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함께한 1년
결국은 제자리다. 일 년 전의 나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나는 어쩌면 그 시기의 나보다 더 어둡고 피폐해졌다.
오늘은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창밖을 응시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무더기로 떠오르는 뜻 모를 생각들에 지쳐있었다. 선생님 앞에 앉았을 땐 마음 아래로 쑤셔 넣었던 감정들을 조금 들출 수 있었다.
“여전히 우울해요. 이제는 나아질 수 없을 것 같아요. 이렇게 우울한 감정이 지속되는 제가 너무 답답하고 벗어나고 싶어요.”
불안함은 어떠냐는 말에 나는 우울한 기분이 더 크다고 말했다. 알코올에 의존하는 정도가 심해지고, 그다음 날 떠오르는 취한 상태의 내가 너무도 괴롭다고 말했다. 조절해서 먹고자 몇 번이나 다짐하지만 결국 폭음을 하고야 마는 내가 한심하다고. 선생님은 술을 조절해서 먹는 게 아예 안 먹는 것보다 힘든 것이라고 했다. 머릿속 브레이크를 마비시키는 게 술이에요. 나는 그 말이 무서웠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두 시간을 뒤척여도 잠이 안 와요. 생각이 너무 많고 감정이 슬픔으로 치닫아요. 잠을 못 자거나 아침에 늦잠을 자서 회사에 못 가기도 했어요. 회사에서도 아무 일 하기 싫어서 미루고 미루다 겨우 일처리를 해요. 이런 제가 너무 한심하고 때로는 영원히 이런 상태로 살 것 같아 두려워요.”
선생님은 빠르게 타자를 쳤다. 결국 수면제 처방을 받고, 음주를 조절할 약물은 다음 상담 때 추가하기로 했다. 2주 간격이던 상담을 1주 간격으로 줄인 후 병원을 나왔다.
작년의 나와 같다. 나는 생일 언저리에 언제나 극심한 슬픔을 느꼈고, 이 모든 것은 부질없다 생각했음에도 누군가 나의 생일을 아주 기쁘고 소중하게 생각해주길 바랬다. 나는 여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올해 생일을 맞았다.
영원한 슬픔은 없다. 곧 영원한 행복은 없다. 이 또한 지나간다. 나는 그 말을 목걸이에 세겨들고 다녔다. 마음이 불안할 땐 목걸이를 만지작거리곤 했다. 어차피 지나갈 일이라고. 하지만 난 지나치지 못했다. 물리적으로 벗어났으나 나의 마음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그걸 자각하였을 때 오는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런 나 자신이 한심하고 답답해서 가능하다면 내 안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조금씩 커지고 종류가 많아지는 약을 입에 털어 넣는다. 덜 슬퍼져라라고 주문처럼 외우던 것은 그만두었다. 그저 약을 털어 넣는 장소가 내 방 나의 침대가 아닌 병실 안 병원 침대가 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았다. 곧 그렇게 생각한 내가 너무도 싫어졌다.
자책하지 말 것. 자책하지 말 것. 수십 번도 더 들었던 말인데 여전히 하지 않는 법을 모르겠다. 날 책망하지 않으면 죄 없는 사람들이 죄인이 되니까. 옳은 사고가 안 되는 나는 그저 나를 질타할 뿐이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한명일 테니까.
사실은 몰랐다. 우울증이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병원을 가고자 마음먹었을 땐, 내가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병과 싸우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감기처럼 하루 이틀 약을 먹고 푹 쉬면 금세 떨어져 나갈 줄 알았다. 나는 나의 우울을 너무도 쉽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나아질 수 있다고 말하는 책들마저 들추고 싶지 않다. 무수히 노력했으나 결국 나아지지 못했다고 반기를 들고 싶다. 나는 달려 나가다 멈춰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차라리 이곳이 편안하다며 나를 달랜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은 어떻게 병을 치료해나갈까. 무엇이 나를 이토록 슬프게 하는 걸까. 몸이 늘어져 침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무기력함을 이겨내는 일이 억만장자가 되는 일처럼 어렵다. 이 시간들을 어찌 이겨내고 다시금 괜찮아졌다 말할 수 있게 되었을까. 나는 묻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