‘악’ 하나로 단정해버리면

한 사람을 그 벼랑 끝까지 몰아붙인

사회적 구조, 제도적 벽,

그리고 이민자의 절망은 영영 설명되지 않는다.


폭력에 대한 책임은 개인의 것이고,

절망에 대한 책임은 사회의 것이다.

이 두 가지는 함께 보아야 한다.


이민자의 삶은 종종

보이지 않는 감옥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 감옥은 서류, 언어, 빈곤, 외로움으로 만들어지고

때로는 트라우마의 그림자가 벽이 된다.


망가져도 볼 사람이 없고,

울어도 들을 사람이 없고,

도움을 요청해도 닿을 곳이 없다면

사람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그리고 무너진 자리에는

세상은 늘 너무 늦게 도착한다.


나는 뉴스를 보면서 생각했다.

‘투명한 사람들’이란

존재가 연약해서 투명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지 않아서 투명해진 사람들이라고.


그 남자는 분명히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가 그 지점까지 왔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왜 그는 총을 들기 전에

단 한 번도 ‘도움받을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누군가를 보지 않는 사회는

언젠가 그 사람이 폭발할 때만 그를 보게 된다.

그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우리는 총성이 울린 뒤에서야

그 사람을 찾는다.

하지만 그 사람은

총을 들기 오래전에 이미 사라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본 것은 총성 하나였다.

그러나 나는 그 뒤에 놓여 있었을

수천 개의 상처와, 언어가 되지 못한 절망과,

혼자 견뎌야 했던 긴 밤을 본다.


그래서 이 글은

폭력을 변호하려는 글이 아니라,

폭력 이전에 존재했던 ‘보이지 않는 삶’을 기록하는 글이다.


이 도시에

총을 들기 전부터 울고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들의 흔들림을 외면한 사회가

얼마나 큰 책임을 함께 나눠야 하는지를

나는 잊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투명한 사람들의 그림자를 기록한다.





※ 이 글은 실제 뉴스 보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에세이로, 특정 개인이나 사건을 단정하거나 폭력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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