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는 컨디션이 별로 안 좋다. 쉽게 말해서 잠이 온다. 아침부터 부랴부랴 움직여야 하는 직업이 아니고 이 직업을 유지한 지도 오래 되어서, 쉽게 말해서 일찍 잘 필요가 없어 일찍 안 잔다. 그렇다고 오전에 충분히 휴식을 취하는 것도 아니어서 오후에는 뭔가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잠이 온다. 푹 잘 수도 없다.
이 말을 하는 이유가 있다. 오늘 오후에 우리집 큰 어린이가 나한테 조잘조잘 말을 했다. 학교 생활 이야기였다. 오늘 무슨 시간에 뭘 했다. 뭘 가져오기로 했는데 깜박했다. 학교 선생님 중에는 무슨 선생님이 제일 좋고 무슨 선생님은 자꾸 다른 반과 비교하는 말을 해서 별로 좋지 않다 등등의 이야기 말이다. 나는 운전중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컨디션이 썩, 정확히는 졸려서 대꾸를 잘 해주지 못했다. 안 한 건 아니고 으응. 그래. 그랬구나 정도였다.
엄마는 이 이야기에 관심이 없구나.
엄마는 이 이야기도 재미가 없구나.
한 가지 이야기가 끝나고 내 무성의한 대답을 들은 후 아이가 내뱉은 말이다. 나는 뜨끔. 뜨끔했다. 아이고 그랬쪄요오오오? 그랬어요오오오? 라고 해 주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도 미안했다. 이걸 이렇게 미안해 하기까지 해야 하나 라는 생각도 혼자 했는데 그래도 미안했다. 아이의 머리칼을 매만지며 볼을 쭈압 잡아당기며 애써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였더니 아이는 예의 그 찡그리며 웃는 얼굴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아마 알겠지? 엄마가 좋지만 엄마는 화를 낼 때가 있다는 걸. 이럴 때는 좋지만 이럴 때는 무섭고. 어쩔 때는 나를 사랑해 주는 걸 알겠지만 어쩔 때는 모르겠다는 걸. 엄마는 나에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걸 느끼기도 하겠지? 책을 읽어주거나 내 말을 들어주거나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해 줄 때는 많지만 숙제 했니 정리 해라 책상 치워라 잘 준비 하라는 말은 상냥하게도 하지 않으면서 매일 한다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피곤할 때는 다정하기가 힘들고 아이들에게 화를 많이 낸 날에는 멋쩍어서 먼저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탁구공 만큼의 애정만 핑퐁핑퐁 주고 받은 후 자기 할 일을 했으면 할 때가 있는데 탁구공을 던졌는데 투포환이 날아와 그게 행복인 줄도 모르고 아이고 그만 좀 해라 라고 할 때가 있다. 또 투포환이 날아오겠지 그럼 그 투포환도 거뜬히 받아줄 수 있을 만큼 컨디션을 만들어야지 하고 있다 보면 어느새 저들끼리 휘 나가서 놀고 그러면 혼자 섭섭해진다. 한마디로 곤란한 타입이다.
나는 혼자 백팔번뇌를 하지만 아이들은 늘 나를 사랑해준다. 내일은 정말이지 하루에 세 번씩은 꼭 안아줘야 겠다. 아니다.. 생각해보니 세 번 넘게 안아주는 것 같은데? 그러면 내일은 정말이지 뽀뽀를 다섯 번은 해야겠다. 아니다. 하루에 시간 나눠 다섯 번을 못해줘도 같이 있을 때는 계속 하는데? 그러면 사랑한다는 말을 일부러 세 번은 넘게 해야겠다. 그래. 이건 해야 겠다. 요즘 안 한지 좀 됐다. (2021.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