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룬, 지콜라, 허스키 세 사람이 주고받는 메시지
우리는 엄청난 디지털 환경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손가락 터치 한 번에 내 말이 상대방에게 곧바로 도착하는 놀라운 세상에서요. 원한다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누군가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할 수도 있는 편리한 세상에서요. 이런 점에서 우리는 현재 ‘빛의 속도’를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빛의 속도에서 멀어져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으로 돌아가면 답답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빛의 속도를 누리는 요즘 사람들이 정말 속 시원한 삶을 살고 있느냐 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요.
매일 메신저로 누군가와 부단히 소통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속이 후련해지지 않는 기분, 저만 느끼는 걸까요? 지독한 집순이인 저조차도 가끔은 누군가를 만나 떠들고 싶은 욕구가 샘솟을 때가 있습니다. 역시 직접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는 또 다른 느낌을 줍니다. 이 책을 함께 쓴 우리 세 사람, 사실 같은 마음이었나 봐요. 매주 원격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사이지만 가끔은 시간을 내 직접 만나려고 노력하니까요. 서로의 일정을 맞추다 보면 한참 나중에야 만날 수 있는 일이 다반사이지만요. ‘광속의 시대’임에도 약속 잡기가 쉽지 않은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그리고 헤어질 때면 짠 듯이 “시간이 너무 빨리 가요.”라며 아쉬움 섞인 작별 인사를 나눕니다. 근황을 나누고 이야기가 무르익을 즈음이 헤어져야 할 시간. 각자의 ‘현생’이 기다리는 만큼 진득한 이야기를 나눌 만큼의 충분한 여유는 없다는 아쉬움.
분명 도시에 촘촘히 깔린 매끈한 도로로 이동하고 빛의 속도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세상이지만, 왜 이리 하루하루가 바쁘고 시간은 없는지. 당장 눈앞의 일에 밀리고 치이다 보면 나의 마음을 곱씹을 시간, 곱씹은 이 마음을 누군가와 나눌 시간은 멀게만 느껴집니다. 이런 헛헛한 감정이 제 마음에 안개처럼 부유하고 있는 가운데, 함께 글을 쓰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기뻤습니다. 매일같이 누군가와 활자를 주고받지만 정작 꺼낼 기회는 없었던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손가락으로 이야기들을 조잘댈 생각에 신도 났고요.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글이라서 꺼낼 수 있는 주제들이 있구나.”
참 희한하네요. 메시지 속에 담기에는 너무 긴 이야기. 쓱 읽고 지나치기에는 용량이 큰 이야기. 얼굴을 마주 보고서는 어쩐지 쑥스러워 도통 입 밖에 나오지 않을 이야기. 모니터를 앞에 두고는 술술 나옵니다. 혼잣말하는 것처럼 자유로운 기분이에요.
이렇게 혼잣말인 듯, 아닌 듯 편안하게 나의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까요. 평소에 엄두 내지 못한 말들을 이렇게 주고받을 수 있어 기쁘네요. 각자의 이야기는 서로에게 빛의 속도로 도착하겠지요. 도착한 메시지를 찬찬히 읽고, 곰곰이 씹어보며 떠오른 생각들을 나눕니다. 서로를 위해 '읽씹'할 시간들에 벌써부터 설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