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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만보 Apr 14. 2023

영웅

형만한 아우없다

 "내가 앞치마 만개 팔아서라도 너 먹여 살릴게" 세상에서 하나뿐인 영웅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한껏 쪼그라들었던 내게 건넸던 말이다. 2020년 5월에서 8월까지 재밌는 예능을 보다가도 갑자기 눈물을 왈칵 쏟아내던 동생에게 그녀는 부모님보다 더 편하게 기댈 수 있는 안식처였다. A를 지시받고 A를 해가면 B는 왜 안 해왔냐,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는 독설로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팀원을 코너로 몰아세우던 팀장 덕에 정신적인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씹다 버린 껌처럼 자존감이 바닥에 착 달라붙어 방안에만 처박혀 있던 스물아홉의 어른 아이에게 생각지도 못한 영웅이 나타났다. 언니였다. 3살 터울의 언니와는 어렸을 때 사이가 좋았던 기억이 거의 없다. 내가 태어나서 얼마 안됐을 때쯤 엄마에게 나를 갔다 버리라고 했으니 언니의 무의식 속에 동생이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였는지 알만하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 유년시절 속의 언니는 언니라기보다는 미운 친구에 가깝다. 자매가 나눠 가져야 할 물건이 있으면 항상 자신이 먼저 골라야 직성이 풀렸던 언니였고 지하철 타는 법을 모르는 동생을 나 몰라라하고 혼자만 할머니댁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던 것도 언니였다. 어린 나에게 불안감을 증폭시키던 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는 언니였다. 팀장이 가슴을 후벼파는 소리를 할 때마다 언니를 찾던 동생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준 영웅. 부정적인 말을 끊임없이 하는 동생이 싫었을 법도 한데 언니는 나약한 소리를 듣기 싫다는 내색조차 안 했다. 직장을 관두고 눈물만 흘리던 동생을 동대문, 카페 등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직장에만 답이 있는 건 아니라고 끊임없이 응원해 주던 사람은 부모님도 아닌 언니였다. 그 덕에 나는 다시 용기 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언니가 아니였으면 지금처럼 밝은 내 모습은 어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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