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식이 희소식인가
― 우리는 왜 늘 늦게서야 사람을 보는가
사실 대부분의 날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뉴스가 되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기사로 쓰이지 않을 만큼 평범한 날들.
총성도 없고, 체포도 없고,
누군가의 이름이 화면에 오르내리지도 않는 날들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날들 속에서
‘투명한 사람들’의 삶은 가장 많이 흔들린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고,
왜 거기까지 갔느냐고,
왜 그 순간을 넘기지 못했느냐고.
그러나 그 질문은 늘
사건 이후에만 등장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수백, 수천의 날들에는
그 질문이 도착하지 않는다.
그날들 속에서 사람들은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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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전부터 느껴왔다.
사람은 사건이 생기기 전까지는
거의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된다는 사실을.
그가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불안한지,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저 “잘 지내겠지”라고 생각한다.
말이 없으니 괜찮을 거라 추측한다.
웃고 있으니 버틸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투명한 사람들은
말이 없어서 조용한 게 아니다.
말해도 들리지 않는다는 걸
이미 배워버렸기 때문에 조용해진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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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망명자, 서류 없는 사람들,
임시직과 밤일을 전전하는 사람들,
가족에게조차 짐이 될까 마음을 숨긴 사람들.
이들은 늘 ‘아무 일도 없는 날들’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틴다.
오늘도 단속이 없기를,
오늘도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오늘도 그냥 지나가기를 바라며.
그들의 하루는
위험하지 않아서 조용한 게 아니라,
위험이 너무 일상적이어서
소음처럼 흡수되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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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터지면
사람들은 비로소 그를 본다.
그제야 그의 출신을 묻고,
그제야 그의 사정을 분석하고,
그제야 그의 삶을 해석한다.
그러나 그 시선은 늘 늦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리하기 위해 도착한다.
“이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그 문장으로 사람 하나를 접어
사건의 서랍 속에 넣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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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그 긴 시간 동안,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었는가.
그가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출근하던 모습,
전화를 받지 않던 밤들,
점점 줄어들던 말수,
가끔 멍하니 창밖을 보던 얼굴.
그 모든 신호들은
사건이 되기 전부터 거기 있었다.
다만 우리가 보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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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사람들』을 쓰며
나는 점점 확신하게 된다.
이 연재는
사건을 기록하는 글이 아니라,
사건이 되지 못한 삶을 기록하는 글이어야 한다는 것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날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이미 충분히 무너지고 있던 시간들.
그 시간을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사건 뒤에 서서 같은 질문을 반복할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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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 도시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투명한 얼굴로
하루를 견디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이야기를
계속 쓰려고 한다.
아무도 보지 않던 날들의 무게를
조용히 기록하려 한다.
그것이
『투명한 사람들』이라는 이름을
끝까지 붙들고 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