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수프리모
회사 매출이 5이라면 2가 줄었다.
5에서 1이 고정비로 들어가기에 사실상 수입은 반토막 났다. 이런 상황을 공동 창업자인 와이프와 공유를 하고 우리는 긴축 작전에 들어갔다.
이른바 작전명 수프리모다.
코로나의 창궐과 확산의 오랜 기간에도 매출은 괜찮았다. 오히려 증가했다. 하지만 이제 나의 업에도 불황이 미치기 시작한 것 같다. 바꿔서 생각하면 정말 감사하게도 경기불황의 여파가 나에게는 좀 늦게 찾아와 주었다.
작년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끼긴 했다.
상황을 간단히 요약하면, 조금씩 신규 계약이 뜸해졌고 기존의 고객들과의 거래가 정상 종료 되어가는 것이 겹쳤다. 새로 나는 머리카락은 줄고, 기존의 머리카락은 탈락되는 그런 탈모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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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장의 물고기 개체수는 점점 줄어드는데 예전 같은 풍어를 기대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또 1인기업이지만 관료화(?)되고 배에 기름이 끼어 변화에 둔감해진 건 아닌지 반성도 한다.
이런 고독한 시기에 보스턴 컨설팅 그룹이나 맥킨지 앤 컴퍼니의 글로벌 기업 컨설팅을 받고 싶지만 ㅋㅋ 비용을 생각하면 망상에 가깝다. 음, 보스턴, 맥킨지는 무슨ㅋㅋ 보리밥이나 맥도널드 먹으면서 이런저런 아이디어 회의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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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트랙을 더 열심히 달려야 하는 건 아닌지, "누가 나의 치즈를 옮겼는가"에서 처럼 새로운 치즈를 찾아 나설 때가 된 건 아닌지 여러 생각이 든다.
그래서 생각이 선명해지도록 컨디션을 더 좋게 유지하려고 관리 중이다. 그래야 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20년 가까이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개인사업자였을 때도 매출 감소와 미래가 보이지 않아 좀 답답하던 시절에 우리는 일단 모든 부채를 청산했다. 할부가 걸려있던 수입차를 처분했고, 나는 걷거나 버스를 타고 다녔다.
애초부터 신용카드는 없었다.
아니 결혼하고 신용카드를 전부 없앴다. 5만 원 혜택 받으려 100만 원을 쓰는 것보다 애초에 100만 원을 안 쓰는 것이 95만 원 더 이익이기 때문이다.
대출은 중도상환수수료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미친 듯이 갚아 제로를 만들었고, 우리는 그야말로 생활비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으로 전환한 건 사업이 잘돼서 전환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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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잘될 때를 대비하라'는 나의 모토에 맞게 움직인 것이다. 와이프와 합심하여 지출을 최소화하여 생활 수준을 매우 가볍고 간소하게 만들어 놓고 법인전환을 시작했다. 어려울 때였지만 잘될 때를 대비한 큰 그릇에는 더 많은 돈이 담겼다.
돌이켜보면 참 잘한 선택이며 실천이었다.
몸이든 마음이든 하는 일이든 가볍게 유지하는 건 꽤 괜찮은 방법이다. 가뜩이나 삶이라는 복잡계 속에서는 주먹과 발차기 점프 3개로 조작하는 단순한 게임이 나처럼 생각이 많은 인간에겐 더 편하다.
지금도 뭐 수입은 줄었지만 먹고 산다.
잠잘 곳도 있고, 여전히 부채도 없다. 차도 애초에 일시불로 사서 내야 할 할부도 없다. 아 회사 신용카드도 없다. 대신 돈 저수지를 만들어서 수위를 관리하며 쓴다. 매달 우리 회사보다 더 돈 잘 버는 글로벌 기업에 투자도 해왔다. 그게 참 안정감을 준다.(난 돈만 생기면 어떻게든 타이밍 재지 않고 즉시 산다.)
어쨌든 돌아와 작전명 수프리모를 시작했다.
별거 없다. 다시 생활수준을 점검하고 낮추는 거다. 원두커피 말고 알커피에 만족하며 사는 거다. 비싼 동파육 사 먹지 말고 냉장고 구석에 얼어있는 고기들 꺼내 한데 모아 볶아먹는 거다. (이른바 냉파육이다.)
상황이 바뀌었다면, 한시라도 빨리 과거의 소비습관을 버려야 한다. 급브레이크는 불편하지만 사고를 높은 확률로 예방한다. 속도를 줄여야 한다면 짧고 굵게 미리 해두는 게 상책이다.
다시 매출이 회복을 할지, 아니면 이게 뉴 노멀이 될지는 모르겠다. 뭐가 어쨌든 이번을 계기로 다시 소비습관을 다듬고 정돈해서 간단한 주먹, 발차기, 점프로 우거진 숲 속을 헤쳐나간다.
와이프 손 꼭 잡고, 아들도 함께
더 잘 될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
오늘 점심도 5000원짜리 콩나물 밥이다.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