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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 아빠 Oct 08. 2022

EP17.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자나 깨나 불조심!

백수의 마지막 자격 취득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다가 2주 만에 복귀를 합니다. 어떤 예고도 없이 연재를 두 번 연속이나 쉬어 버렸습니다.  갑자기 활활 타오른 긴 방황을 겨우 소화하고, 이렇게 염치 불고하고 복귀 신고를 합니다.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은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백수생활을 시작하고 바삐 살며 걱정과 좌절이라는 불씨가 완전히 꺼진 줄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가끔 마음속에 잔불이 나곤 했지만, 머릿속의 화재경보기가 잘 작동하며 잔불이 난 지점에 바로 뛰어가 간단히 발로 비벼 끌 수 있는 정도였기에 후속 조치 없이 쉬이 넘어갔었습니다. 그렇게 대충대충 쌓아두었던 안전 불감증은 결국 사달을 내고 말았습니다.


백수생활 중 계획한 마지막 자격 도전이었던 1급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을 취득한 후,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둔 안전 불감증에 불똥에 살짝 튀어 완전히 큰 불로 번져 버린 것입니다. 화재현상 중 하나의 용어인 '플래시오버'라고 할 정도로 타올랐습니다.

(*플래시오버(flash over): 실내에서 화재가 발생하였을 때 발화로부터 출화를 거쳐 화염이 천장 전면으로 확산되면 화염에서 발생한 복사열에 의해 내장재나 가구 등이 일시에 발화점에 이르러 가연성 가스가 축적되면서 일순간에 폭발적으로 전체가 화염에 휩싸이는 현상을 말한다)


그동안 잘 작동했기에 정기점검도 소홀히 해버려서 고장 난 줄도 모르고 있던 화재 탐지기만 믿고 있었던 저는, 바깥으로 뻗치는 불길을 보고서야, 아 이거 큰 일 났구나, 외치며 급하게 마음의 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신선한 공기가 유입되며 화재의 3요소인 산소를 공급해주는 꼴이 되어 버려 '백드래프트' 현상까지 일으켰습니다.

(*백드래프트(back draft): 소화활동이나 피난을 하기 위하여 화재실의 문을 개방할 때 신선한 공기가 유입되어 실내에 축적되었던 가연성 가스가 단시간에 폭발적으로 연소함으로써 화염이 폭풍을 동반하여 실외로 분출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미 기세 좋게 활활 타오른 불에 제가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소화설비인 분말 소화기, 자동소화장치(주방자동소화장치), 옥내소화전, 스프링클러 등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저는 할 수 없이 들고 있던 소화기를 던져버리고 피난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비상계단의 방화문은 고임목으로 고정되어 있어서 닫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 계단은 연기로 가득 차 버렸습니다. 제연설비는 잘 작동했지만 열려있는 방화문으로 유입되는 숨 막는 매캐한 연기는 설비 용량을 초과하고도 남았습니다.

(*제연설비: 건축물의 기밀화 진행과 고분자 재료의 급속한 보급에 따라 화재 시 화상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사망하는 경우보다는 화재현장에서 발생한 유독성 연기에 의하여 질식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계단실 또는 부속실을 화재가 발생한 장소, 예를 들어 옥내, 보다 공기압을 높여 옥내의 연기가 계단실 및 부속실 안으로 침입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연기에 의한 질식 방지로 피난자의 안전을 도모함과 동시에 소화활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소화활동 설비이다)


할 수 없이 계단으로의 탈출은 포기한 채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뒤돌아 급하게 찾아간 베란다에 설치된 완강기 주위에는, 물건을 한가득 쌓아놓아 그것들을 치우는데만 한참이 걸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완강기의 사용법도 잘 몰라 허둥지둥 대며 나는 이제 죽은 목숨이구나 푸념하며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요? 마침 소방차와 사다리차가 도착했고, 사다리차에서 뛰어내린 아내와 아이들이 사다리를 타고 와서 퍼질러져 있는 저를 구조해 줬습니다. 또한 소방차에서 급하게 내린 여러 명의 친구들이 송수구에 소방차 호수를 연결하고 펌프를 힘차게 돌려 제 마음속 살수 설비에 많은 양의 물을 퍼올렸습니다. 살수 헤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은 화마가 하얀 연기를 내며 비명을 지르게 했고, 주위에서 불구경하던 사람들의 환호성이 증명하듯 불길이 빠르게 잡혀갔습니다. 뼈대도 남기지 않고 다 타버릴 것만 같았던 그 큰 불은 소방관들의 노력 덕분에 구조물 곳곳에 검댕만 남긴 채 소화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목숨 걸고 진화해준 소방관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많이 마신 연기 탓에 연신 기침을 해가며 화재현장에 앉아 화마가 훑고 지나간 그 시간들을 찬찬히 뜯어보았습니다. 화재의 원인이 무엇인지, 초기에 화하지 못하고 왜 그렇게 큰 불로 번지게 만들었던 것인지,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인지 따져봤습니다.


우선 시간을 거슬러 마음에 불이 나기 몇 주 전으로 올라가 봤습니다.  시무룩하게 책상에 앉아 있는 저는 이제 곧 끝나가는 백수생활에 대한 아쉬움과 더 이상 미룰 수 없이 시작해야 할 취업전선으로의 출정에 불안해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단단한 마음가짐을 갖자던 처음 그 다짐은 곧 감나무에서 떨어질 것 같은 홍시처럼 손대면 툭 터져버릴 것 같이 물러져버려 있습니다.


브런치에 올린 어설픈 의 글들은 과연 읽힐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심하며, 브런치에 발 들여놓은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공모전에 응모했었던 저의 첫 소설을 '태백산맥'이라는 거장 조정래 선생님의 작품을 필사하다가 다시 읽어보니, 브런치에 한번 내 소설을 공유해보자는 생각은 미친 짓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저질스러운 습작을 방바닥에 개구리 패대기치듯 던져 버리고 있습니다. 버킷리스트까지 세세히 만들어가며 근 1년이라는 시간을 뭐하면서 보냈는지, 기껏 자격증이나 몇 개 깔짝대며 정신승리하고 있었다고 자책하며 굉장한 자괴감에 빠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가연성 물질들을 차곡차곡 쌓아놓으며 위험을 방관하고 있었고, 무기력에 빠져 아무것도 하기 싫었지만 어쨌든간 계획한 일이니 1급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이나 취득하자며 일주일 짜리 교육에 안일한 생각으로 들어갔습니다. 교육 종료 때 시험을 본다니 그냥 강습료나 내면 수업이나 받고 대충 시험 보고 쉽게 자격을 취득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왠 걸, 첫날 수업 중에 강사님이 말씀하시길 시험 합격률이 10%대 일 때도 있다며, 교육받는 이 일주일은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서 늦게까지 꼭 복습을 하고 모든 포커스를 여기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첫 수업 시작 전부터 풀려있던 저의 동태 눈깔은 말똥말똥해졌고, 수업내용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지저분하게 메모하고, 빨간색으로 밑줄 긋고, 스크린에 쏘아 올린 PPT를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대며 씹어먹을 기세로 달려들었습니다.


그런 전력투구가 통했는지 다행스럽게도 마지막 날 시험을 치르고 난 뒤 초초하게 머리를 쥐어짜 내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저는 호명되는 합격자 명단에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이번 차수의 합격률이 40%를 웃돌며 강사님의 엄포가 공갈포였다는 것을 쓴웃음으로 넘겼지만, 수업시간 뒤에 앉았던 아저씨가 자신은 낙방했다고 나이 어린 저에게 굽신하며 시험자료를 좀 넘길 수 없냐는 멋쩍은 미소에,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프린트한 거의 책 한 권 분량의 기출문제를 만개한 웃음으로 아무 조건 없이 넘겼던 건 그 강사님 덕분이었다고 내심 고맙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 밝게 빛나던 환희가 화재의 3요소 중에 하나인 점화 에너지가 되어 마음속에 쌓여있던 가연성 물질에 불을 지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시험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토요일 발행해야 할 글의 글쓰기를 토요일 오전으로 미뤄 놨는데, 글의 중심을 잡아 줄 소재거리도 없거니와 쓸 기운도 나지가 않았습니다. 스스로 귓방맹이를 후려치며 정신 차리자고 자판 위에 손가락을 올렸지만 시험 전력투구로 인해 하얗게 된 머릿속 뇌는 글자를 생산해야 할 손가락에 신호조차 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개를 푹 숙인 주제에 독자님들에게 이번 연재는 한 번 쉬겠다는 구차한 변명도 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한 번 깨져버린 약속은 걱정과 좌절이 가득한 가연성 물질에 확 달라붙으며 강한 화염과 검은 연기를 내는 큰 불이 되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하던 운동은, 내일 하지 모레 하지 이번 주만 쉬고 하지, 너무나도 쉽게 미뤄 버렸습니다. 그나마 끄적이고 있던 두 번째 소설은, 너 따위가 무슨 남 이야기를 쓰고 있냐 니 처신이나 잘해라 아주 진짜 소설을 쓰고 자빠졌네, 그대로 덮어 버렸습니다. 좁은 인간관계에서 그나마 의사소통하고 있던 브런치 작가님들의 공간에서는, 니가 그들과 어울릴 수준이 되냐?, 도망쳤고 핸드폰에 뜨는 브런치 알람도 꺼버렸습니다. 미약하게나마 취업 관련 동향을 파악하고 있던 워크넷 접속은, 이번 겨울부터는 무조건 일을 할 건데 뭐한다고 설레발이냐? 그냥 쉬어라, 뚝 끊겨 버렸습니다. 바삐 돌아가던 모든 일상이 모두 멈춰 버렸고 마음속에는 불길만이 일렁였습니다.


자체 소화설비인 글쓰기라는 소화기, 책이라는 옥내소화전, 운동이라는 스프링클러설비로 진화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불이였습니다. 불 끄기를 포기했습니다. 피난구를 찾았고 이불을 덮어 버렸습니다, 핸드폰에 게임을 깔았습니다, 유튜브에 자극적인 영상들만 찾아봤습니다, 밝게 빛나던 눈망울이 썩은 동태 눈깔이 됐습니다. 진화를 포기한 인간은 폐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흥부가 부러진 제비의 다리를 고쳐줬듯이, 그 폐인은 젊었을 때 해수탱크 점검 중 잘못 빨려 들어온 조그만 게를 살려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조그만 게의 보은 때문인지는 몰라도 초라한 행색의 폐인에 어울리지 않게 주위에 금은보화 가득한 박이 많이 있습니다. 바로 그 박들은 마누라라는 소방공무원, 자식이라는 의무소방원들, 벗이라는 의용소방대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목숨 걸고 사랑이라는 물로, 애교라는 소방차로, 격려라는 소화호스로, 불을 꺼줬기 때문에 이렇게 다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구차한 변명을 참 지리멸렬하게도 늘어놨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꺼진 불도 다시 보겠습니다!

자나 깨나 불조심하겠습니다!

정신 차리고 연재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참고로, 소방안전관리자의 법적 업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소방계획서의 작성 및 시행

2. 자위소방대의 구성, 운영, 교육

3. 피난, 방화시설의 유지, 관리

4. 소방훈련 및 교육

5. 화기취급의 감독

6. 소방관련시설의 유지관리

7. 그밖에 소방안전 관련 업무.

위와 같이 법적 의무에 따라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을 가진 자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께 조금의 홍보를 하고자 합니다. 위에 구차한 변명은 읽지 않으시더라도 지금부터는 정독을 부탁드립니다. 


화재가 많이 발생하는 가을입니다. 최근에 대전 현대아웃렛 사고부터 구미 4 공단 화재사건까지 큰 불이 나며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화재의 원인들 중에는 사람들의 부주의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사항을 아래와 같이 몇 자 적어봅니다.


첫째로 불이 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콘센트나 멀티탭 주위에 먼지가 쌓이지 않게 합시다. 한 개의 콘센트에 여러 개의 멀티탭을 연결하지 말고 큰 용량의 전열기구나 전동기 등은 멀티탭을 사용하지 말고 반드시 단독으로 콘센트에 연결합시다. 열이 발생하는 기기나 기구는 불에 타기 쉬운 물질에서(예: 종이, 비닐, 기름) 멀리 떨어져서 사용합시다. 화재 위험물 옆에서 불꽃을 발생시키지 맙시다. 가스레인지에 불 올려놓고 깜빡하지 맙시다. 불이 붙어있는 담배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지 맙시다.


둘째로 불이 나더라도 초기 진화를 해야 합니다.(불이 나면 119 신고는 기본입니다)

소화설비가 없는 곳에 가연성 물질을 쌓아두지 맙시다. 화재탐지기를 불량으로 방치한다거나 가리지 맙시다. 어디를 가더라도 소화기가 어디 있는지 먼저 확인하면 좋겠지만, 우리가 사는 집만이라도 소화기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정상 상태인지도 확인합시다. 천장에 스프링클러 헤드를 막도록 물건을 쌓거나 가구를 비치하지 맙시다. 특히 소방안전관리자 분들은 소화설비의 정기점검을 필히 실시해 주시고 미흡한 부분은 바로 시정해주시고 항상 정상 상태 유지 바랍니다.

가정용 소화기의 불량 압력과 정상 압력입니다. 지금 바로 집에 있는 소화기를 확인해 보세요~


셋째로 초기진화에 실패했으면 빠르게 탈출해야 합니다.

건물이나 아파트 계단실 문을 절대로 고임목을 받쳐 놓거나 자동으로 닫히지 않게 걸쇠로 고정시키지 마세요.(이건 가장 중요한 사항입니다. 화재가 발생해서 계단으로 탈출해야 하는데 한 곳이라도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으면 계단실 전체에 연기가 차서 큰 인명사고가 발생합니다). 비상계단에 물건을 쌓아놓지 맙시다. 어디를 가더라도 비상탈출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이 좋겠지만, 우리가 사는 집만이라도 비상탈출 통로를 한 번씩은 생각해보고 확보해 놓읍시다.(예: 출입문으로 탈출하지 못한다면? 완강기나 비상사다리나 옆집 경량칸막이). 화재 경보음이 울리면 두리번두리번 남 눈치 보지 말고 바로 도망칩시다.(이때, 보이는 곳에 불이 났다면 초기진화 시도)  


요 몇 가지 사항만 지켜주신다면 안타까운 일은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된다면 소방안전관리자 교육 및 자격 취득을 해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이력서에 한 칸 적을 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로운 자격이라고 생각합니다. 금년 12월부터 자격 취득이 더욱 까다로워진다고 하니 생각 있으신 분은 12월 전에 문을 두드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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