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 서로 간의 간극

입시와 양극화에 대하여

by 이차원

여차저차하여서 아직은 대학에 다니는 학부생으로서 다른 학부생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여러 가지 특이한 상황에 놓여있는 친구들을 더럿 볼 수가 있다. 그중 한 가지 두드러지는 케이스 중 하나는, '의대를 가기 위해서 소위 말하는 N수를 계속해서 하는 경우'이다. 나는 이게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는 데, 왜냐하면 본가 쪽으로 넘어가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나 다른 지인들을 만나서 얘기를 하다 보면 '대학은 이제 필요 없다'라거나 '대학에 가지 말 걸 그랬다'와 같은 '대학 무용설'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그걸 말하는 사람들의 나이가 거의 비슷하다는, 그러니까 또래들이라는 것이다. 대체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오랜 시간에 걸쳐 생각해 보고 혼자서 내려 본 결론은, '둘 다 맞다'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어떻게 상반되는 명제가 한 세대에서 동시에 참일 수 있냐'라고 물어보신다면, 참으로 합당하신 지적이다. 내가 방금 한 말은 보통 논리상 '역설'이라고 부른 관계에 가깝게 들린다. 하지만, 나는 이런 모순적으로 들리는 말이 우리 세대가 처한 상황을 굉장히 잘 나타내준다고 생각한다. 바로 '디폴트값(기본값)이 되어버린 빈부격차를 비롯한 양극화 문제'라는 상황 말이다. 물론 어떤 사람이 대학에 가고 안 가고 가 꼭 빈부격차와 연결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의 꿈과 관련된 일일 수도 있고, 개개인의 취향, 재능, 성격, 만나온 사람 등등의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미쳐 한 사람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의 입시 경향과 시장 상황을 살펴보면 연관이 있다는 것도 좀 알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대학에 가는 무리'와 '대학에 가지 않는 무리'가 전혀 다른 사람들로 구성된 두 무리일뿐더러, 그들의 사고방식 그리고 공유하는 문화 자체가 상반되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나온 지 한참 되어 조금 옛날 말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금수저 은수저론'은 결국 2020년대 초반부터 두드러진 부동산가격의 거품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2025년 현재 강남, 대치동을 비롯한 소위 '좋은 학군지'에서는 '영어 유치원'과 '의대 열풍'으로 대표되는 사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아니, '사교육 열풍이야 언제든지 있어왔지 않나'라고 말씀하실 수 있겠지만, 이 과열화는 좀 특이할 정도로 심하다. 3-5살 아이들이 '영어 유치원'이라고 불리는 학원에 들어가는 고시를 치고, 이미 유수의 대학과 심지어 의대에 들어간 학생들이 계속해서 의/치/한 혹은 더 좋은 의대에 들어가기 위해서 계속해서 공부한다. 말하자면 입시 성적 상위권 이상을 기준으로 입시에 돌입하는 최소 하한선은 점점 더 내려가고 입시에 돌입하는 최대 상한선은 늘어나고 있으며, 이 과정들은 보통 어마어마한 돈이 투입되는 사교육 시장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학생수에 비해서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사교육비에 대한 통계를 통해 뉴스에서 여러 번 다뤄지고 있는 바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sEX-j-ZMp0

(출처: 2025.03.13/12 MBC뉴스)


그렇다면 입시에서 중하위권 이하의 성적을 받은 우리 또래는 어떤 양상을 보이고 있을까? 대부분은 IT의 발달로 인해서 등장한 신종 직업인 '프로그래머'를 통해서 직업을 잡았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2020년대 초 가장 핫한 직업이었던 프로그래머는 대학이 거의 필요 없는 직업이라는 것이다. 물론 대기업을 들어가려면 학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애초에 프로그래머 자체가 실력을 더 우선시하기도 하고, 대기업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면 저 시기에는 국비로 지원되는 '부트캠프'를 통해 약 반년 가량의 교육을 듣고 나면 취업을 할 수 있었기에 굳이 대학을 갈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은 이 시리즈의 <프롤로그>에서 다룬 적이 있듯이, 뉴스들에서 다루고 있는 '구직포기자'들이다. 보통 돈이 필요한 경우 알바 자리를 전전하거나 아니면 쿠팡에 하루 이틀 정도 나가고 다른 사회생활은 거의 안 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 마저도 거의 하지 않는 경우가 '구직 포기자'로 잡히는 듯하다. 이 두 가지 경우가 내가 생각하기엔 '대학 무용론'이 대두되는 이유인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RY3YirF3iTY

(출처: YTN)




이렇듯, 우리 세대는 위와 아래로 홍해처럼 갈라져서 서로 다른 삶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가 매우 오랜 기간에 걸쳐서 누적된 문화가 점점 심화되어 아예 정착한 것이라는 것이다. '의대 열풍'의 경우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입시 과열 및 안정적인 직업을 위한 전문직 선호 현상이 심화된 것으로 보이며, '구직 포기 현상'의 경우 역시 이전부터 쌓였던 'N포 세대', 'Yolo', '소확행' 등의 청년문화가 점점 심화되어 일본의 '사토리 세대'화 되어가는 양상으로 보인다. 문제는 최근의 경우 그나마 대학에 가지 않아도 취업을 가능하게 해 주었던 IT 업계 역시, 부족한 일자리와 A.I 산업의 발달로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2025년부터는 이전까지 유지되었던 '대학무용론'의 산업구조도 양상이 또 바뀌어가는 중인 것 같다.


과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듯이 이러한 문제들이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며 우리 세대의 삶과 문화 속에 이미 완전히 자리 잡아 윗전의 세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대'를 형성해 버렸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에 자리 잡고 있는 이 뿌리 깊은 '양극화'의 현상은 앞서 가고 있는 이들은 스스로를 전례 없는 정도의 경쟁 상황으로 몰고 가게하고 있으며, 약간 뒤처진 이들에게는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keyword
이전 02화우리가 사랑하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