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에 있는 자본주의적 고딕문학
*이 글은 결과를 포함한 영화 전반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하신 분들은 이 점 유의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영화 '기생충'의 고딕적 요소 2
:환상성의 시작
너무 순진한 박사장의 가족들이 약간 이상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꽤 현실적으로 진행되고 있던 이 영화의 환상성이 살아나기 시작하는 시점은 언제일까? 코믹하게 진행되던 극 중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는 부분을 보통 비오는 날 문광이 초인종을 누르는 장면부터로 뽑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이 시점이 <기생충>의 '고딕적 환상성'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문광이 다시 저택으로 들어오면서 지하실의 정체가 밝혀지고, 이후 박사장 가족이 집에 다시 방문하였을 때 기택의 가족들이 보여주는 행동 양식에서 그들 역시 근세처럼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변화하는 모습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모두가 나간 저택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충숙이 기택에게 한 대사는 이렇다. "아늑해? 아늑하셔? 그래~ 이러다가 갑자기 박사장이 딱 집에 온다 쳐봐. 김기택 이 인간? 바퀴벌레처럼 샤샤샤샥 숨겠지? 응? 얘들아, 왜 니네 우리 집 그거 있잖아. 형광등 밤중에 그냥 탁~ 키면 바퀴벌레들이 그냥 쫘아아악 숨는 거. 하하하. 뭔지 알지. 뭔지 알지? 하하하하". 그 이후, 박사장 가족이 집에 들어온 후 기택의 가족들은 그야 말로 곤충 같은 동작을 하며 침대 밑과 쇼파 밑 등을 숨어서 오고가며 그곳을 빠져나가게 된다(들키지 않는 다는 점에서 작품의 초현실적인 면모가 슬슬 드러난다). 그들은 이 시점부터 인간을 닮았지만 아예 인간성을 잃어버린 '기생충'으로서 변화하게 된다.
이는 고딕문학의 인물들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인 퇴화(Degeneration)으로서, 인간성을 잃어버린 부도덕한 인물들이 서서히 유아 혹은 동물과 사물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에서 창조물을 무참히 버리고 그에게 가장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점차 아이에 가까운 행동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여주는 것 등 여러 고딕 작품에서 이러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기생충>에서는 자본주의에서 도태된 후 비도덕적인 행위를 한 기택의 가족들에게 진행되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미 다른 Double인 근세의 퇴화가 많이 진행되었다는 것은 처음 문광이 지하실로 들어와서 그에게 젖병을 물려주는 것과 이후 그가 점차 동물적인(원숭이에 가까운) 소리를 계속 내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영화 '기생충'의 고딕적 요소 3
:환상성의 완성
이 이야기의 환상성은 이 저택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비밀-지하실이 아닌 또 다른 비밀에 의해서 완성된다. 전자가 박사장 가족 막내 다송이와 연관된 것이라면, 후자는 맏딸 다혜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처음 이 집에 기우가 들어왔을 때 그를 소개해주었던 친구 민혁의 대사를 잘 들어보면, 그와 다혜는 상식적으로 진행되는 과외의 선생과 학생의 관계가 아닌 연인의 관계였던 것 같다. 이는 기우와 다혜의 관계로도 이어지는 데, 이 역시 고딕 문학에서 잘 다뤄지는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연인' 메타포와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로 <너대니얼 호손, 주홍글씨>, <에드 앨런 포, 어셔가의 몰락>등의 미국 고딕 문학에서 많이 나타나는 특징으로, 특히 지하실에서 뛰쳐나온 근세에 의해서 기태가 쓰러지는 것은 어셔가의 몰락에서 근친을 한 뒤 생매장 시켰던 여동생 매들라인 어셔가 무덤에서 튀어나와 오빠 로드릭 어셔를 죽이는 장면과 유사하게 보인다. 로드릭 어셔가 작중 계속해서 퇴화(degeneration)의 행태를 보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우 역시 그러한 묘사가 지속적으로 나타나는데 수석에 대한 집착, 쓰러진 후 체구가 작은 고2 여학생인 다혜에 의해서 아이처럼 엎여있는 모습, 그리고 혼수 상태에서 깨어난 뒤 실성한 듯 계속해서 웃는 것이 그것이다. 아버지에게 "저는
이게(공문서 위조) 사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며 부적절한 방식의 일가족 신분 상승의 포문을 열었던 그가, 결국 미쳐가며 이 자본주의적 고딕의 마무리를 짓는 것이다.
"그 날 벌어진 일들은 지금도 실감이 잘 안난다.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미 언데드가 되어 나레이션처럼 깔리는 목소리로만 존재하게 된 기우의 대사를 통해 우리는 이 작품의 환상성-현실과 구분이 안되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르겠는 특징-을 확인 할 수가 있다. 아무리 CCTV가 문광에 의해서 잘려 있었다고는 해도 기택이 범죄를 저지르고는 무사히 지하실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그것을 모스부호를 통해 알아차린 뒤 아버지에게 돈을 벌어서 그 집을 사겠다는 자신의 새로운 목표를 밝히는 기우의 대사 전부 다 현실이라고 믿기도 그렇다고 이야기가 구체적이여서 아예 거짓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게 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고딕 문학의 환상성을 통해서 작가는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 것일까. 이제는 노력으로 극복하기 어렵다고 칭해지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빈부격차, 그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사람들의 불안감 자체를 담아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자본주의 체계에서 사라진 과거의 공간에서 자발적으로 들어가 죽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말이다.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