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엉이 아빠 Jan 01. 2022

EP3(2부). 사랑고백 to 아내.

(2부)


"맘대로 하라며?! 맘대로 사고, 원래 있던 거는 가져다 버리라며?"

떨리는 마음으로 당당히 맞섰다. 그래놓고 머릿속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할까 회로를 급하게 돌린다.


"그게 진짜로 주문하라고 한 거야? 그렇게 토스트 집에서 최악으로 끝낸 건데?"

여자들 말은 항상 분석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된다고... 안다. 그녀와 대화하기를 벌써 16년 째다. 콩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 있다. 그녀도 내가 반항 중이란 걸 알고 있으면서 반문하는 거다.


"일로 나와봐, 소파에 앉아서 말해"

"기다려 나 지금 옷 정리하고 있잖아. 먼저 가서 앉아 있어, 마저 정리하고 갈게"

당당하다. 이미 승부는 나에게 기울어졌다. 간절한 건 그녀 쪽이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그녀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묻는다. 그녀 앞을 스쳐 소파 끝 멀리 앉는다.


"당신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일방적으로 주문해놓은 거야? 이야기 좀 자세히 해봐. 당신 회사일로 바쁜 동안 관심 없는 당신을 대신해서 내 나름대로 고민해서 집을 꾸몄어. 근데 요즘 당신 생각대로 바꾸는 게 스트레스라고 했잖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저 책상을 주문했는지 자세히 좀 설명해봐"


"생각은 무슨 생각이야. 당신이 주문하라고 했잖아, 그래서 주문한 것뿐이야"

참 못났다. 그녀가 무슨 말을 원하는지 알면서도 원하는 대답을 주지 않고 화만 돋우고 있다.

그녀는 상황을 설명하라는 게 아니다. 진심으로 달래주라고 하는 것이다. 주문한 책상은 이미 배송됐으니 어쩔 수 없지만, 자기의 틀에서 벗어난 저 책상을 인정하도록 달래주라는 말이다.


"요즘 당신 맘대로 눈에 살짝살짝 뛰게 어질르는게 나를 스트레스받게 한다고... 앞으로 당신 10개월 정도 쉰다고 했는데, 그 긴 기간을 어떻게 버틸지 너무너무 스트레스야, 나한테는!"

그녀가 자신의 말을 들어줘라 하소연 한다. 하지만...


'뭐? 고작 그깟일로 스트레스라고? 나는 벼랑 끝에서 겨우 살아 돌아와서 휴식기를 갖는 건데, 그 10개월이 본인에게는 스트레스가 될 거라고?? 옆에서 도와주고 응원해줘도 모자랄 판에?!!'

결국 일렁이던 나의 흙탕물은 소용돌이가 돼 버렸다. 예전 감정이 모자를 때처럼의 분노는 아니지만, 고성이 시작됐다. 2차전이다. 나만의 2차전이다. 고함치는 나를, 그녀는 그냥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한다...

 

"난 싸우려고 말하자고 한 게 아니었어"

나의 높던 데시벨이 힘이 빠지자, 그녀가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승자는 그녀였다. 못난 나는 패배에 불복하기 위해 박차고 일어나 컴퓨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혼자 씩씩 댔다.

한참 , 분을 삭히니 배고픔이 몰려온다. 저녁밥을 차려주지 않은 그녀가 더욱 꼴 보기 싫다. 안돼. 참아야 해. 사춘기 아이처럼, 식음 전패로 나의 감정을 전달시켜야 한다. 참아라. 참아야 한다. 이것마저 지면 안된다...

그 다짐은 오래가지 않았다. 외투를 입고 있었고,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있었다. 편의점에 들러 역시 자극적 맛, 스펨이 얹어져 있는 도시락을 고르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칼로리가 가득한 치즈 버거를 하나 골라 담았다. 그리고 위궤양과 십이지장 궤양으로 그녀가 금주령을 내린 상태지만, 640ml의 소주도 한 패트 담았다.(그 당시 소주 샀다는 것을 글 쓰는 지금도 비밀인 상황이다. 제발 이 글을 아내에게 들키지 않길 바라며..)

허기를 달래러 집으로 재빨리 걸음을 옮기던 중,  "당신이 털어먹은 군것질 간 좀 채워놔"라던 며칠 전 그녀의 말이 생각났다. 지금은 미운 그녀지만 그녀와 이들을 위해 편의점 길 건너에 있는 동네 마트로 방향을 바꾼다. 큰 봉지를 두 개 다 채울 정도로 봉지과자며 박스 과자며 컵라면을 가득 채웠다.

 

도착해서 얼른 도시락과 햄버거를 데울 생각에 거실과 복도 중간에 설치한 보온용 커튼을 열어 젖혔다. 근데 왠 걸? 방으로 들어간 줄 알았던 아내가 볼륨을 낮추고 티비를 보고 있다. 순간 뒤돌아 컴퓨터 방에 소주를 숨겨 놓고 다시 당당하게 거실로 입성했다. 진짜 큰일 날 뻔했다. 더 큰 화를 몰고 올 뻔했다.


달그락, 달그락, 부시럭, 부시럭, 도시락과 햄버거를 전자랜지에 돌리고, 마트에서 사 온 군것질 거리를 아내의 시선 아래에서 간에 정리하고 있지만, 투명인간 취급이다. 관심 없어 보이려는 그녀를 골려주기 위해 냄새야 진동해라 전자레인지를 더 힘껏 돌렸다. 쳐다도 안본다.

'그래? 그럼 나도 뭐~'

모락모락 김나는 컵라면, 도시락, 햄버거를 쟁반에 가지런히 들고 컴퓨터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도햄컵소

군침이 돈다. 따다닥~ 페트병의 뚜껑을 뜯어재꼈다. 어차피 내일은 재택근무다. 출근 준비할 필요 없다. 먹고 죽자. 가즈아~!!!


컴퓨터 방 운동 매트에서 자다 어깨와 목이 결려서 일어났다. 콩자반 한알, 밥풀 몇 개, 치즈의 찌꺼기만 남아있는 햄버거 담았던 접시, 바닥이 비여있는 컵라면 용기, 몇 방울 남지 않은 640ml...  괘슴치레한 시선에 잡히는 광란의 흔적들이다...

시계는 새벽 두 시 반이다. 주섬주섬 잔재 물들을 치우고, 양치를 하고 다시 패딩을 조여 입고, 운동 매트 위에 누워 불편한 자세로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들이 부운 알코올 향과 아직 뜯지 않고 방에 고이 세워놓은 책상택배박스 냄새에 골이 울린다. 하지만 이내 잠들었고 다행히 아이들과 아내가 일어나기 전에 기상했다. 그들이 깨기 전에 얼른 운동복을 차려입고 밖으로 나왔다. 자전거와 하이킹을 두 시간 정도 하면 아내 출근 후 집에 들어갈 수 있다. 우선은 계속 마주치지 말자.(참 사춘기청소년도 아니고...)


박스를 뜯고, 비닐을 벗기고, 볼트를 조이고, 상판을 낑낑거리며 올리고, 다시 볼트로 조이고, 막 도착한 모니터도 설치를 하고, 케이블들을 책상 밑으로 잘 정리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컴퓨터를 연결하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아직 벗지 않은 운동복에서 찐득한 땀냄새가 올라온다.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세상 앞에서 그 냄새가 향긋해 진다. 시계를 보니 벌써 2시 10분이다. 푹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곧 아내가 퇴근할 시간인데... 갑자기 강박증이 몰려온다. 복도에 쌓여있는 박스, 비닐, 스티로폼을 얼른 베란다에 안 보이게 집어던져 놓고, 컴퓨터 방에서 모조리 꺼내 놓았던 의자며 책이며 아령이며 기타 자질 구래 한 것들을 부랴부랴 다시 컴퓨터 방으로 정리했다. 청소기를 들고 한 톨의 스티로폼 가루도 남지 않도록 복도와 거실과 컴퓨터 방을 빨아 댔다.


띠띠띡띠띠~띠리링~ 청소기를 막 정리하는데 아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긴장했지만 스트레스의 긴장이 아니다. 컴퓨터 방의 새로운 시스템으로 강아지처럼 기분이 좋은 상태다. 그리고 그녀 앞에 흔쾌히 무릎을 꿇는다.

 

"정말 미안해, 당신에게 진심으로 양해도 구하지 않고 멋대로 진행했고, 어제는 소리도 질러 재꼈고... 용서해줘... 정말 미안해"

이렇게 무릎을 꿇고 있지만 투명인간 취급할 것이다. 이 정도로는 용서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몇 번이고 사과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됐어, 일어나, 괜찮아"

"어? 바로 용서해준다고?"

"용서할게 뭐 있어. 나도 마찬가지로 잘한 거 없는데 뭐..."

예상외의 반응이다. 이렇게 단박에 용서해주다니... 대인배 내 아내. 누가 봐도 당대 최고의 미녀 내 아내. 육아 전문가 내 아내... 사랑한다.


아내의 손을 잡아 끌어 어린아이처럼 새로운 책상과 모니터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했다. 운동복도 못 갈아 입고 조립하고 설치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느니, 한 번도 못 쉬었느니, 너무너무 맘에 든다느니 재잘거렸다. 그녀도 생각보다 괜찮다며 쓰다듬어 줬고 진심으로 공감해 줬다. 서로의 마음에 재를 쓱쓱 쓸어 버렸고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결국 나이들면 내 옆에 온전히 남을 사람.

*이 세상 오직 내 편인 사람.

*서로 의지하고, 풍파를 같이 이겨 나갈 사람.

*아늑한 집에서 왁자지껄  아이들을 보며 함께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

*'이세상단어로표현할수없는나의전부나의보물' 로 핸드폰에 저장돼 있는 사람.

(음성인식으로 전화 해야 할 상황 시 난감함...)

*인천공항에서 연락처를 받아냈고 학동역 4번 출구에서 보랏빛 향기로 날 기다리고 있던 사람.

*"당신 때문에 1학년 2학기 학점은 내 인생 최악의 학점이었어"라고 말하는 사람.

*내가 너무 잘 먹여 놔서 얼굴이 포동포동했던 처녀 시절이 있던 사람.

*출국 전날 작은 스케치북에 우리의 미래를 정성스럽게 그려와서 나를 울렸던 사람.

*"오빠,미안해 더 이상 못 기다리겠어"수화기 너머 붙잡아 달라며 애원하며 돌려 말했지만, "그 정도도 못 기다려? 됐어 그냥 가버려" 라는 매몰찬 답변을 들었던 사람.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오랜만에 다시 만났을 때, 바짝 붙어 앉았더니 수줍어하며 옆으로 빼던 사람.

*결혼식 때 펑펑 울던 사람.

(덕분에 축가 부르던 나도 울먹여 하객들 웃음바다를 만들었지만...)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재미있는 것을 할 때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아내다. 

지금의 사랑을 그렇게 정의할 수 있다. 그냥 내 곁에 없어도 사랑이고, 있어도 사랑이고... 그냥 당연한 것. 그냥 은은한 것. 이렇게 하찮은 이유로 싸우고 있어도 이건 사랑이 아니라고 느껴지지 않는 것.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꺼내보고 다시 느껴 본다.

예전의 불같은 사랑,

가슴 저린 사랑,

집착하던 사랑,

설레는 사랑.

심장을 살살살 간지럽피는 그 설렘...



오랜만에 둘만의 은어로 당신에게 고백합니다.

.

.

.


"녹차라때 해..."

    



*권태기 안에서 사랑하시고 계신 분들께 추천 드립니다.

 지금 옆에 있는 당연한 사랑이 설레던 시절을 되돌아 보시라고요^^

이전 03화 EP3(1부). 사랑고백 to 아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