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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적 신호등

이차원의 세상-신호가 바뀌는 시기를 놓치지 말자

by 이차원 Nov 27. 2024

 2024년 현재, 세계는 우리가 이전에 줄곧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통합된 뒤 번영을 구가하던 EU를 필두로 각국의 대표들과 NGO 단체의 수장들, 그리고 그들의 발언을 전달하는 언론들은 모두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부르짖었으며 그것이 하나의 '세계적 아젠다'로서 기능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동일한 시기 발간된 조지 프리드먼(George Friedman)의 <100년 후>(The Next 100 Years: A Forecast for the 21st century)를 보면 지정학적인 관점으로 세계를 해석하여 발칸 반도 분쟁, 폴란드의 군사 강국화, 중국의 약세 등을 주장한 바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상황은 어떠하고, 어떤 관점이 미래를 보다 더 잘 예측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냥 뉴스만 놓치지 않고 보아도, 아니 다른 사람들한테 소식만 들을 수 있어도 현재 국제 정세가 예전과는 달리 보다 갈등이 첨예한 양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저널리스트 토마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은 그의 책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이른바 '황금 아치 이론'을 통해 '맥도날드(로고가 황금 아치이다)가 들어가 있는 나라들 간에는 서로 경제적으로 연관되어 있어 잃을 것이 많기 때문에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이는 세계화에 대한 매우 긍정적인 전망이었지만 22년도 3월, 맥도널드가 러시아에서 운영하는 매장 847개를 모두 철수하면서 사실상 깨졌다는 평이 많다(부산일보, 박종호). '세계화가 여전히 주요한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갑론을박이 있겠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하여 이스라엘-하마스 간의 분쟁으로 촉발되고 있는 중동 지역의 분쟁은 흡사 17-18C부터 촉발되었던 유럽과 그 근방을 두고 발생했던 권력 다툼(Power Game)과 유사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다. 지금 상황은 소위 말하는 '지정학의 귀환'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펼쳐지고 나서야 '그럴 줄 알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큰 영양가 없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고 조지 프리드먼과 같은 몇 십 년 전을 내다보는 혜안을 지니는 일 역시 어려운 일일 것 같은데, 평범한 우리가 세계의 변화를 조금이라도 더 기민하게 따라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제목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국제 질서에서의 '신호등'들을-지금 시점에서는 지정학적인 신호등을- 주목해서 볼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국제 질서를 분석하는 3가지 거시적인 이론의 틀들-현실주의, 자유주의, 구성주의-을 현실에 적용할 때는, 한 가지 이론적인 틀이 언제나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시기마다(주관적으로는 30-40년 정도의 기간을 가지고) 득세하는 이론이 주기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그렇기에 한 이론이 일단 궤도에 오르고 나면 주류를 그대로 따르면 되므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러나 현재 상황처럼 한 가지 이론(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다른 이론(현실주의적 관점)으로 넘어가야 하는 전환기에는 이론적인 틀을 바꾸게 되는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는 것이 좋다. 쉽게 말하면 30분 뒤에 어떤 불일지 너무 먼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뛰어난 전문가의 영역이기에 포기하더라도, 불이 바뀌는 것을 인지하고 싶다면 눈앞에 있는 반대편 건널목의 신호등을 보지 말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차선의 신호등을 보고 있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모두가 지금까지 빨간불이었으므로 관성적으로 빨간불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몇 초 전에 바뀐 초록불을 보고서 이제 길을 건널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현재 시점에서의 "그 '차선의 신호등'이 대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라고 물어본다면, 필자는 국민 투표 이후 계속 지지부진하다가 2020년 1월 31일 결국 실행된 '브랙시트'를 뽑고 싶다. 혹자는 '그때 국민 투표 결과도 박빙이었고 포퓰리즘적인 투표라는 비판도 있는데, 브랙시트가 국제 질서가 변화한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뽑는 것은 너무 비약이 아니냐'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필자는 다른 나라가 아니라 영국이기 때문에 이 사건이 매우 상징적이었다고 본다. 지정학 및 외교사적으로 유럽에서 영국은 매우 독특한 특성을 가진 국가이다. 여러 인종과 국가들이 엉켜서 첨예하게 갈등을 벌이는 유럽 대륙에서 거의 유일하게 판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섬나라로서, 영국은 항상 대륙의 강대국을 견제하고 중립을 지키다가 한쪽이 약해졌을 때 합세해서 균형의 추를 맞추는 역할을 자처해 왔다. 필자는 그런 영국이 '유럽의 통합'을 이루어낸 것으로 평가받던 EU에서 탈퇴한 그 시점을 기점으로 유럽의 지정학은 시작됐다고 본다. 물론 가장 직접적이고 표면적인 이유는 '난민 문제'라고 하나, 그 이면에는 EU의 가장 수혜자라는 지적이 있었던 '독일의 성장에 대한 불안감'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영국은 이미 유럽의 균형의 추를 맞추기 위한 작업에 착수해 버린 형국이 된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부활한 유럽의 지정학의 물결은 대체 어떤 방향으로 흐를 것인가? 미래에 대한 예측은 힘들지만 지금의 국제 정세-특히 유럽의 정세가 과거 세계대전 이전의 상황과 매우 유사하게 흘러가는 만큼, 그때의 상황에 비추어서 짐작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현재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상황으로 인해서 러시아가 국제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지만,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모르겠다. 아마 장기적인 관점으로 볼 때 러-우 전쟁 휴전 협상 이후 독일을 필두로 시작해서 러시아와 유럽 국가들이 관계는 점점 개선될 가능성이 클 것 같다. 이번 전쟁으로 인한 대러시아 제재 전까지 가장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독일은 전통적으로도 자원이 부족한 나라의 특성상 러시아와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해 왔다. 뿐만 아니라 독일은 유럽 사회에서 견제를 받을 때 우방을 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전쟁 이전의 상황까지는 러시아와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취한 사례가 꽤 있었다. 또한 외교사의 사례를 통해 비춰보았을 때 프랑스 역시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서 러시아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점점 강화해 나갈 가능성이 있다. 이번 러-우 전쟁시점을 기점으로 독일에 큰 변화가 두 가지 일어났는데 하나는 독일의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독일이 재무장 선언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전쟁에 대한 섣부른 추측은 금물이겠지만, 적어도 전통적으로 보았을 때 이는 프랑스에게 결코 좌시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눈에 들어간 먼지처럼 계속해서 신경을 건드는 하나의 트리거 갈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전쟁을 빼놓고서도 그 이전에 진행되는 유럽 Power Game의 중심은 독일 문제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독일의 옆 나라인 프랑스와 러시아가 장기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측해 본다.   


Reference


부산일보, [밀물썰물] 맥도널드 위기는, 박종호, 2023.10.23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3102318155830642#:~:text=%ED%99%A9%EA%B8%88%20%EC%95%84%EC%B9%98%EB%9E%80%20%EB%A7%A5%EB%8F%84%EB%82%A0%EB%93%9C%EC%9D%98,%EC%88%98%20%EC%97%86%EA%B2%8C%20%EB%90%9C%EB%8B%A4%EB%8A%94%20%EC%A3%BC%EC%9E%A5%EC%9D%B4%EB%8B%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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