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의무가 아닌 선택

변하는 회식문화

by 구쓰범프

며칠 전 노포식당에서 저녁을 할 기회가 있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워낙 맛있고 유명한 집이라고 안내한 곳인데, 조금 일찍 도착해서 막 들어가려고 안을 들여다보니 아무도 없다. 텅 빈 식당 안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기 어색해 밖을 서성이다 일행이 도착한 뒤에야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손님이 많을 저녁시간인데도 한산해서 좀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자리에 앉자마자 맞은편 벽의 큼지막한 글이 눈에 들어온다.


'12월 31일 종료 예정이었으나 아껴주신 모든 분들의 성원과 사랑으로 더 오랫동안 손님들께 좋은 음식을 대접할 수 있어 넘 행복합니다.'


잠시 후 식사 주문을 하고, 서빙을 하러 온 사장님께 여쭤본다. '정말로 문을 닫으시려고 했던 거예요?' '네. 저기 쓰여 있는 그대로이고 지금도 고전하고 있어요.'라고 한다.


사람이 왜 그렇게 없는 건지 물으니 주변 회사들에서 모임을 하지 않아 저녁에 술을 마시러 오는 손님이 별로 없단다.


장사가 안 되는 데는 백가지 이유가 있다고 하지만, 얼마 전 또 다른 식당에서 맞이한 풍경과도 다르지 않아 사장님의 말이 수긍이 된다.


경기 침체의 영향이 가장 크겠지만 직장 문화의 변화 또한 회사 주변 상권에 충격을 주고 있음이 분명했다.




오래전 미국 근무 시절, 부서 회식을 한 적이 있다. 보통 현지인들은 부부가 아침저녁으로 아이를 돌보는 역할이 나눠져 있어 회식은 저녁보다 점심을 조금 길게 가져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저녁 회식은 반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하는 정도였다.


미리 정해 둔 회식날은 아침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마치 소풍 전날의 아이들처럼 기대가 만발한 게 느껴진다. 어떤 사람은 아예 호텔을 예약해 외박을 준비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미국에는 대리 운전이란 것도 없었고, 술을 마시면 집에 갈 방법이 없으니 그날은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예 외박을 하고 가는 날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일상과 같았던 회식이 그들에게는 특별한 이벤트였던 것이다.




한 선배가 외국 거래선과의 일화를 들려준 적이 있다. 미팅을 마치고 식사 자리에서 거래선이 'ㅇㅇ 회사의 성과가 이렇게 좋은 비결이 뭐냐?'라고 묻길래, 여러 이유 중 하나로 '회식 문화'를 꼽았다는 것이다.


'우리 회사는 업무가 끝나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나누는 이야기의 대부분이 결국은 회사 얘기다 보니 동료 간 관계가 좋아지고 업무 협조도 수월해진다. 그리고 회식 자리에서 쌓인 관계는 이후 원활한 소통과 정보의 흐름을 이어준다'라고 했다는 거다.


이런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보니 각 부서별로 회의비 명목 예산이 있고, 그것은 회식을 장려하는 문화로 순환되는 작용을 한 것이다.


우리와 같은 회식문화가 없는 그들에게 이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이 아니었을까



최근 회사에서 부장 역할을 하는 후배들을 만났다. 자녀 교육, 취미생활 등 다양한 주제의 대화가 오가다가 회식 얘기가 나왔다. 위의 식당 이야기를 전했더니, 실제로 회식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저녁 식사 자리가 많이 줄어든 게 사실이라 한다.


한 번은 본부장이 부서 회식을 제안해 참석이 가능한 사람을 미리 모집했다고 한다. 팀원 대부분이 참석을 하겠다고 해서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한 직원이 조용히 다가와 묻더란다. '혹시 아이를 데리고 참석해도 되느냐'라고.


굳이 그렇게까지 참석하지는 않아도 된다고 답을 했는데, 과거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질문을 들어서 한동안 멍했었다는 얘기를 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변화 중의 하나가 밥 먹는 문화다. 식당을 가 보면 혼밥을 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뿐만 아니라 비대면 근무에 익숙해지다 보니 사람을 만나서 겪는 갈등과 스트레스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회식조차 같이 하기를 꺼리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개인의 삶과 시간을 존중받고 싶어 하는 흐름 속에서, 회식은 더 이상 ‘당연히 가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 '선택사항'이 되고 있다.



사실 회식과 비슷한 문화는 우리 역사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왕과 신하 또는 사대부들 간에 학문과 교양을 나누는 연회가 있었다. 단순한 술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고 지식을 넓히며 관계를 돈독히 하는 시간이었다. 오늘날 기업 구성원들 간에 주고받는 주제와 달리, 주로 국가 운영, 학문적 토론, 지역 사회 문제 해결 등을 논했지만, 서로의 진심을 듣고 관계를 쌓으려는 노력은 시대와 문화를 넘어 늘 존재해 왔다.


이처럼 한때는 우리의 문화요, 경쟁력이었던 회식이 이제는 기피대상이 된 게 씁쓸하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갈수록 개인주의화되어 가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으로, 아쉬워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특히, 리더는 시대의 흐름에 맞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젊은 세대를 상대로 회식을 강요하거나, 참석을 안 한다고 불이익을 주려한다면 시대착오적인 리더로 전락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회식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그 자리를 통해 이루어지던 소통과 신뢰를 어떻게 담을 것인가이다. 형식이 달라진다고 관계의 본질마저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옛날 방식에 변화를 꾀하고 성공 공식을 내려놓을 태세로 임해야 새로운 길이 눈 앞에 나타난다. 아무리 좋았던 것이라도 어제의 강점이 오늘 부담으로 작용한다면 과감히 포기하고 새것을 추구하기 바란다. 아쉽지만 털고 다시.


회식도 그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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