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읽은 책에서 첫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없으나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은 수행을 통해 피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책을 한 번만 읽은 탓인지 수행을 안 한 탓인지 그 책에서 사람은 원래 이래 저렇게 타고났어 라는 말은 틀렸다고 했는데 나는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말은 노력이 부족해 보다는 어쩔 수 없어 이다.
작은아이가 푼 문제집을 채점하려고 맨 뒤 답지를 보는데 오늘 채점해야 할 페이지에 연필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 안 좋은 예감에 답지 보고 썼니? 하니까 전부 다 본 건 아니라고 한다. 물어보는 내 어투에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목소리가 작아지긴 하는데 아이 표정을 보니 나는 거대한 벽 앞에 가로막힌 기분이었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정확히 모르는 얼굴이다. 남편하고도 줄곧 이야기했던 부분이었다. 혼이 날 때 얼굴을 보면 평소 자주 지적 받는 내용이라던가 본인이 생각해도 잘못했다 싶은 거면 자세도 공손해지고 잔뜩 주눅 든 표정에 목소리도 기어들어간다. 그게 아니면 엄마아빠가 화를 내니까 자기가 잘못 하긴 한 것 같은데 가슴에 와닿지는 않은 모양인 표정이 있다. 이해를 못하는 거다. 모르는 건 알려주면 된다지만 한 두 번도 아니고 놀이터, 미디어 금지 등의 제약을 걸어도 아쉬워할 뿐 크게 불편해 하지는 않는다. 내가 아쉽다. 애가 달라지는 게 없어서.
앞으로는 답지를 보지 말라고 훈계하고 끝냈어야 했나? 나는 모르겠다. 어려워서 보고 적었단다. 백 점 맞으라는 게 아니고 실수로, 혹은 시간에 쫓겨 급하게 푸느라 왕창 틀리는 것에 대해 꾸중하는 거라고 타이른 게 바로 오늘 낮이다. 배신감이 몰려온다. 의심이 피어오른다. 추궁하니 오늘이 처음도 아니란다. 엄마를 속여먹어야지 가 목적이 아니라는 걸 안다. 본인이 하는 짓이 잘못인지도 모르는 천진함이 기가 막힌다. 도저히 혼을 내도 안 먹히겠다 싶은 상황이다.
내가 길길이 날뛰며 어디서 사람을 속이냐 내가 이러면 너를 믿을 수가 있겠냐 하며 소리를 지르니 겁을 집어먹고 결국 내 입에서 나가란 소리가 나오니 울고 난리가 난다. 난 집요하게 물어본다. 넌 지금 니가 왜 이렇게 혼나는지 모르지? 나가라니까 겁나서 이러지?
아이가 답지를 보고 적었다는 사실 하나에 내가 느낀 배신감, 처음이 아니고 앞으로도 이럴 것이라는 의심, 온갖 방법을 다 써도 해결이 안된다는 절망, 이 모든 시도가 헛된 것인가 하는 자괴감, 결국 해결도 안되는 데도 말로 아이를 학대하고 그렇게라도 해야 그 순간 분이 풀리는 더러운 해소감이 폭풍처럼 몰아닥쳐 내가 괴물이 된다.
수행을 할 것이 아니라 로봇이 되고 싶다. 예상치 못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만났을 때, 그리고 일상에서 자주 견딜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힐 때 서로에게 2차 가해를 하지 않고 다만 아이가 한 잘못을 산뜻하게 지적만 할 수 있다면 매일 사랑한다고 말하는 내 가슴이 더 상처 받지 않게 로봇이 되고 싶다. (2021.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