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아, 밥 먹어!”
“잠깐만, 이것 좀 마저 하고요”
“뜨거울 때 먹어야지 빨리 와!”
“금방 가요!, 다 끝났어요!”
윤미는 홀로 한성이를 키우고 있다. 남편 용대는 3년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아직도 그의 죽음이 원망스럽다. 용대는 항상 정의감에 불타는 남자였다.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꼭 바로 잡아야 마음이 편해지는 스타일이었다. 쥐뿔 가진 것도 없으면서 또 무슨 봉사활동을 다닌다고 아등바등했는지…. 결국 그 정의의 사도 정신으로 저세상에 가 있으니, 윤미는 제사상 차리는 것도 그만둬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하늘에서 외로울 양반, 나라도 밥 챙겨줘야지 한 것이 벌써 3년이 흘렀다.
집, 회사, 집 밖에 모르는 용대는 답답한 남편이었다. 칼같이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했다. 살림하는 윤미로서는 거기에 익숙해지며 시간 관리하기가 편하기는 했다. 사고가 난 그날도 평범한 금요일이었다. 회사에서 용대가 야근 조였으므로 집에 도착하면 11시쯤 될 것이었다. 저녁밥은 꼭 집에 와서 먹는 남편을 위해 윤미는 밤 10시에 밥을 안치고, 찌개를 데우고, 생선 한 마리 구우면 딱 맞을 것으로 생각하고 밤늦은 저녁상을 준비할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날은 금요일이라며 한성이도 용대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한성이는 어린애 같은 행동을 하면 아빠에게 혼이 나곤 했지만, 많은 동네 사람들이 아빠를 참 좋으신 분이라고 하기에 가끔 혼나는 건 자기 잘못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용대는 한성이를 혼날 때를 빼고는 아빠로서 항상 자상한 편이었다. 한성이는 아빠가 좋았다.
‘띠리리링’
윤미의 핸드폰에 용대의 전화번호가 찍혔다.
‘아니, 한참 집에 오고 있을 사람이 왜 전화야?’
“여보세요?, 왜 집에 안 오고 전화?”
“어, 여기 사고가 좀 났어. 금방 처리하고 갈게”
“무슨 사고가 나? 지금 어디야, 무슨 일이야 괜찮아?”
“내가 사고가 난 게 아니라 앞 차가 사고가 났어. 좀 도와주고 갈게. 내가 늦어도 먼저 자”
“여보, 밤늦었는데 위험해. 119에 신고해놓고 당신은 빨리 집으로 와”
“알았어, 금방 갈게. 끊는다”
그것이 용대와의 마지막 통화였다.
용대는 퇴근길에 올림픽대로를 달리고 있었는데, 앞에서 막 사고 난 차를 발견했고, 그 차의 수습을 도와주다가 2차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서울시는 장례식장에서 윤미와 한성이에게 용대의 용감한 시민상을 전달하려 했으나, 그 자리에서 그 야속한 상장을 찢어발겨 버렸던 것은 윤미의 허망하고 찢어지는 마음을 대변한 거절이었던 것이다. 윤미는 한탄했다. 그리고 원망했다. 남 도와주자고 이 험난한 세상에 우리 둘만 남겨놨어! 나쁜 자식….
용대가 허망하게 가고 난 후, 윤미는 오랜만에 세상과 맞닥뜨렸다. 남편의 보험금이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먹고살려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일거리는 찾아야 했다. 결혼 전에 나름 이름있는 중소기업 재무팀에서 5년간 근무를 했지만, 경력단절녀로 나이 마흔이 넘은 현실에 막막했다.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젊고 예쁜 구직자들과 경쟁하기에는 비효율적이었다.
우선은 남편 보험금과 퇴직금으로 충당하며 살았지만, 그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창업밖에는 길이 없었고, 남편과 아등바등 모아서 장만했던 아파트를 팔고 남아 있던 담보대출을 갚고 나니, 일 층은 가게고 이 층은 살림집인 상가를 구해 보증금을 겨우 치르고 월세살이에 들어갔다.
다행히 서울시에서 소개해준 창업지원 프로젝트에 참가하여 6개월간 교육을 받고 지식을 쌓는 기회를 얻었고 그쪽에서 여러 가지 지원 프로그램도 연계시켜줘서 큰 초기 자본 없이 무리하지 않고 스마트 스토어를 창업할 수 있었다. 일 층 상가에 상품을 쌓아놓고 인터넷으로 팔기 시작했는데 현재는 판매 제품의 종류가 500개 정도에 이르는 사업으로 보란 듯이 번창시켜서 일 층 상가로는 그 제품을 모두 수용을 못 해서 창고까지 임대해서 운영할 정도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물론 한성이에게 할애하는 시간이 적어진 것은 당연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사업에 한창 정신을 쏟고 있을 때 한성이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것을 알게 됐다. 아빠의 부재 때문에 아이가 철이 빨리 들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한성이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었다. 왜 따돌림을 받았는지 말하지 않는 녀석을 닦달할 수는 없었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 담임선생과 면담해보니, 한성이를 아이들이 ‘집도 없는 거지’라며 따돌리는 것을 선생이 발견했다고 했다. 따돌림을 한 몇몇 주동자들에게 강력한 주의를 시키고 한성이에게 용서를 빌게 해서 마무리 지었다고 무심한 답변을 들었다. 한성이가 다니는 학교 주위에는 고가의 아파트들이 많아 종종 그런 문제로 따돌림이 발생한다며 평범한 일상이라고 담임선생은 위로 아닌 위로를 해줬다. 아이들 세계에서도 그런 금전적인 문제로 약육강식의 행태가 벌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참담한 심정이었지만, 오히려 그게 자극제가 돼서 지금 이 사업을 번창시켰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상가 건물은 곧 매입할 예정인 것이다.
“한성이 너, 나중에 아이들이 놀리면 우리는 아파트에 살지는 않지만, 건물주라고 말하면 돼. 알았지? 엄마가 곧 이 상가 살 거야.”
“피, 엄마는 그런 게 뭐가 중요해. 엄마도 그 애들이랑 다를 바 없네, 뭐….”
윤미의 열정적인 목표가 철이 깊이 든 한성이에 의해 어리석은 다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전의 일이었다.
“한성이, 너 밥 먹으라고 엄마가 몇 번을 말했어! 오랜만에 엄마 쉬는데 열받게 할 거야?”
커갈수록 아빠의 외모를 닮아 가는 한성인데, 이렇게 말을 안 들을 때면 윤미는 한성이가 야속하다.
“알았어! 엄마, 일어날게”
한성이는 하는 수 없이 하던 게임의 저장 버튼을 누르고 창을 내렸다.
“너 요즘 게임에 빠져서 정신없지? 이거 무슨 게임이야? 중독성 게임 아니야? 다시 창 올려봐. 19세 미만 이용 불가 아니야?”
“아휴, 아니야. 엄마, 요즘 내 친구들 다하는 거야. 이거 안 하면 왕따야. 할 수 없이 하는 거야.”
한성이는 들킬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에 더욱 크게 대들었다. 윤미는 한성이가 언급한 왕따라는 말에 소홀해서 몰랐던 얼마 전 따돌림 사건이 생각났고, 그래도 아빠 없는 설움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잘 크고 있는 한성이가 대견하여 더 이상 게임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너 요즘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몇 명이야?”
“음, 네 명쯤 돼요”
윤미는 네 명이라는 말에 잠시 걱정했던 맘을 누그러뜨리고 한성이를 쓰다듬어 줬다. 그리고 한성의 어깨를 살포시 당겨 데리고 나가며 미닫이문을 닫았다.
.
.
.
‘새롭게 설정하시겠습니까?’
스피커에서 홀로 내레이션이 흐른다. 꺼지지 않은 한성이의 컴퓨터는 연신 돌아가고 있다.
한성이의 게임중독은 이미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