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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정신을 담은 작품이란?-1

센과 치히로가 보여주는 일본 사회

by 이차원 Mar 20. 2025

 *이 글은 결과를 포함한 영화 전반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하신 분들은 이 점 유의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또한 전문적인 평론의 영역은 아닌 학부생의 끄적임이니 흥미로만 봐주세요! 감사합니다 :)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만든 2001년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せん千ち尋ひろ神かみ隠かく)(이하 센과 치히로)은, 필자 기준, 일본 극장 애니메이션의 금자탑이자 전세계 애니메이션(사실 그냥 영화를 포함해도 된다)의 최고봉중 하나이다. 이는 BBC에서 2016년 선정한 '21세기 위대한 영화' 100선 중 이 영화가 4위를 차지한 것을 참고한다면, 그저 막연한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8-90년대생 '지브리 세대'를 비롯해서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영화가 그 정도였다고? 그냥 재밌는 애니메이션 정도 아니였어?'라는 놀란 표정으로 바라볼 때가 많다. 물론 그런 놀란 표정을 보는 게 하나의 재미이긴 하지만, 작품의 위대함을 나누는 것 또한 다른 재미이기도 하므로 오늘은 한 번 '센과 치히로'의 작품성과 그 함의성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자.


미야자키 하야오와 플롯


 우선 필자는 전문 영화 평론가도 아니며, 영상 관력 학과를 전공한 것도 아님을 밝힌다. 영상에 관해서 분석할 수 있는 수준은 그냥 내 눈에 좋다, 안 좋다를 감별할 수 있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영문학이라도 전공한 덕에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의 영상 매체 작품을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아마 깊이 생각하는 유일한 것)이 플롯인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CG 장면 같은 것은 거의 쓰지 않고 치밀한 플롯 구성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취향을 가진 필자가 볼 때 보이는 미야자키 하야 감독의 영화의 특징이 하나 있으니, 바로 플롯의 구성에 대해서는 소위 말해 관심이 '뒷전에 가 있다'라는 것이다. 


 초기 작품들부터 시작해서 후기 작품에 이르기까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의 특징은 '세계관'과 '캐릭터성'에 오로지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작품을 생각해보자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 시리즈가 있겠다. 특히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아바타: 물의 길'을 보면 그 특징이 두드러지는데, 그래도 기본적인 영웅 서사의 틀은 존재했던 전작에 비해서 두 번째 작품은 정말 큰 줄거리를 빼놓으면 나머지는 온전히 아바타의 행성과 새로운 종족들을 보여주는 데에 감독의 관심이 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역시 비슷한류의 감독인데, '원령공주',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 등등의 작품을 보면 '정말 재밌는데 그래서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뭐지?'하는 생각을 하신 분들이 종종 있으실 거라 생각한다. 필자 역시 환경 보호, 반전 사상,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메시지 등등의 거대한 담론을 담고 있는 것은 알겠는데, 그래서 뭐 어쨌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논리가 없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것은 아마도 우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전부 다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월령 공주>에 나오는 사슴신의 예시나 <센과 치히로>의 하쿠,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하울과 전쟁에 대해서 감독은 큰 설명을 곁들이지 않는다. 최근 작품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았을 때 들었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가 독자들이 스스로 생각하면서 파악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조금 받았었다. 또한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애당초 플롯을 그렇게 중요시 여기지 않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스튜디오 지브리에 관한 그와 관련자들의 저서나 인터뷰를 찾아보면 '거의 완결이 다 날 때까지도 결말을 아무도,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조차도 몰랐다'라든가, 아니면 '이미 정해져 있던 스토리를 이런 장면이 들어가면 더 좋을 것 같으니까 바꾸자고 했다'라든지 하는 일종의 괴담 혹은 전설 같은 이야기를 종종 볼 수가 있다. 이는 줄거리보다는 장면들과 거기에 있는 인물들의 표정, 동작 등의 입체감을 중요시 여기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철학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유독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나왔던 그의 작품들을 보면 장면 하나 하나 마다 주인공들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엑스트라들의 표정과 동작 등의 진짜 살아서 숨쉬는 사람들의 것인 듯한 인상을 받는 것 같다. 


 다만 빛이 있다면 당연히 그림자도 있는 법. 모든 성격의 단점은 그 장점에서 나오듯이, 그러한 생동감을 주는 스타일이 플롯적으로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슬슬 여기까지 말하면 이제 무슨 말을 하는지 현명하신 우리 독자분들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필자는 역으로 여기에 '센과 치히로'가 명작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센과 치히로'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장점인 영상미가 살아있으면서도 플롯적으로 기승전결이 완벽하다. 결말 역시 결국 강의 신으로 밝혀진 하쿠와 어린시절 치히로 간에 있었던 일 등등이 구체적으로 밝혀지는 게 답답할 수는 있으나, 소녀의 성장 스토리라는 이야기의 흐름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진행되다가 깔끔하게 마무리 되는 걸 느낄 수 있다. 뭐, 이에 대한 생각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고 해도,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이것이 필자가 생각하는 이 작품, '센과 치히로'가 명작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첫 번째가 되겠다. '센과 치히로'에는 모티프로 하는 작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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