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일까 선택일까
연인 사이에 쓰이는 운명이라는 단어를 믿지 않게 됐다. 언젠가부터 운명이란 단어에 사랑을 빗대어 말하면, 관계에 대한 주체성을 잃는 기분이 들었다. 철없이 상대방의 장점 하나만 보고 연애를 결심했던 이십 대 초반과는 다르게 이제는 '내 연인은 이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라는 기준을 갖고 옆자리를 내어줄 사람을 선택하는 안목이 생겼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술과 담배는 안 하고 커피와 대화를 좋아하는 이성을 찾아달라고 소개팅 주선을 요청했을 때, 그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이 찾아왔다면 그것은 하늘이 정해준 운명이라기보다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서 찾은 인연이라는 생각을 한다.
사랑을 시작하게 되면 내가 가진 모든 여유 시간, 돈, 에너지를 나눠줘도 아깝지 않은 나날이 거침없이 흘러간다. 단 한 번이라도 진정한 사랑과 이별을 해본 사람이라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나와 잘 맞는 사람을 찾는데 고군분투할 것이다. 상대방과 견고한 관계를 쌓기 위해 쏟은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아픔을 겪은 사람이라면 다시는 그 아픔을 겪고 싶지 않아서 다음 만남에 신중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삼십 대의 사랑은 운명보다는 선택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고 싶다. 모든 것을 내주기 위해 까탈스럽게 고른 사랑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