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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 아빠 Oct 15. 2022

EP18. 갑자기 찾아온 기회, 그리고 결정 장애

백수의 취업고민

기회는 예상치 못하게 항상 갑자기 찾아온다. 연세 많은 어르신들에 비해서 내가 살아온 인생이 어린아이 투정 부리듯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지만, 그 세월을 뒤돌아보면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수많은 기회들이 분명히 찾아왔었다. 하지만 준비되면 해봐야지, 좀 만 더 있다가 도전해봐야지, 시간 재며 미뤄뒀던 그 바늘구멍보다 작은 과녁에 기회가 날아와 원하는 시간에 꽂힐리는 만무했다.


최악의 상황직면해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혹은 생체리듬 싸인-코사인 곡선의 최절정에 있을 때, 그 야속한 기회가 찾아와 굳게 닫은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그것이 기회라는 것을 눈치채고, 좌절해서 웅크리고 있다가 일어서거나 자화자찬에 빠져있던 흥분된 가슴을 가라앉히며 문을 열어주는 사람은, 그 기회와 마주해 악수하며 성공할 가능성을 몇 배로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직업이 됐든, 금전적인 것이 됐든, 명예로운 것이 됐든, 똑똑똑 노크하는 그것을 기회라고 인식조차 못하던 나는, 항상 뒤돌아 보며 후회를 했던 것 같다.


백수생활을 시작하며 갑자기 찾아올 기회를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계속 준비를 했다. 더욱이 내가 좋아하는 것과 해야 할 것의 교집합이 되어 찾아온다면 목숨을 걸고 잡아낼 것이라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려면 우선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했다. 앞에 쓴 글에서도 논한 적이 있었는데 어쩌면 이 백수생활은 내가 좋아하는 그 무엇을 찾기 위한 여정이기도 했다. 회사생활에 쩌들어 무미건조하게 남이 좋아하는 일,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일,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일만 하다 보니 과연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을까라는 의문의 돛을 펼치고 출항하는, 나에게로 떠나는 항해였던 것이다.


선수가 물에 잠길 정도로 거친 풍파를 겪어내고 잔잔해진 바다에서 안도의 숨을 쉬며 망원경을 꺼내 저 멀리를 내다보니,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를 발견할 수는 있었다. 독서, 특히 소설을 좋아하고 있었고, 글쓰기를 좋아하고 있었고, 영상을 찍고 편집하기를 좋아하고 있었고, 책상에 앉아서 하는 서류 작업보다는 몸을 쓰고 기계를 만지고 운전하고 바삐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처자식 딸린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좋아하기만 해서는 안될 일이다. 좋아하는 일이 밥벌이가 되도록,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할 일의 교집합이 될 수 있도록, 내가 좋아하는 그 일을 누가 비용을 지불해가며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발견한 여러 개의 카드를 펼쳐놓고 냉철하고 냉정하게 곰곰이 따져보기로 했다.


처음으로 소설을 써서 응모전에 출품해봤지만, 물론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낙방이라는 연락조차 없을 정도로 소리 소문 없이 묻혀버렸다. 두 번째로 쓰고 있는 소설은 그 구성 면에서나 필력 면에서나 조금 나아졌으려나 모르겠지만, 그 실력이 하루아침에 향상됐을 리는 만무하고, 언제 집필을 끝낼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그러면 밥벌이로는 힘들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글쓰기는 재껴두고 영상편집으로 눈을 돌려 주판알을 굴려보니, 유튜브라는 플랫폼에 업로드하기에는 그 편집본의 개수도 적거니와 아직 편집 완성도와 메시지가 빈약하다는 결론이다. 그 시시껄렁한 몇 개 안 되는 영상으로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기란 내가 봐도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소리 같았다. 그럼 이것도 아직은(?) 밥벌이가 되지 못한다.


그러면 몸 쓰고, 기계 만지고, 운전하는 것이 가장 유력한 후보라는 것인데, 집 주위를 둘러보니 관련된 업체들이 널리고 널렸다. 새로운 일터를 찾을 때는 반드시 집 가까운 곳이어야 한다는 다짐에도 완벽하게 부합했. 사실 어쩌면 백수생활 초반부터, 낮잡아 말하면 소위 '안전빵'으로 이와 관련된 업무의 자격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게차 운전 자격증, 2급 컴퓨터 활용능력, 자동차 정비 기능사 자격증, 1급 소방안전관리자 자격까지 맞춤형으로 준비해 봤다. 거기에 더해 젊었을 적 기계 관리 현장 경력까지 더해지면 밥벌이는 충분히 되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자격을 취득하고 나서 오랜만에 뛰어들 취업전선에 불안해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기회가 갑자기 찾아왔다. 그것도 거의 하루 걸러 한 씩, 두 개의 기회가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예상치 못하게... 아직 마음에 준비가 안됐는데, 예상치 못하게... 내가 먼저 접근하려고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요는 이렇다. 전자의 기회는 그전부터 꾸준히 관심을 표명하고 있던 식품가공법인에서, 마침 공장 총괄의 공석이 생길 예정이라 그 자릴 차고 나갈 사람을 찾고 있다며 우선 수습부터 같이 해보자며 나에게 손을 내민 것이었다. 후자의 기회는 정밀조각 1인 기업 대표님이 후계자를 양성해서 그에게 모두 물려주고 퇴진하고 노후생활을 즐기고 싶다며 사람을 찾고 있는데, 이번 백수기간 중 알고 지냈던 창업세미나 교수님께서 거기에 나를 소개해 줬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하나의 기회면 비교 견적 없이 감지덕지라고 뛸 듯이 기쁠 텐데, 왜 하필이면 두 개의 기회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건 지 머리가 지끈하다. 두 개의 기회가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잔뜩 묻어있어서 둘 다 가지고 싶지만 꼭 한 가지만 골라야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어느 것을 고를까요? 알아맞혀 보세요, 딩, 동, 댕, 동. 아니야, 아니야, 도, 시, 라, 솔, 파, 미, 래, 도. 아니야 아니야!..."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장에서 하급직원부터 시작할 각오도 있었지만 두 개중 하나의 기회는  각오를 점프를 시켜 바로 총관리자로 임명할 것이라고 하니 귀가 솔깃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비록 전자에 비해 규모가 비교되지 않을 만큼 작은 1인 기업이지만 처자식 먹고 살기에는 충분한 매출이 나오고 있고 거래처도 튼튼하다. 기술을 이전받고 그 전통만 이어간다고 약속한다면 거래처와 설비를 모두 무상으로 넘기겠다고 하니 대형 공장의 관리직에 비교된다며 쉽게 내 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도 결정을 못 내리고 고민을 하고 있다. 그 결정 장애를 극복하고자 감사하게도 찾아온 기회에 감히 백수 주제로 서로의 단점을 파악해 보기도 한다. 전자의 기회가 찾아온 이유는 걸맞은 자격증을 갖춘 이유도 있겠지만, 기계관리 경력과 인사관리 경력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인사관리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영입 제안의 의도를 예상해본다.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이 100명 정도 되니 이해는 된다. 피하고 싶던, 그 감정소비가 심한 인사관리를 가장 큰 단점으로 들어 장점을 깍아내려본다. 후자의 기회는 1인 기업이기 때문에 영업, 생산, 납품, 재무회계관리, 고객관리 등 모든 걸 혼자 꾸려나가야 하며, 특히 거래처가 튼튼하다고는 하나 어쨌든 영업을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인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영업까지 해야 한다는 사실을 단점으로 들고 싶다. 그리고 1인 기업이라고는 하나 그것 또한 사업이니 고정수익이 완전히 보장되지는 않는다.


이렇게 단점으로 헐뜯듯 깍아내려도 평형추는 어느 한 곳으로 기울어지지 않는다. 머리 지끈한 이 결정 장애는 유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떠한 결정을 내리던 열과 성의를 다 할 예정이지만, 무턱대고 동전 던져 앞면이냐 뒷면이냐를 따질 그런 것이 아니기에 이 결정 장애를 신중함이라고 포장하며 결정을 살짝 유보한다.


과연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이제 이 '부엉이 아빠 날갯짓하다' 메거진을 종료할 때가 다가온 것 같습니다. 마지막 챕터의 주제가 정해져 있어서 이 챕터에서 끝내지는 않지만 위에 찾아온 두 개의 기회 중 어떤 것을 골랐을 것이냐의 답은 부엉이 아빠 시리즈 3편 '부엉이 아빠 날다'에서 공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어떤 결정이 되었든 이제 날갯짓은 가파른 벼랑을 뛰어내려 하늘을 날게 할 것입니다. 과연 그것이 상공을 향해 날아오르던, 유유자적 활공하, 아니면 땅바닥을 향해 하염없이 추락하던, 비행은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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