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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우 Dec 17. 2021

아이의 손에는 다 있다.

  제일 좋은 거야 아이들 잘 때 나도 같이 자는 거지만 밤 10시가 되어도 아직 다 못한 일이 몇 개 남았다. 써야지 하고 마음 먹은 일기가 하나고 일기를 쓸 때 마셔야지 하고 다짐한 얼마 전에 1+1으로 산 와인 한 잔이 다른 하나이다.


  아무래도 초등학생이 이 수면시간을 유지하는 건 문제가 있다. 나는 오늘 너희들을 특히 둘째 너를 늦어도 10시에는 자리에 눕히고 말 것이다. 계획은 착착 진행되었다. 늘 엄마와 함께 자고 싶어를 노래하는 아이들을 달랬다가 얼렀다가 어머니는 바쁘시다 하며 자못 엄한 듯 돌려보냈다가 했는데 오늘은 1분이라도 빨리 재우는 게 목적이므로 두 아이 사이에 파고들어 길게 몸을 누여보았다.


  엄마가 곁에 있으니 온갖 할 말이 생각나는 듯 밤이 깊은 듯 수다도 하염이 없어 들어주다가 쉿. 대답해 주다가 쉿. 이제 정말 쉿!! 하니 두 아이 잠자코 뒤척이며 말을 안 하려 애는 쓴다. 내 왼편에 누운 큰 아이와는 머리를 기울여 맞대고 오른편에 엎어져 있는 작은 아이의 손을 찾아 가만 잡았다. 가만 만졌다.


  세번째 손가락이 시작되는 부분에 굳은살이 작게 만져진다. 9세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힐 일이 뭐가 있겠는가. 사실 있다. 요즘에야 뜸해졌지만 한동안 철봉과 한 몸이 되어 오래 버티기도 했다가 깡충 뛰어도 닿지 않는 높은 철봉은 기둥을 타고 올라간다고 원숭이마냥 매달리기도 하냥이었다. 그 때 생긴 굳은 살이 오히려 지금은 조금 부드러워진 듯도 하다.


  손톱 양옆으로 까슬하게 까시래기가 일어난 것도 느껴진다. 까시래기는 손거스러미의 방언이라니 안 쓸 이유가 없어 까시래기라고 쓰겠다. 까시래기는 지금 내 손에도 난리이다. 거슬려서 잡아 뜯다 잘못 되면 깊숙하게 껍질이 벗겨져 며칠 고생하는 건 마흔이 넘은 나도 아홉 살인 아이도 매한가지다.


  눈으로 볼 수 없어 다만 만져볼 뿐이나 매일 보고 잡는 손 어떻게 생겼는지 어둠 속에서도 눈에 선하다. 역시 만져지진 않으나 아이의 손톱엔 씻는다고 씻었느나 꼬질하게 때도 끼어 있을 것이다. 매니큐어를 못 바르게 하니 아쉬운대로 사인펜이나 네임펜으로 손톱을 알록달록하게 칠해서 한 소리를 듣곤 하는데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어떤지는 내일 자고 나서 봐야 알 수 있겠다. 아이의 작은 손에도 다 있다. 알면서도 볼 때 마다 신기해서 자꾸 만져본다. 이 작은 손으로 다 한다. 같이 길을 걸을 때 손을 더듬어 내 손을 맞잡을 때 제일 기분 좋은 이 작은 손. (202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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