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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 물 주는 윗집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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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디언

[Episode 8] 꽃에 물 주는 윗집여자



제목만 보고 낭만적이라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참으로 죄송한 일이다.

이것은 우리의 평화는 끝났다는 이야기며, 층간 소음의 또 다른 레벨의 전쟁의 시작이었다.


어느 날부터 윗집의 또각거리던 하이힐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끝내 윗집에 살던 여자의 얼굴은 모른 채 그녀는 이사를 갔다.


그리고 새로운 세입자를 맞이하기 위해 레노베이션을 한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두들기고 자르고 부수는 소리로 어찌나 시끄럽던지, 나는 도서관으로, 카페로 피신을 가야 했다.


그렇게 새로운 이웃으로 이사 온 윗집은 동유럽인 루마니아에서 이민 온 아빠, 엄마 그리고 십 대 딸, 아들 이렇게 네 식구로 우리가 이사 온 그다음 해 여름에 이사를 왔다.


이사하던 날 만난 그 집 여자는 키도 크고 호리호리한 몸매에 긴 금발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을 것 같은 바비인형을 연상케 했다.

그녀가 웃으면서 인사를 건넬 때에는 상큼한 향기까지 날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했다.


관계가 좋은 것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날 저녁부터 우리 가족은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늦은 밤마다 ‘드르륵드르륵’ 윗집 여자 가구를 옮긴다.

뭐 그리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은 건지… 주기적으로 가구를 옮기고,

왜 하필이면 밤 12시가 되면 시작되는지... 전생에 신데렐라였나?


십 대인 아들은 집안에서 농구를 한다. 매일 오후 학교에서 돌아온 그는 집안에서 3점 슛 놀이를 하느라 소파에서 뛰어내리기를 여러 번, 혼자서 드리블을 하며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우리 집은 지진이라도 난 듯이 흔들렸고..

그 집 딸은 매번 새벽 2시쯤에 샤워를 하는데 그 물소리가 폭포 물줄기가 떨어지는 소리와 같다.

이건 과장이 아니다.

우리 라인의 물탱크가 우리 집에 있기 때문에 이웃들의 물을 트는 소리, 잠그는 소리에 잠을 깨곤 하는데, 새벽 2시만 되면 어김없이 쑤~~~ 아~~~ 악 물 트는 소리가 난다.

어느 한 날, 그날도 물 트는 소리에 잠을 깨어서 다시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 물소리의 데시벨을 측정했다. 50 데시벨이 나왔다.

며칠 후, 우연히 세탁실에서 만난 그 집 여자에게 새벽에 누가 샤워를 하냐고 물었더니 그 집 딸이란다. 내가 그 시간에 샤워소리에 잠을 깨니 밤 12시 전에는 샤워를 마쳐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그녀는 딸아이의 루틴(Routine)이라 자기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내참!


동유럽에서 와서일까? 그녀의 베란다에는 봄부터 이른 가을까지 화려한 빛깔의 꽃들로 장식이 되어있다.

나도 그녀의 아름다운 꽃들을 사랑한다.

문제는 윗집 베란다에서 꽃 화분에 물을 주면 우리 집 베란다로 물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여러 번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참았다.

한 번은 남편과 함께 베란다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데 윗집에서 떨어지는 물이 찻잔 속으로 들어가 화들짝 놀랐다.

익스큐즈미!

물 주는 것은 좋지만, 밑으로 물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 달라고 했더니, 그녀도 의례적으로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잠시 후 단지 한 방울 떨어졌는데 호들갑이냐며 궁시렁거리며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여름 한낮에 창문을 열고 있으면, 카펫 먼지를 턴다고 베란다에서 카펫을 두드려 털고 있다.

그 먼지들이 어디로 갈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은 학교를 가지 않고, 어른들은 재택근무를 하니 우리는 천정에 구멍이 날 것 만 같다는 생각을 한다.( 윗집탓인지, 건물이 오래된탓인지 원인은 모르겠으나 실제로 천정에 금이 가서 큰 공사를 한 번 했다. )


또 팬데믹 동안에는 정신건강(Mental Health) 어쩌고 해서 애완견 입양이 유행을 했으니,

이 집, 내가 젤로 싫어하는 독일 쉐퍼드 개를 입양했다고 내게 자랑을 한다.

개랑 놀아준다고 190cm나 되는 거구의 그 집 남자들 저 끝에서 이끝까지 개랑 뛰어다니고, 공놀이를 한다. 그 공들은 실수로 우리 집 베란다에 차곡차곡 쌓이고 밤에 몰래 내려와서 주인 허락도 없이 가져가는지 어느 날은 공들이 다 없어졌다.

일이 이쯤 되니 나의 인내도 한계에 다 달았다.


관리인을 찾아가 사정이야기를 했다. 관리인도 골치가 아프단다.

그 집 남자

아파트에서 금지구역으로 되어있는 곳을 함부로 들어간다던지, 아파트 중간 문을 열어놓기 위해 벽에 걸려있는 소화기를 떼어서 문받이로 사용한다던지, 아파트의 안전을 위해 닫아 놓았던 복도의 안전문들을 열어놓고는 닫지도 않고…

관리인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되려 나에게 그 집에 찾아가서 직접 이야기를 하라며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모두가 이렇게 안하무인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그냥 우리가 UNFORTUNATE 할 뿐이다.


각 아파트마다 적어도 이웃들을 서로서로 배려하는 불문율이 있다.


밤 10시 이후에는 조용한 시간(Quiet time)이라고 해서 되도록 소리를 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베란다는 공용 구역이라 생각해서 카펫을 털거나, 빨래를 널어놓거나 하지 않고,
꽃에 물을 줄 때는 아랫집에 피해가 가지 않게 적당량의 물과 물받이를 화분밑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베란다 청소는 비 오는 날에 하는 것 등 나름대로 공동주택에서 함께 살아가는 규칙이 있다.


이민자가 많은 나라이다 보니 생활습관이나, 방식, 문화, 사람들과의 관계 방식이 다 제 각각이긴 하지만, 그래도 함께 모여사는 곳이니 서로 간의 배려가 있으면 좋을 듯하다.


아직도 내 머리 위로는 저먼 쉐퍼드(German Shepherd) 와 그 집 남자들이 고삐 풀린 채 뛰어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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