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단순한 이 공놀이는 그 본질을 넘은 행함에 있어 복잡함을, 때로는 심오함을 드러낸다. 단일한 개체가 모든 결과를 이끌어낼 수는 없다. 따라서 필연적 동반이 중요하다. 우연과 필연, 운명 모두가 녹아든 종합성에서 부정할 수 없는 하나의 결과가 도출된다. 이러한 과정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키워드인 팀은 단순한 친구, 동료를 넘어 형제애와 같은 때깔을 보인다.
물론 달콤한 열매는 모두의 것이나, 원치 않던 결과의 책임은 n분의 1이 불가능하다. 총대는 불가피하며, 이는 주장 내지는 감독으로 귀결된다. 넷플릭스 <죽어도 선덜랜드>의 시즌 1에서, 사이먼 그레이슨이 그랬듯.
축구를 넘어 다른 팀 스포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스포츠를 넘어 그 어떤 영역에서도 집단의 룰은 매한가지다. 시간의 중시. 시간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그 피해가 온전히 해당 개인에게 부과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팀은 무너진다.
대회의 시작 전, 수 차례의 연습 경기와 훈련 등에서도 반복되었던 특정 멤버들의 지각 문제는 대회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는 필연적으로 단체 워밍업 시간의 지연과 해당 지각생들의 워밍업 부재로 이어졌다. 나아가 미비한 서류 준비 등은 엔트리 제출과 선발 명단 확정에도 문제를 야기하였으나, 이것은 더 이야기하지 않겠다. 물론 위안의 요소들은 있었다. 꽤 많은 포워드들이 부상에서 돌아왔다. 추가로, 경기 전날의 밤 음주를 하거나 이틀간 백투백 경기를 진행하는 상대 선수들의 사실을 인지한 상황은, 결과적으로는 오만으로 이어졌으나 역대 전적으로 무패를 기록하고 있단 사실과 함께 하늘을 찌르는 자신감으로 변환되었다. 결코 질 수 없는 경기였다.
1st Half
*경기 총 영상 복기를 더하여
경기가 시작이 되었다. 이제부터는 패배가 곧 탈락으로 직결되는 외나무다리였기에, 무엇보다 빠르게 분위기를 잡아 마땅하다 판단하였고 강력한 프레스는 필수였다. 전략을 단순화하였다. 전반전을 총 3 step으로 사전에 분류 및 전달을 하였다. 프레스의 강도를 조절하면서 경기를 주도할 수 있다고 느꼈다. 실제로 근접한 결과를 얻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러나 11인의 정신적, 신체적 합치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인간임을 드러내는 모멘트들이 송곳처럼 튀어나왔다.
우선 경기의 시작 전 인지하고 있던 우려 상황은 2개가 있었다. 부상에서 돌아온 선수들의 선발 투입에 대한 걱정과, 그에 대한 대안으로 출전을 결정한 양측 윙어들의 워밍업 시간 및 기량 부족이 있었다. 다음으로, 우측 사이드백의 공백이 있었다. 그에 따라 윤구형의 사이드백 배치를 결정했다. 공격력은 아마추어 톱클래스임이 분명함과 동시에 스태미나와 주력, 깡(내가 매우 중요시하는 요소다)을 모두 갖추고 있기에, 기량이 떨어지는 상대 공격진을 막기엔 충분하다 판단했다. 이는 좋은 판단이었으나, 문제는 앞서 이야기한 선발 윙어 2인의 경기력 부족이었다. 음, 솔직히 말하자면 부족을 넘어서 투명인간이라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전반전 약 15분을 기준으로, 좌측 윙어는 그야말로 ‘실종’이 되어버린 상황이었고, 우측 윙어는 공수를 넘은 모든 상황에서의 포지셔닝이 개판을 쳐버림으로써 상대 좌측 사이드에서의 빌드업 저지가 전혀 되지 않았다. 미드필더진이 외치는 콜은 모두 메아리가 되었다.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다. 반복되는 지각과 부족한 워밍업, 꽤나 긴 시간의 훈련 및 연습 경기에서의 집중력 부족은 결국 실전에서도 이어지기 마련이니. 수비 강화를 위해 배치한 역발의 좌측 사이드백은, 끊임없는 드리블 돌파와 턴오버를 발생시켰다. 참으로 오만일 것이라. 우측은 앞서 말한 사이드백(윤구형)의 지연 및 볼란치(자신)의 가담으로 커버가 가능했으나 좌측은 그야말로 붕괴되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문제도 발생하였다. 준비의 부족과 기량의 부족을 넘어, 자신감 부족까지 드러낼 줄 몰랐던 우측 윙어는 오픈 1vs1 찬스를 날렸으며, 타 포지션 동료의 즉각적인 해당 선수 교체 요청은 이미 불씨를 피웠다. 나아가 key라 봐도 무방했던 우측 사이드백의 피파울 후 부상 아웃은 큰 변수로 다가왔다. 아, 모르겠다. 반칙이 행해지는 그 순간, 해당 상대 선수에게 다가가 큰 소리로 호통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동반 파트너로 지목한 좌측 볼란치는 숱한 패스 미스와 볼 경합 실패라는 결과표를 가져왔다. 참고로 여기서 잠시 이야기하자면, 정확하지 못한 터치와 패스는 미드필더의 자질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압박이 없는 상황에서 팀원에게 건네는 5M 숏 패스도 바운드나 부정확한 발과 공의 터치가 따라오는 순간 무성의가 된다. 설령 본인의 뜻이 그렇지 않더라도, 무성의가 느껴지는 패스는 미드필더로서 탈락이다. 특히, 라인을 내린 상대 수비진의 뒷공간으로 끊임없이 로빙 패스를 난사하는 것도 그렇다. 이는 자의적 볼 버리기와 동일하다. 아마추어 미드필더들의 흔한 문제 중 하나다. 자신들이 피를로가 아님을 절절히 깨달아야 한다. 볼 경합 실패는 일류가 아닌 아마추어이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위의 패스 모음들은 충격이었다. ‘대충’ 차거나, 쉽게 볼을 ‘버리는’ 행위는, 가장 볼을 잘 다루는 축에 속할 ‘미드필더’에겐 치명적인 결격 사유라 생각한다. 물론 이 경기에서 유일한 나의 실수였던 횡 패스미스도 한 차례 있었다. 팀원들의 콜 미스 등 여러 문제도 동반되었으나 이는 큰 중요도나 정신의 문제를 지니진 않으며, 나 자신을 포함해 동료들의 비슷한 미스들은 딱히 언급 및 기억을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모든 문제들을 종합하여, 전반전의 우리는 제대로 된 마무리를 행하지 못했다. 3 step의 사전 계획을 취소했다. 최소한의 분위기 획득을 위해, 전반전 내내 강도 높은 프레스와 전진을 요구했다. 상대는 중앙선을 제대로 넘지 못했고, 지속적인 볼 소유에 성공한 우리의 팀이었으나, 끊임없는 패스 미스와 무성의한 터치, 킥, 위치 선정의 미스는 때때로 진흙탕 싸움으로 이어졌으며, 상대 진영의 페널티 박스 앞은 마치 블랙홀처럼 전원의 스태미나를 갉아먹게 되었다. 나아가 볼 소유를 잃어버린 뒤, 해당 볼을 통해 후방에서 전진을 하는 상대팀과 즉각적 재압박을 추진하는 우리 팀의 맞대응 상황에서, 끊임없는 좌측 윙의 반칙은 팀의 사기에도 좋지 않았다. 마치, 수영장에서 물장구치는 듯한 정강이의 스윙으로 상대의 무릎을 반복해서 차는 행위는 정말 좋지 못하다. 결국, 항의를 끊임없이 하던 상대 주장을 커버하고 언쟁을 벌이며 상황을 무마하는 것은 나이며, 이 또한 큰 에너지 소비로 이어진다.
Half Time
하프타임, 별 다른 지시는 없었다. 이미 몇 달간 준비하고 아마 모두가 인지했을 전체의 작동 방식을 유지한 채로, 더욱 적극적인 프레스와 신체 경합을 하는 것. 볼을 따내고, 재공격을 감행함과 동시에 확실한 마무리를 하는 것. 유일한 변화는, 우측 공격의 교체였다.
2nd Half
후반전, 별 다른 차이는 없었다. 여전히, 무리한 전진 패스와 의미 없는 로빙 패스로 구체화될 수 있는 ‘상실’이 있었다. 새로운 우측 윙어는 여전한 포지션이 미스를 보였다. 상대의 좌측 센터백이 두터운 신체를 이끌고 툭- 툭 - 거리며 수십 미터를 전진함에도 불구하고 따라잡지 못하는 기이한 모습을 연출했는데, 추후에 알아보니 전날의 음주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다행히 팀원들의 경합 후 획득한 PK를 통해 1점 차의 리드를 따냈으나, 마치 아시아 지역 월드컵 2차 예선 중 중동 원정을 진행하는 대한민국 대표팀을 보는 듯한 경기력은 급체를 유도하는 듯했다.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은 리드가 묘한 자신감을 주었을까. 반복되는 동료들의 노룩, 힐 패스, 토킥 슛 마무리, 드로잉 파울은 경기의 성공과 거리가 멀었고, 조금씩 쌓이는 분노와 피로는 팀원의 피파울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나로 하여금 상대에게 거침없이 샤우팅을 보내게 했다. 2-3명을 상대로 지속적인 경합을 따내고, 끊임없이 옆과 앞의 동료들에게 숏 패스 전달을 보냈다. 전진만을 행했다. 생각은 오직 하나였다. ‘버텨줄 테니, 리드를 이어가라.’
이후에는 그런 팽팽한 접전의 진행이었으나, 변수가 있다면 약 7-8분을 남긴 채 진행된 나의 교체 아웃이었다. 앞서 말한 바 있듯, KTX를 제시간에 타기 위해 이른 환복 및 택시 호출이 필요했다. 여유 있게 기차를 못 잡은 잘못도 있으나, 1-0 리드를 상상했겠는가. 아무튼 교체 아웃된 이후의 팀은 미드필더들의 맨투맨 마크와 활동량에서 큰 약점을 드러냈고, 반복되는 상대 센터백의 전진 상황에서 수적 부족에 따른 공간 노출을 보였다. 상대의 슈팅을 키퍼가 펀치 미스를 하게 되었고, 그에 따른 세컨드 볼을 통한 실점이었다. 분위기는 급격히 가라앉았다. 기세가 오른 상대의 라인은 높아졌다. 이후 상황에서 센터백의 골킥이 있었다. 킥은 짧았고, 소유권이 넘어갔다. 사이드백은 자리를 못 잡은 채 가운데를 열어두었으며, 미처 자리에 복귀하지 못한 해당 센터백의 자리는 텅 비게 되었다. 그 공간으로 즉시 들어온 침투 패스에 오프사이드는 전혀 성립될 여지가 없었으며, 1대1 찬스를 내주는 동시에 두 번째 실점이 되었다. 그렇게 경기는 종료되었다. 이후의 상황은 이전에 말했듯, 인사와 기차 - 혼자의 생각으로 이어졌다.
The End
억울, 슬픔, 아쉬움, 분노, 화, 미움, 미안함, 감사함, 쓸쓸함 등. 너무나도 많은 감정들이 섞이고 휘몰아치던 현장에서, 별 다른 말을 내뱉지도 못하는 나 자신이 미웠다. 미안했고, 고마웠다. 서운하고, 서운하기에 더욱 미웠다. 무엇이 원인일까? 내가 원인일까? 내가 모든 문제고, 모든 것이 내 잘못이다. 그러한 생각의 발현은 정신적 자해로 넘어갔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손톱으로 스스로의 얼굴을 긁어낸 한 남자의 마음을 부분이나마 이해한다.
영상을 돌려보고, 일시정지를 누르고, 생각을 이었다. 공을 몰고 있는 동료, 상대를 넘어 그 전후좌우의 다양한 시간과 공간을 바라보았다. 지난가을을 돌아보았다. 많은 연습, 훈련, 경기. 동료들을 떠올렸다. 각자의 연습, 모두의 연습이 있었을 것이다. 술이, 나태가, 부족한 열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한들, 그것을 경기 전 세밀하게 파악하지 못한 내가 있었을 것이다. 평소의 연습량과 기존 경기들에서의 퍼포먼스를 객관적으로 인지하지 못한 내가 있었을 것이다. 때로는 특정 인물을 맹신하고, 때로는 특정 인물에 대해 부족한 신뢰를 드러냈던 내가 있었을 것이다. 부족한 내가 있었을 것이다.
충분히 긴 시간 밤을 지새우며 만들었던 메인 자료와 경기별 맞춤형 자료(디테일 ver.), 상대 분석 자료들이 있었고 유튜브 등을 참고하여 가져온 다양한 영상 링크들이 있었다. 양적 준비는 이것보다 더 잘할 수 없었을 것이라 자신한다.
그러나, 이 자료들을 충분히 숙지하고 잘 체화하고 있는지 팀원들과의 소통이 부족했다. 그들의 발전 양상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다. 반복해서 숙지하고 있다, 이런 아이디어는 어떠냐, 이럴 때에는 어떻게 행동하면 되겠냐고 이야기하던 이들을 보며 안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본 경기에 들어서며, 지각과 워밍업의 문제, 서류 준비의 문제에 대해 더욱 단호하게 말하지 못했다. 혹여나 상할 그들의 기분과 개별적 상황에 대한 막연한 존중을 보였다. 그, 존중, 존중… 존중! 그들은 내게 보이지 않은. 그들이 기꺼이 배신해 버린 그 존중.
미처 부상을 대비하지 못했다. 실력이 출중하더라도 기존의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이들을 우선 미뤄둔 채, 많은 연습을 행한 이들을 존중했다. 과하게 존중했고, 그들은 좋은 경기력을 보이지 못했다. 좋다. 이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으며, 컨디션과 경기력은 때론 흔들릴 수 있으니. 그 흔들림의 뒤에 변화를 추구해야 마땅했을 나는 보수적 접근을 하였고, 결과는 올바르지 못했다. 양아들과 같은 단어를 써가며 비판받던 감독들의 행태를 답습한 것인가. 잘 모르겠다, 하하. 개별적 플레이에 대한 더욱 세밀한 피드백을 줬어야 마땅했는가. 콜은 부재했고, 그라운드는 상대의 목소리만이 높이 울려 퍼졌다. 스로인 파울과 힐 패스를 방관했다. 그들의 플레이를 존중했다. 아, 또다시 존중이다. 내적인 잘못은, 내가 풀타임을 뛰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점일 수도 있겠다. 빠른, 상당한 차이의 리드를 만든 채 빠져나가려던 계획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내가 나간 뒤의 플랜을 단순히 몇 마디로 교체 멤버들에게 전달하려 했다. 믿었고 존중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더욱 권위를 내세우고, 더욱 멤버들을 결집시켜 강력히 훈련과 대회 일정 수행을 하도록 하지 못했다. 팀원들의 기량과 자신감을 믿고, 그들에게 모든 볼을 배급하면서 나는 공격 과정에 상당수 참여하지 않았다. 어쩌면, 팀 내에서 가장 뛰어난 드리블과 슈팅 능력을 동시에 지녔음에도 수비, 무실점을 중요시하여 아래에 처졌다. 나는 내 파트너 미드필더에게 단 한 차례도 패스를 받지 못했다. 플레이 중 내가 볼을 지닌 채 전달한 그 수십의 횟수는 단 한 번의 실수만이 존재했다. 모든 패스는 다음의 시퀀스로 이어졌다. 그것이 전부였다. 팀원들을 믿었고, 나를 희생하겠다 다짐하였으며, 그렇게 굳건히 아래를 지켰다. 그들을 존중했다. 그들이 만들어줄 결과를 믿었다. 그 믿음은 무너졌다. 수많은 패스를 개인기와 드리블, 패스 미스로 끊어버린 그들의 결과는 오로지 나와 센터백들의 임무로 전환되었을 뿐이었다. 좋다. 우리는 선수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개개인의 대한 믿음과 존중의 잘못은 또 한 차례 확장된다. 팀에 대한 믿음과 존중. 개개인의 기량과 열정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부재했다. 가장 큰 잘못이었나? 가장 큰 내 죄이다. 소수의 참/불 여부에 좌우되는 기형적인 스쿼드. 공격 자원이 벤치에 전무한 경기가 있었고, 매번 지각하는 멤버가 포지션마다 있었으며, 쉽게 타오르고 사그라드는 그들의 열정이, 변화무쌍한 기량이 있었다. 고참과 신입들 간의 계급 구도도 뒤늦게서야 눈에 들어왔다. 열정을 잃은 고참과 힘이 없는 신입이 있었다. 엘리트 출신들을 포함하여 전원이 한 대학의 중앙 팀, 체육학과로만 이루어진 팀을 상대로 맞불을 놓거나 때로는 승리하면서도 동시에 일개 과 소모임에 압도당하고 패배하는 도깨비의 삶.
처음 트리고리아에 도착한 무리뉴는,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승리에 대한 의지가 자신의 본성과 역사에 놓인다고 말했다. 본성과 역사. 애초에 타고난 기질이 다른 우리였다. 저마다의 역사를 쌓아 20대의 나이로 형성한 '팀'이었기에, 아마추어리즘이 중심이기에, 완벽할 수 없었다. 단지 마음이 있었는데, 이때의 마음은 그 흔하게 사용되고 언급되는 단어로서의 마음이 맞다. 미안하고 고생했다는 말을 전달한 후의 내가 떠난 뒤, 경기장에 남은 이들이 갈라져 싸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싸움보다는 일종의 몸부리였으리라. 뭣도 아닌 공놀이를 자신의 역사에서 윗자리에 놓고, 20대의 마지막 또는 한 챕터의 마지막에서 성과를 얻고 싶었을 이를 이해한다. 온전히 패배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린다고 생각하거나 진심의 초점이 다른 곳에 놓였다고 비판받는 이의 억울함 또한 이해한다. 2024년의 끝까지, 수많은 대화가 오고 갔다. 글로 길게 풀었으나, 결국 요약하자면 내 책임이고, 나 또한 인간이며, 내 문제로 귀결이 가능하다. 그 문제의 원인, 인간이라는 이유는 결국 '혼자'로 다시 나아간다. 존중, 신뢰, 외로움, 실망. 모든 것을 이젠 잊고 덮는다. 무엇보다, 많은 이들이 나를 도와줄 것이라 믿은 것이 내 죄다. 고백한다. 나의 죄는 혼자라는, 혼자였다는 것이다.