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4계절이 뚜렷하고, 자원이 없으며, 주변엔 열강들이 즐비한 땅.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한국에서 산다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부지런하고 배울 점이 많은 것 같기도 하다. '빨리빨리'로 대표되는 우리의 문화를 부정적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최근 들어서 꽃을 피우고 있는 경제, 문화 등의 성공을 기반으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것을 볼 때 충분히 자긍심이 있을만하다. 더욱이 이런 성공이 거의 황무지에 가까웠던 건국 초기로부터, 산업화와 민주화 두 마리 토끼를 전부 다 잡으며 이뤄낸 것이기에 더욱 값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신화적인 성공 스토리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요즘 너무나도 체감하고 있듯이, 이러한 성공에는 어쩔 수 없는 심각한 부작용이 따르는 것 같다. 내가 이제 막 초년생으로 진입해서 바라본 한국 사회는 역설적이게도, 성공의 자부심과 미래의 불안함을 함께 느끼고 있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인 듯하다.
나는 96년생이다. 소위 말하는 MZ 세대. 대체 1981년부터 2012년에 이르는 세대를 어떻게 하나로 묶어서 부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Z 세대의 시작을 95-96년으로 보니까 딱 그 둘의 시작과 끝에 맞물려 있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되고 싶어서 된 건 아니지만 위아래로 치이긴 해도 한 가지 장점 아닌 장점이 생기게 되었는데, 다른건 몰라도 MZ 세대의 전체 상황 만큼은 우리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보다 좀 더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포지션에서 위아래를 훑어보며 형, 누나, 동생들과 얘기하며 한 가지 알게 되는 점은, 우리 세대에서는 더 이상 지금까지 한국의 어른들이 가지고 있던 '발전적인 사회-인간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가 꾸는 꿈은 '전문직'이고, 그게 아니라면 '가성비'라는 삶의 방식을 통해 '소소한 삶의 행복'을 찾는다. 쉽게 말하면, 우리는 더 이상 꿈꾸지 않는다.
올해 서른이 되어 '어른'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제야 사회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어렸을 때 듣고 자랐던 '한국'과 많이 달라진 우리 사회에 적응하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지금까지 한국의 역사에서 쉬웠던 시대는 전무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긴 하더라도 여전히 높은 자살률과 0.7에 육박하는 출산율 등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여러 가지 문제들은 우리 사회가 아예 처음 맞닿드리는 종류의 것이어서, 젊은 세대의 입장에서는 당혹감과 함께 좌절감 마저 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스스로의 생존 혹은 행복에 몰두하고, 정 안되면 더 이상 고군분투하기보다는 포기한다.
대체 무슨 말을 더 해야 할까. 아직 사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이제 조금 경험했을 뿐이지만, 작금의 문제가 너무나도 복잡한 것이라 쉽게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님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것 같다. 또래들과 얘기를 해보면, 이는 혼자만의 생각도 아닌 것 같다. 처음으로 희망이 아닌, 포기를 경험하게 된 것이 M세대였다면, 이제 Z 세대는 그것이 디폴트 값이 되어버린 애당초 포기를 할 것이 없이 다 포기하며 시작한 세대가 아닐까. 그것을 지금 너무나도 기이하게 낮은 20대 연애율이 설명하고 있으며, 역대 최고의 구직 포기자 숫자가 뒷받침하고 있다.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우리 세대의 문화가 이 사회의 전통적인 인간상과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것이라서, 가뜩이나 빠른 발전으로 세대 간의 소통이 안 되는 우리 사회의 단절 문제에 기름을 붓고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이 초유의 사태를 대비하고 해결하는 데 온 힘을 쏟기보다는, 서로 비난하는 데 급급하는 것 같다. 이러한 현상을 지켜보고 있으면 나는 화가 난다기보다는 그저 안타깝다. 우리는 왜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서로의 가슴에 못을 밖으며 사는 것일까. 협력해도 모자랄 판에.
이 이야기는 그래서 쓰는 나만의 자서전이다. 제목도 일부러 90년 대생들에게 가장 유명했던 학습 만화 중 하나인 '살아남기 시리즈'를 모티프로 삼아, 우리 세대를 표현할 수 있도록 지었다. 물론 거창한 제목과 달리 90년 대생들의 삶을 대표한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담을 생각은 없다(담을 수도 없고). 그냥 혼자만의 생각을 정리한 에세이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도 쓰는 이유가 있다면, 이렇게 한 사람의 이야기로라도 우리의 이야기를 모두에게 전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나 역시 좀 꼬이고 비판적인 사람이기도 해서, 너무나도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에 대해서 노래하는 건 좀 가식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비관적이기만 해서는 그냥 다 같이 죽자는 이야기일 뿐이지 않나. 이럴 때 일 수록, 그냥 단순하게 서로의 문제를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공유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이 전대미문의 사건들이 속속히 발생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자신들을 이루는 구성원들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나름 돌아다니는 정보들은 많지만, 너무 자극적이고 편향된 것들이 많아서 그걸 한 번 더 해석하는 작업들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작업이 바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닐까.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객관적일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갈등에 매몰되지 않는 솔직한 이야기. 그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들이다. 우리는 우리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된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그냥 좀 틀리고 삐뚤빼뚤하더라도 나의 시각을 듬뿍 담아, 내가 보는 세상과 삶에 대해서 공유해 보기로 했다. 그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