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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우 Sep 30. 2022

아이들의 지금만 바라보기

  내 아이들이 아기였을 때, 유아였을 때가 한 번씩 그립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그 때의 아이들도 내 새끼임에 틀림없으나 다른 존재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게 뭔 소리지? 도대체 내 기분을 말로 설명하는 건 언제쯤 유려해지는 거지?


  거꾸로 이렇게 말해보면 이해가 쉽다. 누가 뭐래도 나는 초딩이에여! 를 외치고 있는, 도대체 휴일에 가만 내버려두면 낮 12시까지도 쿨쿨 자고 있을, 하여 이 시각에 당연히 한밤중마냥 자고 있는 내 아이들을 방문 열고 가서 봐도 되지만 안 봐도 비디오 이므로 이렇게 자리에 앉아 떠올려 본다.


  나를 좋아해 준다. 식성이 좋아서 밥을 잘 먹는다. 책 읽어주면 눈이 빛나며 글자며 그림을 바쁘게 오간다. 둘이 사이좋게 잘 지낸다. 학교에서 교우관계도 원만한 것 같고 수업도 그럭저럭 따라가는 것 같다(같다인 이유는 아이들에게 들은 바로 추측할 뿐이어서이다). 밖에서 뛰어오는 걸 좋아한다. 잘 웃는다.


  하지만 꼬리표마냥 따라붙는 내 걱정이 있다. 골고루 먹었으면 좋겠는데 편식하는 음식이 하나 둘 생긴다. 먹고 자고 뛰어놀고 부족함이 없는 듯 한데도 키는 작은 편이다. 앞니가 저렇게 자라다니.. 교정을 해 주면 된다지만 마음이 아프다. 왜 저렇게 이기적인 모습이 많이 보이지? 학교에서도 저러나 저러고 다니면 친구가 좋다고 할까? 왜 저렇게 짜증이 많지? 원래 저런 성격인가? 몇 번이나 같은 유형의 문제를 푸는데 틀리는 건 계속 틀리고 자꾸 문제도 끝까지 안 읽지? 앞으로 어쩌려고..


  이런 것이다. 아기 때는 그저 건강히 자라다오 어머나 뒤집었네 언제 잡고 선 거야 여보 우리 아이가 걸었어! 그리고 유아 때는 어린이집 가서 손유희 하나 배워와 뒤뚱거리며 손짓하면 그거에 감탄했다. 주는 음식은 가리는 것 없이 아기새마냥 입 벌려 받아먹으니 그저 예쁘고, 활짝 웃을 때 보이는 가지런한 유치들은 진주알 같았다. 누굴 닮아서 이렇지? 라는 생각보다는 아이가 하루마다 자라는 모습에 그저 기특해하고 즐거워만 했던 것 같다. 육아가 쉬웠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오늘 주제와 육아의 고단함은 별개이므로 눈물과 땀으로 얼룩진 연년생 육아는 굳이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다(그러면서 자꾸 늘어놓는다)


  아기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지금 내 아이들을 바라보면 매사 화 낼 일이 있을까. 하지만 너희는 아기가 아니지. 하지만 어른도 아닌데 어른 대하듯 기준을 높게 세우고 매섭게 몰아칠 때가 있다. 그러면서 돌아서서는 왜 자꾸 저러지 누굴 닮아 그러지 앞으로 어쩌려고 그러지 하며 나만 티를 내지 않으면 아이들은 알아채지도 못할 걱정의 징검다리를 아이들 앞에 하나 둘 셋 넷 놓고 있다. 내 눈빛에 내 말에 내 손짓에 그 징검다리는 아이들이 눈치 못 채게 사라질 수도 있을 거고 당장 한 발도 디딜 수 없을 거대한 장벽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면 제발 아이들 대할 때 쓰잘데기 없이 앞선 걱정으로 혼내거나 잔소리를 늘어놓지 말자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조 배우님의 목소리가 음성 지원되는 노래 <지금 이 순간> 제목처럼 다만 지금 이 순간에만 충실하자는 소리다. (202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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