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이룬 Oct 29. 2022

정신, 그거 꼭 차려야 하나요?

허스키의 답장

어떤 마음으로 40대를 준비하냐고요? 던져진 물음에 대답하기 앞서서 나이에 관한 제 생각을 가볍게 주절거려 볼게요.




얼마 전 제 SNS에 이런 댓글이 달렸습니다.

“야, 너 내일모레면 마흔이야. 정신 차려.”


20대에 곧 서른이니 정신 차리라는 말을 들었다면 모욕적이라 ‘뜨악’했을 것 같아요. 댓글 단 친구를 미워했을지도 모르고요. 그때는 나이 드는 것이 끔찍하게 싫었거든요.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습니다.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이며 누구에게나 똑같은 속도로 흘러가는데 불가사의하게도 어느 연령대가 되면 시간이 미친 듯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고들 하지요. 즐거워서 시간이 쏜살같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공포 때문에 현재가 순식간인 것처럼 느끼는 사람들도 있어요. 아무튼 사람마다 그 나이는 다르겠으나 저는 스물아홉이었던 것 같아요. 앞자리가 바뀌면 세상이 바뀔 것만 같았어요. 부정적인 방향으로 말이죠. 그러니 서른이 되기 전에 뭔가 이뤄 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굉장히 초조했습니다. 마치 젊음이라는 다이너마이트 심지에 불이 붙어서 터지는 것을 덜덜 떨며 기다리는 심정이었어요.


그런데 말이죠, 공포의 서른 살을 맞이했는데 딱히 변한 것은 없었어요. 아 아니다. 이상한 습관이 하나 생겼었는데 ‘이 나이에 무슨’, ‘N살만 어렸어도’ 같은 말을 내뱉으며 자신을 옥죄었지요. 그 외에 달라진 점은 딱히 없었어요. 나이를 더 먹어도 삶은 비슷했어요. 뭐지? 혼란스러웠지요. 저의 상상의 폭탄은 여전히 터지지 않았고요.

특별한 계기는 없지만 이렇게 한 해 한 해 지나다 보니 나이 듦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었고 이제는 심지에 불붙은 다이너마이트로 신나게 쥐불놀이도 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습니다. 댓글 달 여유도 생겼고요.


“야, 너 내일모레면 마흔이야. 정신 차려.”

⤷“뭐래ㅋㅋ”


40대를 위한 특별한 준비는 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근거 없는 낙관주의자는 아닙니다, 아니고요. 스물아홉에 이미 겪었듯 나이를 의식하느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지 모르겠네요. 어쨌거나 위기는 여러 방면에서 찾아오겠지요? 피할 수 없다면 위기 속에서도 유머를 던질 수 있는 강하고 유연한 마음을 가진 마흔이 되고 싶어요. 그런 여유의 근본을 단련하는 일이 30대인 제가 할 수 있는 일인 거 같아요. 여성 빈곤이나 중년 여성 고립, 결핍 같은 불편한 이슈가 기사화된 것을 피하지 않고 읽어 보는 일, 또래 친구들과 친목을 다지는 일, 안 맞는 사람들과 무리해서 어울리지 않는 일,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일도 그중 하나이고요. 하지만 정신은 언제 차릴지 모르겠습니다. (웃음)

이전 02화 인생은 40대부터라는 말, 진짜예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