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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 May 30. 2022

벼랑 끝에 걸쳐진 마음으로

결국 나는 나를 죽이지 못했다.

사람을 알아간다는 건 참 놀라워요. 그 사람은 어떤 우주를 달고 오는 것 같아요.


나는 그 드라마 대사가 좋았다. 저 사람과 나의 우주가 합쳐져 새로운 우주가 만들어지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내가 사람을 알아가길 주저했던 이유 역시 거기에 있었다. 나는 우주를 받아들이기를 기쁜 마음으로 마주했으나, 이내 겁에 질렸다. 받아들인다는 건 곧 그 우주를 아주 작은 티끌만큼 접어 마음 구석에 구겨 넣을 힘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런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두려웠다. 나의 우주가 곧 너의 우주가 될까 봐. 나의 우주를 잃고, 너의 우주가 사라진 후 나는 미지의 공간에 웅크리고 살게 될까 봐.


지난날의 나는 아주 용감하게 말했다. 까짓    해보지 . 그때의 나는 용감했다. 달리 말하면 나는 최대한으로 웅크린 상태였다는 것이다.  이상 물러설 곳이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우주를 만났다. 아주 광활하고 가늠할  없이 깊었다. 두려웠다. 나의 비어있는 속내가 들킬까 . 그랬기 때문일까. 결국 나의 부족함만 절실히 깨닫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예상보다 내가 더욱 최악이었다는 것만 빼면 충분히 예상했던 결과였다.






이주에 한 번 병원에 들르기 위해 버스를 탄다. 버스는 내가 사는 시의 온 동네를 누비고 누비다 나를 병원 앞에 내려준다. 빙 돌아가는 길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문득 슬펐다. 지난날을 자꾸만 떠올리고 있었다. 아주 아주 많은 날들을. 괴로움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 이불속에 파묻히고 싶었다.


우울과 불안의 척도를 다시 검사했다. 선생님은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랗게 표시된 정상범위보다는 한참이나 치솟아있고, 아래쪽엔 빨간불이 들어와 있었다. 저는 언제쯤 저 선 안으로 들어가나요? 저 선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저처럼 매일이 슬프지 않은 건가요? 나는 묻고 싶었다.



정말 많은 의문과 생각이 드는데 생각하고 싶지 않아 무기력하게 누워있어요. 그래도 사람들을 만나면 조금은 괜찮은데. 밤에 혼자 누워 자려고 하면 생각이 너무 많아져요.



나는 나의 일과를 말하며 우울증 환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느꼈다. 스스로가 불편하게 느껴졌으나 의식적으로 내려두었다. 나를 더 악화시킬게 뻔했다.


잠을 잘 자지 못한다는 내 말에 선생님은 수면제를 처방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잠에 들기 어렵고, 깨기 어렵지만 또 일어나서 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말했다. 어쩌면 변명이었다. 수면제를 먹으며 기억이 흐릿해진 기분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았다. 몸이 물렁물렁해져서 흘러내릴 것 같고, 졸음이 쏟아지고, 어제의 일도 잘 까먹는 내가 싫었다. 수면제를 먹고 나면 몇 시가 되었던 몸 상태가 어떻던 삼십 분 이내로 잠에 들 수 있었던 것 하나를 제외하곤 모든 게 싫었다. 눈을 뜨고 생각할수록 슬퍼질 뿐이니 생각을 잠재우기 위해 강압적으로 잠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수면제만은 피하고 싶었다. 결국 선생님은 항우울제의 용량을 늘리는 방안으로 처방해주셨다.


병원에서 나서면서도 머릿속에 가득 찬 지난 시간들을 털어낼 수 없었다. 다들 미래를 내다보며 사는데 나는 과거에 묶여 여전히 그 자리인 것만 같았다. 그래도 뭐, 어쩌겠어. 나는 그렇게 가벼운 척 길을 나섰다. 지금의 상태로는 나의 모든 것을 평가하지 말아야겠다 - 그렇게 다짐했으니까. 그대로 생각이 스스로 흘러가길 기다린다.




얼마 전 서울에 다녀왔다. 평일 연차 덕분인지 꽤 한산했다. 사람의 어깨가 스치는 일이 자연스러웠던 도시인지라 그런 한산함이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맥주를 들고 원효대교 아래에 앉아 우뚝 솟은 남산타워를 한없이 바라봤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과, 머리를 헝클이는 바람과, 지나가는 사람들을 느끼며.


나는 생각했다. 이토록 여유로운 한 낮은 얼마만인가. 따듯한 햇빛과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아무것도 할일없이 앉아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는 시간은 또 얼마만인가. 얼마 전부터 눈독 들이던 이백만 원가량의 가방보다 더 사치라고만 느껴왔던 여유였다. 가지지 못할 것을 알아 더욱 갈망했던.


여유라는 사치를 부려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채 그저 흐르는 강물만을 바라본다. 강바람이 차게 몸을 식혀도 아랑곳 않는다. 이곳이 주는 마음의 평화에 귀 기울인다. 아. 모든 걱정과 불안이 잊히고 비로소 마주하는 평온이 얼마만인가. 나는 이 모든 게 나에게 사치 같다. 나에게는 제 값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 내가 걸치기엔 너무나 값비싸고 어려운 것들. 그저 바람에 몸을 맡기면 되는 것을. 나는 너무 어렵게만 생각했구나.


내가 사랑하는 도시, 서울. 그곳에 몸담고 살지는 못하겠지. 그러니 나는 영원히 낭만을 품고 동경한다. 아름다운 도시, 꿈의 도시, 움츠린 젊음이 피어나는 도시. 그렇게. 그렇게. 여전히 동경할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은 경쾌한 기분이다.


참 좋은 날이었지만, 그날 나는 죽고 싶었다. 슬픔도 평온도 우울함도 불안도 강박도 경쾌함도 이제는 그 무엇도 싫었다. 나아질 수 없다고 느껴졌다. 내가 정상의 범주 안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느껴졌다. 이 한심한 몸과 마음으로 내 평생을 살아야 할 것이란 확신의 두려움이었다. 그런데 나는 나를 죽일 수 없었다. 사실 애초에 죽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다만 이렇게 살기 싫었던 것일 뿐. 나는 그날의 내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또 안도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곳이 정말 바닥이었다. 나는 일 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완전하게 받아들인다. 내가 정녕 병적인 슬픔을 느낀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그 평온과 경쾌함을 마주한 순간을 적는다. 내가 떠올리는 생각들이 나에게 어떤 슬픔을 주었는지, 그래서 나는 어떤 행동을 해왔는지를 적는다. 현재의 나를 잊지 않기 위해. 나아진 내가 현재의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단히 노력했음을 인지하고자. 내게 찾아온 감정들은 아주 작은 것들로도 지워낼 수 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나도 모르는 사이 미소가 지어지기 위해서 대단한 무언가가 필요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약을 챙겨 먹으며 ‘조금은 덜 불안하고, 덜 슬펐으면’ 바랐던 것이 이뤄지길 바라며. 경멸스럽게 느껴지는 나 자신을 다시 쓰다듬어본다.


이렇게 살지 않기 위해서는 벼랑 끝에 걸쳐진 마음을 움직여야만 하니까.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던 사람에서, 떨어질 마음은 사라진 사람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나아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조금은 해방된 기분이었다. 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뒤돌았으니 이제는 삶의 길을 따라 걸을 차례가 왔다.






끝은 곧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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