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과 기다림 끝에 오는 순간들
정말 운도 실력일까?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에 2019년에 입단하여 올해로 7년 차엔 접어든 양우현이란 중고선수가 있다. 오랜 세월의 기다림 끝에 최근 1군에 콜업이 되었는데 이틀 연속 결승타의 주인공이 되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는 '언젠가 기회가 올 거란 생각만으로 하루하루 참고 임했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믿고 기다려 준 가족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눈물을 삼키며 전한다. 그동안 겪었을 마음고생을 느끼게 해 주는 장면이다.
스포츠는 한 편의 인생 드라마와 같다. 선수 한 명 한 명이 그 스토리의 주연이요 조연이다. 스포츠에선 유독 운이 작용하는 일이 많은 것 같지만 사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운을 떠올리게 하는 일들이 적지 않다.
얼마 전 A를 만났다. A는 조직생활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했던 인물이다. 상사들에게는 바른말을 서슴지 않지만 후배들에게는 자기 목을 내 걸고라도 책임을 져주는 그야말로 의협심과 의리로 똘똘 뭉친 사나이였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은 일이 일어나 승진을 코앞에 두고 좌절을 맛본다. 자존심이 워낙 강했던 그는 그 일로 40대 중반, 부장 말년에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가장으로서 가족을 책임져야 했기에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 곧 사업을 시작한다.
초기 사업이란 게 얼추 그렇듯이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가는 곳마다 단단한 벽들이 즐비하다. 결국 터널을 통과할 때까지 인내하며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살아남기도 하고 흥하기도 망하기도 한다. 성공의 확률로 보면 직장 내에서 성공하기보다 어려우면 어려웠지 결코 쉽지는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초기에 고생한다는 소식은 나도 들어서 익히 알고 있었다. 같은 또래의 동기들은 대기업에서 임원이 되어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동안 그는 그 길에서 벗어나 남들의 성공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쓰렸겠는가.
다행히도 어느덧 15년 이상 업력이 쌓인 그의 회사는 본 궤도에 올라 순항을 거듭하고 있다고 한다. 며칠 전 만난 그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가시지 않고 자신감과 여유가 풍겨 나온다.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아침엔 아는 지인이 카톡으로 신문 기사를 하나 보내왔다. 얼마 전 회사를 은퇴하고 제2의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후배 B가 기사에 나온 것이었다. 새로 들어간 회사에서 그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는 보도였다.
B는 천성이 워낙 착해서 주변에 적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조직 안에서는 능력에 비해 보상이 못 미친 케이스였다. 그런 그가 새로운 곳에서 능력을 발휘해서 인정받고 회사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하니 이보다 기쁘고 좋은 소식이 없다.
그저께 만난 C는 지금 인사발령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는 능력이 뛰어남에도 조직 정치에 휘말려 한직으로 물러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그의 조직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어 혹시라도 다시 중용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좋은 소식 있으면 연락 주겠다'는 그의 말에서 운명의 문턱 앞에 서 있는 사람의 간절함을 느낀다.
또 한 명, 후배 D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일머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고민되는 일들도 그에게 맡기면 어디서 그런 아이디어가 나오는지 척척 해결해 냈다. 그는 항상 자신감이 넘쳤고 시키는 일을 넘어서 해야 할 일을 찾아내곤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의 앞에는 중요한 순간마다 악재가 찾아왔다. 애써 밭을 갈고 씨를 뿌려 놓으면, 꽃을 피울 즈음에 사고나 이슈가 터져 결국 열매는 다른 사람이 따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런 일들이 거듭되더니 급기야 임원 생활을 오래 하지 못하고 회사를 떠날 위기에 놓여 있다.
사람마다 살아가면서 겪는 상황들이 각양각색이다.
좋은 일들이야 그저 좋아하고 축하해 주면 그뿐이지만,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면 주변 사람들의 마음까지 안타깝게 한다. 그나마 말년 운이 좋아 어려움을 극복하고 해피엔딩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다 그렇지 못한 것도 세상이다.
흔히 '운도 실력'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떤 오너는 CEO를 뽑을 때 능력 못지않게 '운이 좋은 사람'을 선호하기도 한다. 능력 있는 사람조차 겸손의 말로 '저는 단순히 노력을 했을 뿐인데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걸 보면 사람에게는 운도 무시 못할 존재가 아닐까.
하지만 모든 것을 운에 기대서만 살아갈 수만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나의 운을 내가 알 방법이 없으니 그저 좋은 운이 닿기만을 바라며 그 순간까지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은 『성호집』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는 참으로 노력하여 올라가도 미치지 못하는 자가 있다. 그러나 나는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능히 미치는 자를 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행하느냐 행하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능력이고, 끝까지 도달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은 운명이다. 운명에 대해서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다만 노력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노력할 뿐이다.” (중앙일보, 2025. 8. 22)
운명이 어디서 손짓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거에 집착하고 불만 가득한 삶을 살아가기보다 현재에 집중하며 나아가다 보면 '나에게도 이런 운이 있었나?' 하는 날이 분명 온다.
지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반드시 지금보다 더 나빠질 날은 없을 거라는 기대와 희망으로 오늘 하루도 즐겁게 맞이하는 각자였으면 좋겠다.
C에게서도 D에게서도 좋은 소식과 반전의 인생이 펼쳐지기를 학수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