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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디언 May 12. 2024

세 분의 어머니

Jongsoon, Betty, Emily

Mother’s Day  어머니의 날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하는 북미 대륙에서는 매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지낸다. 이것은 국제 어머니의 날( International Mother's Day)과 같은 날이며. 2024년에는 5월 12일이다.

한국은 어버이의 날이 있어 아버지와 어머니 곧 부모님의 은혜를 한 날에 축하하는 반면, 서양에서는 아버지의 날과 어머니의 날을 구분해서 지낸다.



어머니 날 (Mother’s Day)의 역사와 기원


마더즈 데이 (Mother’s Day)는 미국인들이 축하는 날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들이 어머니의 날을 축하하기

전에 유럽인들은 사순절 네 번째 일요일을 마더링 선데이(Mothering Sunday) 혹은 심넬( Simnel) 선데이로어머니들에게 존경을 표하는 날이었다.

중세시대에는 노동자, 수습생, 하인들- 주로 가정부로 일하러 갔던 딸들-이 사순절 넷째 주 일요일 그들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휴가를 받았다.

가족이 함께 모여 그날에는 자녀들이 집안의 모든 일을 맡아서 하고, 저녁에는 어머니를 위한 특별한 식사를 준비한다.  


16세기 영국에서는 맏아들이나 장녀가 마더링 케이크(Mothering Cake) 혹은 심넬 케이크를 가져와 가족 모두와 함께 나누어 먹곤 했다. 심넬 케이크는 건포도 케이크이며, 안에는 두 층의 아몬드 페이스트가 들어있다. 케이크 위에는 11개의 마르지판 아이싱 공을 올려 유다를 제외한  11명의 제자를 상징했다고 한다.


Anna Jarvis : Britannica


지금의 마더즈데이(Mother’s Day)는 1907년 5월 12일 미국  필라델피아 거주자인 안나 자비스는(Anna Jarvis) 자신의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웨스트 버지니아(West Verginia) 주의 그래프턴(Grafton)에 있는 어머니의 교회에서 추모식을 열었다. 어머니의 날은 그녀의 어머니에게 감사를 표하는 날로 선언되었지만, 실제로는 사회 변화와 평화를 위한 어머니들을 존중하는 날로 기념되고 있다. 그녀는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것을 한 날로 정하기 원했다. 이것은 비록 미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인접한 캐나다에도 이 아이디어가 전달되었다. 


세 분의 어머니


나에게는 세 명의 어머니가 계시다.


첫 번째 어머니는 당연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친정어머니이시다.

누구나가 다 그러겠지만, 자신의 어머니는 다 특별하시다. 나의 어머니도 그렇다.

나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특별하시고, 사랑스러우신 분이다.  고생도 많이 하시고..

늘 다정하시던 어머니는 지금 연세가 많으셔서 바깥 활동을 잘 못 하시지만, 아직도 꿋꿋이 집안 살림을 하시며 매 끼니 손수 식사를 챙겨 드신다.

딸 셋이 있는데 전화 목소리를 귀신같이 알아채신다.

아직도 귀가 어두워지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 총기가 흐려지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 우리를 알아보시는 것도 감사하다.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은 우리 친정어머니의 사랑. 그 사랑을 먹고 지금의 내가 되었다. 


두 번째 어머니는 내가  캐나다에 와서 처음 만난 분이다.

둘째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항상 아이 픽업하러 학교에 갈 때마다 만난 베티(Betty)인데 알고 보니 같은 반에 소이어(Sawyer)라는 아이의 외할머니셨다. 그리고  소이어(Sawyer)는 우리 큰 아이의 담임 선생님의

아들이었다

. 우리는 이런 아이들과의 연계성으로 급속히 친해졌고, 가끔씩 내가 둘째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못 갈 때에는 베티( Bett) y가 두 명의 아이를 픽업해서 돌봐주셨다.

할머니는 캐나다 사람임에도 불고하고 나의 친정어머니와 많이 닮으셨다.

작은 키와 인상 좋은 눈매와 수줍음 타는 말씨와 자식들을 향한 무한한 사랑과 무엇보다도 

마디마디 굵어진 거친 손이 닮았다.

베티 할머니는 딸이 5명이나 있다. 그래서인지 나를 딸처럼 돌봐 주셨다. 명절 때마다 우리 가족들을 불러서 함께 식사도 하고, 선물도 해 주셨다. 

어느 사냥철 큰 아들이  사슴을 사냥했다고 사슴고기를 가지고 집에 왔다. 베티 할머니는 우리 가족을 불러 사슴고기를 아주 맛있게 해 주셨다. 우리는 그것이 그냥 스테이크인 줄 알고 먹었는데 , 할머니는 식사 내내 알 수 없는 미소를 계속 짓고 있었다. 우리가 속은 줄 알고 재미있으셨던 모양이다. 식사가 끝난 후 아들 제프(Jeff)가 자기가 사냥한 사슴고기라고 말해주어서  아이들과 나는 깜짝 놀랐는데 남편이 한 마디 했다.

 “오! 디어” (Oh! Dear. – Deer:사슴) 그 소리에 우리는 한 바탕 웃음을 웃었다. 

우리가 몬트리올로 이사를 와서도 명절 때마다 전화와 카드를 보내주시고, 크리스마스 때는 아이들이 좋아했던 크리스마스 쿠키를 직접 구워 보내 주셨다. 

우리가 헤어질 때 베티는 내게 ‘우리가 언제 볼지 모르니 잘 내라. 다시 만나자. 여기서 못 보면 천국에서 보자!’라며 나를 안아 주셨다.  그분의 온기와 향기가 지금도 느껴진다. 

이제는 이 땅에서는 다시 못 뵐 분이라 천국에서 꼭 뵙기를..


크리스마스 쿠키

세 번째 어머니는 나의 캐나다 어머니인 에밀리 패스트( Emily Fast)이시다.  에밀리는 나의 인생과 신앙의 멘토이시다.

우리가 기숙사를 나와 아이들 학교 근처로 이사를 하던 날, 이삿짐을 옮기느라 정신이 없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앞 문으로 나갔는데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가 장난을 치나 하고 문을 닫고 들어오는데  또 초인종 소리가 났다.

썬룸( Sun Roo) 밖 뒷문에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Mrs. Doubtfire ) 같은 실루엣이 보였다. 

문을 여니 영화나 외국 드라마에서 나온 듯한 할머니 한 분이 서 계셨다. 

희긋희긋한 짧은 머리에 구르프 (헤어롤) 감고, 몸빼 바지 비슷한 옷차림에 양손에는 누드 냉동닭 두 마리를 손에 들고는 나를 보자마자 “웰컴 투 니버빌(Welcome to Niverville)’이라고 하시며 자신은 우리 담장과 연결된 뒷집에 사신다고 하면서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오라고 하셨다. 물론 양손에 들고 오신 뽀얀 살을 드러낸 누두냉동 닭을 선물로 주시고는 곧 장 사라지셨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재미있다. 그녀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쨍쨍 울리는 것 같다.

자녀가 6명이신 에밀리는 남편과 다복하게 사시는 분이었고, 남편 되시는 미스터 패스트(Mr. Fast)는  니버빌(Niverville)에서 성공한 사업가이셨다.



우린 그분들의 7번째 자녀로 입양되었으며, 우리의 아이들은 수요일마다 그랜마 런치(Grand Ma’s Lunch 할머니의 점심식사)에 다른 손주들과 함께 식탁에 초대되었다.

에밀리의 정원은 정말 넓어서 우리 아이들을 포함해 몇몇의 손주들이 학교 가는 지름길로도 사용되었다. 이 정원을 지날 수 있는 것은 동네 아이들의 부러운 특권이었다.

왜냐하면 이 정원길에 들어서면, 지하실 부엌에 있는 아주 큰 3개의 냉동고에서 아이스크림을 비롯해 음료수와 간식을 내가 선택해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도 학교가 끝나면 곧장 에밀리의 정원을 통해 집으로 왔다.

매년 어머니의 날이 되면  자녀들은 그 정원을 가득 채울 꽃을 근처 화원에 부탁해 놓으면 에밀리와 나는 그곳에 가서 차로 꽃을 사 왔고 함께 정원을 가꾸었다. 집안을 함께 청소하고 물을 주고..

그래서 5월이 되면 자꾸 꽃시장에 가고 싶다.


이 글을 쓰는 내내 옛 추억으로 눈시울이 촉촉해진다.

이 세 분의 어머니가 모두 그리운 날이다.

어머니의 날! 

나도 내 자녀의 어머니이면서도, 이 세 분의 딸이다.  

나의 나됨을 있게 하신 나의 어머니들께 감사한다. 

위대한 세상 모든 어머니들께  Happy Mother’s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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