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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 아빠 Jan 01. 2022

EP3(1부). 사랑고백 to 아내

 (1부)


아직도 화가 식지 않는다. 고성을 섞어가며 아내에게 있는 그대로 감정을 표출했다. 조금의 가감도 없이... 예전 같으면 같이 맞받아 쳤을 그녀인데 요즘은 그냥 지켜만 본다. 더더욱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다. 요 근래 각종 자기 계발서며 심리 관련 책을 읽어대며 이제는 감정조절에 대해 어느 정도 통달했다고 자신 만만하던 그 사람은 온데간데 없다.

 

싸움의 이유는 많은 부부들이 비슷할 것이다. 하찮은 일로 티격태격하다 걷잡을 수 없이 불 붙어 버린다. 모든 것을 태운 후에 서로에게 잿더미만 남긴 체 후회한다. 그리고 다시 재를 쓸어버리고 터를 닦고 주춧돌을 괴고 기둥을 세운다. 이제는 다시 태우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하며... 


지금 싸움의 이유도 너무 하찮다. 


결혼 때 장만한 컴퓨터 방 책상은 키보드와 책을 같이 놓고 무언가를 하기 위해선 그 폭이 60cm로 좁고 답답했다. 그로 인해 컴퓨터 방은 무언가를 집중하는 곳이 아닌 목적지 중간에 쉬어가는 주막과 같은 곳이었다. 코로나가 터지며 재택근무가 활성화됐고, 그 적응하기 힘든 곳에서 일주일에 많게는 세 번, 적게는 두 번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 머리를 쥐어뜯고 앉아 있었다. 정이 가는 곳이 아니었다. 때문에 저놈의 책상을 바꿔야지 바꿔야지 벼르고 있었다.


퇴사 후 휴식기를 갖게 되면 어쨌든 정이 가지 않는 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 몇몇 바꿀 것들의 목록을 적어놓고 있었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려고 인터넷 쇼핑몰을 뒤적거리는 날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우현히 쇼핑몰 라이브 방송을 보며 감히 아내의 허락 없이 컴퓨터 모니터 하나를 질러 버렸다.

"여보 나 사고 쳤어" 

카톡으로 통보했다. 퇴사 결정에 큰 도움을 준 그녀였기에 그런 건 흔쾌히 눈감아 줬다. 신나는 마음에 새 모니터에 어울릴 책상도 뒤적뒤적 장바구니에 담았다.


문제는 그 책상에서 발생됐다. 누가 봐도 당대 최고 미녀인 아내는(^^;) 사실주의 화가형인 나와 반대로 낭만주의다. 물건의 활용가치 따위보다는 색채와 형태의 감성적인 어우러짐을 중요시 한다. 사용자 위주의 배치보다는 미적 감각을 방해하지 않도록 꺼내 쓰고 다시 집어넣는 불편함이 있더라도 밖으로 나오면 안된다. 따라서 실용에 최적화된 나의 컬렉션은 그녀의 인상을 찌푸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나도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토스트집에서 아내와 데이트 중에 1차전이 시작되는데...


그녀는 골라놓은 책상을 극렬히 반대했고 나도 어르고 달래기보다는 투쟁정신으로 맞받아 쳤다. 서로의 감정이 끓어오를 수록 누가 봐도 당대 최고 미녀는(^^;) 나만의 시선에서 표독스러운 미녀로 변해가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획하니 혼자 나가 버렸다. 주위 사람들 시선에 무안해 하며 얼른 먹던 것을 퇴식대에 정리해놓고 따라나섰다. 하지만 사그라들지 않는 화남에 멀어져 가는 그녀를 잡지 않았다. 그리고 반항하듯 장바구니 구매 버튼을 일방적으로 클릭했다.    


서로의 감정을 정리하지 않은 체 세녀석이 시끌시끌 한 저녁식사를 맞이 했고, 그녀와는 시간이 해결할 것이라는 무언의 약속을 하며 필요한 말만 주고받았다. 하지만 내가 또 2차전의 빌미를 제공했다. 

식사를 마치고 이리저리 들고 다니기 편한 새로 산 충전형 스탠드를(이것도 아내와 상의하지 않고 구매한 것을 글을 쓰다 보니 인지한다) 거실로 가지고 왔고 소파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스탠드... 그건 좀 오바 아닌가요?"

그녀는 별 뜻 없이 담 조를 던졌다.


"내가 하는 거에 토 달지 마라"

잔잔하게 가라앉았던 흙탕물이 일렁였고, 아이들 보는 앞에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녀는 아무 대답 없이 주방을 정리했고 아이들과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아... 또 무슨 짓을 한 것인가?... 후회가 밀려왔다. 상대방 가치관을 인정하자는 다짐을 또 잊었는가?...

'아니야, 잘했어 요즘 사사건건 트집이야.'

'진짜 속좁게 왜 이래? 아내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이잖아.'

'그 아무 생각 없다는 게 문젠 거야, 상대방 감정을 생각하지 않는 거잖아.'

'어떻게 일일이 상대방 기분 생각해가며 말하냐, 말이 안 되잖아...'

내 안에 다른 둘이 티격태격이다.


혹시나 하여 책상 배송조회를 한다. 큰일이다, 예상외로 빠르게 물품이 준비돼 이미 상차가 진행됐다. 아직 아내와 화해가 안된 상탠데...이대로 도착 한다면 일방적 결정에 아내가 극히 노여워 할 것인데...

아내는 자고 있고, 아침에 나도 출근해야 하고 배송 완료 전까지 화해 할 시간이 없다... 출근해서 카톡으로 화해 요청 하기에는 너무 속보이고... 아...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퇴사일이 다가오니 요즘 칼퇴는 기본이고 10분 20분 일찍 퇴근하는 일탈도 가끔 저지르고 있다. 5시 반 퇴근이지만 5시 15분 부랴부랴 힘차게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자 7시 전에만 집에 도착하자! 7시경 배송된다고 뜬다'

'화해는 못했지만 배송이라도 내가 받자. 그게 지금 최선의 방법이닷!!!'

1시간 40분 걸리는 퇴근길이지만 각 환승역 최단거리 플랫폼 번호를 훤히 알고 있다. 10년 동안 다져진 동선은 자신있다. 빠른 걸음만 한다면 1시간 30분대 주파가 가능하다.

 

!!배송 완료!! 

마지막 환승 전 열차칸에서 야속한 알람이 떴다. 새로운 물건을 받는 것은 항상 즐겁다. 빨리 받고 싶어서 기다려 진다. 하지만 오늘은 빠른 배송에 좌절이다... 


엘리베이터는 잔인하게 패잔병을 집 앞에 떨궈 준다. 문 앞을 어지럽히고 있는 커다란 택배 박스 몇 개를 지나 현관으로 터벅터벅 들어섰다. 아이들은 식사를 끝내고 놀고 있다. 그렇터라도 평소 같았으면 따로 오색빛깔로 차려 주는 밥은 투명인간 따위에게 차려 주지 않는다. 역시 사람 취급 못 받는다. 집 보일러는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싸늘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보여줄 것이다, 나의 투쟁정신을... 

'먼저 말 걸지 않을 거야. 당신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번 해봐. 흥칫뿡~'


"얘들아 양치하자"

아내가 아이들을 재우기 전 준비가 한창이다. 

육아전문가의 취침 점호가 끝나고 아이들은 소등을 실시한다.


"당신 나랑 얘기 좀 해"

컴퓨터방에서 옷 정리하는 척하며 마주치는 걸 피해있는 나에게 그녀가 먼저 접근한다. 

'됐다 성공이다' 

우쭐하며 대답을 준비한다.


"왜~? 뭔 이야기가 하고 싶은데?"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기껏 아내가 먼저 말 걸었다고 저러는 거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나 지금 싸우자는 거 아니다. 밖에 택배들 뭐야? 진짜 주문한 거야?"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물어뜯긴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침착해야 한다. 긴장하지마라. 2차 전이 시작된 것이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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