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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 아빠 Jan 01. 2022

EP4. 노모의 천만원.

EP4. 노모의 천만 원.

 

달그락, 달그락, 칙칙폭폭, 보글보글, 탁탁탁... 노모가 주방에서 이리저리 바쁘다.

 

배를 왕창 갈아 넣은 갈비찜, 당면과 버섯이 가득 들어간 소불고기, 오징어 동그랑땡 전, 오이무침,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도전적인 음식들이 차려 진다. (각 재료의 맛과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몸에 좋은 것들만 버무려놓은 오묘한 맛을 내는...) 


"어머니 제가 좀 도울게요"

"얘얘,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도와주는 거란다, 거기 앉아 있거라"

70세를 넘긴 노모는 음식을 준비할 때만큼은 젊은 사람 못지않다. 아내는 안절부절 하지만 금세 궁둥이를 땔 거면서 시어머니 말씀에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는다.

 

걱정 한상

같이 사는 , 며느리, 손녀 세명이 주방 뒤 식탁에 왁자지껄, 재잘재잘, 여성들 특유의 수다로 떠들어 댄다. 하지만 음식의 종류들을 보면 그건 아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며느리와 아들 흉을 보지만, 쿨한 시어머니 인 척하지만, 아들보다 며느리와 더 친하지만, 저 음식들을 보고 있자면 아들에 대한 걱정이 가득하다.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고부갈등 없이 가까워(결혼 초반에는 서로 기싸움이 좀 있긴 있었다), 자질 구래 한 일상들을 시시콜콜 주고 받는다. 퇴사 결정 전, 아내가 실의에 빠진 남편을 보며 힘내라며 해준 보양식도 전혀 손이 가지 않을 때 노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건너와서 밥 한 끼 먹고 가거라"

힘들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는데... 분명 아내가 시시콜콜 이야기하지는 않았어도, 그런 나를 숨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모가 알면 많이 걱정할 텐데 그래도 내 이야기를 친한 시어머니에게 공유한 아내가 야속하지는 않다. 회사를 그만 두는 걸 노모에게 어떻게 말할까 고민하던 터였기 때문이다.


"밥 좀 더 줘?, 그릇 이리 줘봐"

이미 고봉밥을 해치우고 불고기를 두 접시 비운 아들에게 노모가 다그친다.

 

"어머니, 오빠 요즘에 몸 관리해야 해요, 위궤양 십이지장 궤양까지 생겼데요. 저 배 좀 보세요 배 좀"

아내가 쪼르르 이른다.

"애비야, 술 좀 적당히 먹고 식단 관리 좀 잘해라. 어깨가 무거운 애 샛 아빠가 그게 뭐니? 너한테 딸린 식구가 몇이니?"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내 앞에는 이미 추가된 고봉밥이 놓인다. 배는 이미 찼지만 엄마가 주는 밥은 언제나 맛있다. 고봉밥 포함 반찬들까지 싹 비워 버린다.

한참을 먹고 났더니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먹고 누우면 소 된다는 아내의 잔소리가 무색하게, 노모는 이미 자신의 침대에 이불을 준비하고 있다. 낮잠을 즐기는 편이 아닌데 이상하게 여기만 오면 잠이 그렇게 온다. 집에서는 낮잠을 한시간 이상 자본적이 없는데 여기서는 꼭 두세 시간을 잔다. 아마 노모가 바라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들이 편히 쉬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일 게다.


엄마와 아빠는 행복한 부부가 아니었다. 벌이가 시원찮은 아빠에 비해 생활력이 강한 엄마와 선비정신으로 무장되어 돈돈돈 거리는 엄마를 못마땅해하던 아빠... 어린 시선으로 보기에도 상극이었고, 왜 서로의 입장에생각하지 못할까 한심해 했다. 커서 결혼하면 행복하게 잘 살 거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하지만 그 다짐들이 강박이 되어 부부싸움 중에 아내가 내 성장과정에 대해 살짝 이야기만 해도 발끈해버리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부모님은 그렇게 티격태격 사시다가 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 이혼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빠가 할아버지를 모신다는 핑계로 따로 살기 시작했다. 열정이 넘치는 대학시절, 그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이쪽저쪽으로 메신저 역할도 했다. 가족여행도 잡았고, 가족사진도 찍어봤지만,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신 분들이기에 더이상 개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기로 했다.

 

최근 한참 스트레스에 빠져 있을 때, 도대체 잘 극복하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번뇌하고 성찰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핑곗거리를 성장과정에서 찾고 있었다. 서로 으르렁 거리는 부모의 영향과, 행복하지 않음을 이겨 내야 했던 아이 때문이라고 단정 지었다. 그리고 원망했다. 아빠를... 엄마를...


미움받을 용기, 저자: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 마인드셋, 저자: 캐롤드웩

각종 핑계거리를 찾아가며 번아웃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 때, 우연히 두 권의 책을 발견하고 큰 도움이 됐다. 두려움은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엄마 아빠가 내게 시련을 준 것도 오히려 더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엄마와 아빠는 나를 계속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회사 퇴직을 결정한 후 재택근무 중일 때, 엄마에게 웬일로 전화해서 아침 겸 점심으로 양평해장국을 먹자고 했다. 엄마는 아들과 양평해장국 먹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나도 양평해장국을 좋아한다.

엄마와 아들의 양평해장국

식사를 끝내고 모셔다 드리고 가려는 데 올라와서 커피랑 과일을 먹고 가라 하신다.

새로 분양받은 강아지를 쓰다듬어 준다.

"꼬리 떨어진다 시키야"

사람을 엄청 따르는 살가운 녀석이다. 예전에 키우던 개 두 마리가 아파서 죽고 너무 슬퍼 다시는 안 키운다고 하셨지만, 결국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분양받았다고 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와 아삭한 사과를 베어 먹고 나서려는데, 뭘 뒤적거리신다. 그리고 봉투를 건네신다.


"엄마가 주는 거니까 받아. 회사 그만두고 쉴 동안에 이것저것 필요할 때 써"

"아휴 엄마도 참, 쉴 동안에 충분히 먹고 살아요. 내가 더 드려야 하는데 뭘 이런 걸 주셔. 알겠어요 안 받으면 그것도 예의가 아니니 받을 께요"

빳빳한 느낌이 돈은 아닌 것 같다. 상품권을 얼마 넣으신 건가 하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살짝 꺼내보았는데 수표다. 10만 원짜리 10 넣으셨나 보네, 노인네가 왜 이렇게 무리하셨어하고 주머니에 다시 넣는데... 가만있어보자... 0의 갯수와 쉼표의 위치가 이상하다. 다시 꺼내서 잘 세어 봤다. 100만 원짜리 10장이다. 그대로 다시 돌아가 초인종을 눌렀다.


"엄마 이게 머야? 나 못 받아. 아니 이런 큰 돈은 또 어디서 났어요?"

"아까 군소리 말고 받으라고 했잖니? 엄마 종신 보험 하나 깼어. 죽으면 받을 거에 반밖에 안되지만 그래도 살아 있을 때 주고 싶어서 그랬으니 받거라"

그대로 다시 돌아 설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빠도 독거노인이 됐다. 내가 결혼할 때쯤부터 부정맥으로 건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내 뱃속에 셋째가 생길 때까지 골골했다. 무뚝뚝한 아빠였지만 찾아갈 때는 두 손녀들의 군것질 거리는 꼭 사놓고 기다렸다. 이리와봐 한번 안아보자며 힘없는 팔로 손녀들을 겨우 들어 올리던 아빠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아빠의 죽음은 고독사였다. 금요일 오전에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이상하다 하고 오후에 다시 했는데 역시 받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전화를 했지만, 부재중전화가 있으면 꼭 다시 전화 왔었는데 느낌이 너무 좋지 않았다. 팀장님께 말하고 부랴 부랴 할아버지 댁으로 (이미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차를 몰았다. 아닐꺼야 아닐꺼야 애원했다. 현관문을 급히 열었다.

컴컴한 방...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사망 추정시간은 반나절 전 쯤이었다. 하루만 더 빨리 전화해 볼껄... 불효자는 장례식 내내 울었다. 그리고 유품들을 정리하며 다시 한번 주져 앉아 펑펑 울었다. 아빠의 통장에 내가 몇 년간 매달 보내드린 용돈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따로 쓸 돈이 많던 분도 아녔는데... 아파트 관리비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관리비 고지서 분석하고 차곡차곡 쌓아 놓던 분이었는데... 산아래 좋아하는 김치말이 국수도 참고 있다가 내가 가야지나 아들 사준다고 드시는 분이었는데...

왜왜왜!!! 이걸 남겨 놨어!!!... 원망했다. 가슴 치며 울었다. 자식에게 남겨 주고 싶었던 것 같다. 남겨 줄게 많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

.


엄마의 천만 원도 아마 그런 것일 거다.

.

.


엄마도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따님, 아드님께 부탁드립니다.

지금 전화 한 통 넣으세요... 부모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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